“평화는 힘으로” 대화 문 잠근 윤 대통령

박순봉 기자 2024. 6. 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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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식서 북한 맹비판
“암흑의 땅, 퇴행…비열한 도발”
앞선 2년보다 더 ‘강경 메시지’
대북 이슈로 지지율 만회 의도
국가유공자 초청 오찬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제69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평화는 굴종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암흑의 땅”이라고 부르고, 오물 풍선 살포를 “비열한 방식의 도발”이라고 표현했다. 2022·2023년 추념사 때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 북한을 비판하고, ‘힘에 의한 평화 유지’라는 대북 대응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남북 대화와 협력 가능성을 닫아둔 채 힘을 통한 압박 기조만 고집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현충일 추념식에서 “우리의 힘이 더 강해져야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서해상 포사격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최근에는 정상적인 나라라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까지 감행했다”며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유지하며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도발에 대응해나갈 것”이라면서 “한층 더 강해진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토대로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단단히 지키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휴전선 이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의 땅이 됐다”며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불과 50㎞ 남짓 떨어진 곳에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굶주림 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 정권은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고 퇴행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는 일, 더 나아가 자유롭고 부강한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일도 결국 우리가 더 강해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지난 두 번의 현충일 추념사에 없던 ‘통일’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은 한국 정부 중심의 통일론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보수 진영의 대통령들도 역대 추념사에서 평화와 함께 통일을 언급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더 강한 나라를 만들어서 북한을 변화시키고 자유와 번영의 통일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올해 현충일 추념사는 앞선 2022·2023년보다 대북 강경 메시지가 더 많이 포함됐다. 2022년 추념사 때는 전날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시험 발사했는데도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수준의 표현이 쓰였다. 2023년에는 호국 영웅들의 기억과 예우에 메시지 대부분을 할애해 안보 분야 언급은 한 단락 정도에 그쳤다.

“강해져야 통일”…역대 보수 대통령과 차이
문재인 정부 남북 대화 노력에 “굴종” 인식

올해 추념사에는 ‘영웅’(10회), ‘자유’(7회), ‘희생’(4회), ‘북한’(4회)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특히 지난해 추념사에서 한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던 북한이 4번이나 언급됐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이 최근 이어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시도, 각종 미사일 발사, 오물 풍선 살포 등을 이유로 대북 발언의 강도를 더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전부 정지시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강도 높게 대응할 준비도 마친 상태다.

대화나 협력의 여지조차 두지 않은 추념사는 한반도 군사적 상황을 계속해서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화는 굴종이 아닌 힘으로 지킨다’는 표현은 이전 정권의 남북 대화와 협력 노력을 굴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탈북단체가 이날 대북전단을 담은 애드벌룬을 띄우고, 북한이 더 많은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추념사는 ‘강 대 강’ 대치 외에 다른 길은 열어두지 않겠다며 쐐기를 박은 것으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일각에선 정치적 이해에 맞춰 안보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4·10 총선 이후 국정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북 이슈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추념식에는 국가유공자와 후손, 경찰·소방관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성진제 해군 소위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박희준 육군 중사는 ‘전우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성 소위의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로 3대째 군 복무를 하고 있다. 박 중사는 백마고지 전투 참전 용사의 후손이다. 윤 대통령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경북 문경시 화재로 순직한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의 유족 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하고 감사를 표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추념식 후 국립서울현충원 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찾아 참배하고 학도의용군을 추모했다. 이후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등 16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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