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드론 시대에 재벌이라는 총검술
최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은행의 비금융 업무를 제한하는 은산분리를 드론 시대의 총검술에 비유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은산분리 완화는 은행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해 배달앱 서비스나 알뜰폰 사업과 같은 비금융 부문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모바일 메신저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된 이후에 카카오는 지배력을 활용해 쉽게 돈 버는 부수사업에 매몰되면서, 본업인 모바일 플랫폼이나 미들웨어 혁신 경쟁에 집중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고도, 한국 은행산업도 망치고 비금융 부문도 망치는 정책을 황당한 비유로 옹호하는 시대착오적 관료가 자리를 보존하고 있음이 한탄스럽다.
금융산업이 가장 발달된 미국은 1956년에 제정된 은행지주회사법을 통해 은산분리의 원칙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또 대공황기 미국에서는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증권법과 증권거래법이 각각 1933년과 1934년에 입법되었고, 한국 재벌과 유사했던 기업 소유지배구조를 오늘날 미국의 ‘소유분산 모기업-완전 자회사’ 형태로 변환시킨 투자회사법도 1940년에 입법되었다. 이들 법은 제도화된 시장경제의 근간이며, 이런 법제도하에서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누렸고, 1990년대부터는 혁신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사실 드론 시대에 총검술 비유가 딱 들어맞는 것은 다름 아닌 혁신경제 시대에 한국의 재벌이라는 소유지배구조이다. 최근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4000억원가량을 지급해야 한다는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 이 분할재산 규모는 최 회장 재산의 35% 수준이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과 영향력으로 SK그룹이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 기여분을 35%로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항소심 결과가 확정되면,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민에게 사죄하고 재산 분할 지급액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여론의 관심은 이 재산 분할 판결로 최 회장의 SK그룹 지배권이 흔들릴지에 쏠리고 있다. 또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주)SK의 주가는 판결 당일과 이튿날에 걸처 20% 이상 폭등했다. 정상적인 시장경제라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기업에 악재이기에 주가가 떨어져야 한다. 또 이 정도로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사람은 해임해야 한다는 상식적 주장도 들리지 않는다. 재벌이 얼마나 몰상식적 소유지배구조이고, 그 어원이 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전근대적인 일본의 ‘자이바쓰’인지 이해할 수 있다.
혁신경제의 성패는 진입과 퇴출의 장벽이 없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약자의 재산권이 보호되느냐에 달렸다. 재벌이란 기업집단은 경제개발기에 모방을 통한 추격 전략에선 효과적이었으나, 경제가 발전해 혁신경제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소유지배구조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최종재 시장에서 독과점화를 유발하고, 부품소재 시장에선 수요독점과 전속거래를 야기했다. 이런 경제구조는 새로운 도전기업·선도 산업 진입의 장벽이 됐고 특히 중간재 시장에선 기술탈취가 만연하게 되었다. 따라서 재벌이라는 전근대적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하는 것은 혁신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재벌 규제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정책과 입장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쿠팡의 김범석을 위해서, 재벌규제의 근간인 동일인 지정제도를 흔드는 시행령이 지난 5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참으로 위인설법이 아닐 수 없다. 시행령을 꼼꼼히 살펴보면,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에 재벌총수를 총수라고 지정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 지배회사(예를 들어, 지주회사)의 자연인 대주주의 배당청구권과 다른 계열사에서 배당청구권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 사익편취는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지배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가지는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지정을 회피한 후에 사실상의 총수나 그 친·인척이 계열사에 출자나 자금 거래를 하거나 임원을 맡더라도 이를 파악할 실효적 방법이 없다. 특히 비등기 임원을 맡거나 비상장회사와 거래할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대주주 일가에게도 보다 명확한 공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공정거래위원회 스스로가 적극적인 감시 의무를 포기하고, 드론 시대에 총검술 도우미를 자처하는 셈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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