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26) 종로5가 약국 거리

두 장의 사진은 1971년과 2024년의 종로5가 약국 거리를 찍은 것이다. 모두 여러 개의 약국 간판이 보인다. 1971년 사진에 보이는 ‘종오당약국’은 2024년 사진에 ‘종오약국’으로 이름만 살짝 바꾼 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약국은 1962년 처음 생겼으며, ‘종오당’이 무당집처럼 느껴진다는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1년에는 없던 지하도 입구가 2024년 사진 왼쪽에 등장한 것도 시간에 따른 변화다. 1981년 생긴 종오지하쇼핑센터의 출입구다.
종로5가 약국 거리는 일제강점기 이곳에 한의원과 한약방들이 모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1957년 이곳에 들어선 한국 최초의 대형 약국인 보령약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유명한 제약회사의 약품을 대량으로 직접 사들여 도매가격으로 판 보령약국의 판매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 일대에 대형 약국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1960년대 초에는 “종로5가를 지나다니는 행인 다섯 중 하나는 보령약국 손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종로5가’ 하면 보령약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종로5가 지하철역 안내방송을 소재로 한 보령약국의 라디오 광고 때문이다.
1970~1980년대 이 일대 약국들은 백화점과 유사하게 ‘가운’을 입은 판매원들이 10여명씩 판매대에 서서 고객을 맞이했다. 당시 한국과의 기술 제휴에 난색을 표명하던 외국의 제약업자가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 종로5가의 약국 모습을 둘러보고 한국 사람은 약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라며 제휴 서류에 선뜻 사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시 주변에 대형 종합병원이 많았던 것도 약국 거리가 번성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지금의 서울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외에, 1980년대에는 명륜동에 고려대 혜화병원, 동대문 옆에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이 있었다.
50여년의 시간 동안 약국 거리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1971년 사진에는 ‘성병약’이란 간판이 보이는데, 당시 성병이 주요한 질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은 비만약이나 탈모약을 저렴하게 처방받고 살 수 있어 ‘탈모인의 성지’라 불린다. 그리고 약국뿐 아니라 혈압계, 보청기 등을 파는 의료기기 상점도 밀집해 있다. 한마디로, 종로5가는 서울 제일의 의료 도매 지역인 셈이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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