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 17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 집단행동 확산 도화선 되나
환자 "생명보다 집단 이기주의 합리화"
의협도 파업 투표… 집단행동 확산 기로
"이미 진료량 줄어 영향 제한적" 관측도
서울대 의대 및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보호를 이유로 전체 휴진을 예고했다. 5대 상급종합병원(빅5 병원) 가운데 처음이다. 정부가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복귀하면 행정처분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교수들은 명령 철회 대신 명령 취소를 통한 전면적 ‘대사면’을 요구했다. 국내 의료기관에서 서울대병원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의료계 집단행동 재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휴진이 현실화할 경우 100일 넘게 의료공백을 견뎌온 환자들 피해가 심화할 거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17일부터 휴진… 환자 피해 불가피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 행정처분이 완전 취소되지 않으면 17일부터 무기한으로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6일 밝혔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분만실 등 필수의료 분야를 제외한 전체 과목에서 외래진료와 정규수술이 중단된다. 병원이 ‘셧다운’ 되는 셈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3~6일 교수 집단행동 방향을 묻는 1차 투표에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 소속 교수 1,475명 중 939명이 참여해 63.4%가 ‘휴진을 포함한 강경 투쟁’에 동의했고, 5~6일 휴진 방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2차 투표에선 응답자 750명 중 68.4%가 필수의료를 제외한 전체 휴진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서울대병원이 멈추면 의료공백 악화는 불가피하다. 서울대병원(1,803병상)과 분당서울대병원(1,335병상)은 병상 수가 많을뿐더러, 서울과 경기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중증·희소질환 등 고난도 필수의료를 책임진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는 유지된다고 해도 예정됐던 수술, 입원, 검사 일정이 갑자기 밀리거나 취소되는 등 환자 불편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병상 통폐합, 업무 재배치, 무급 휴가 등 비상경영체계 아래 손해를 떠안은 간호사와 병원 노동자의 피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분노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성명을 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무기한 집단휴진은 국민 생명보다 의료집단 이기주의를 합리화해 환자들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태”라고 규탄하며 “서울대는 의료현장을 떠난 의대 교수들을 즉각 해직하라”고 촉구했다.
의사 집단행동 확산 기로… 의정 갈등 악화
다른 수련병원들은 서울대병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의대 교수 집단행동이 확산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대형병원에서 전공의가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고 있던 교수들이 진료를 거부할 경우 국내 필수·응급 의료체계의 ‘셧다운’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한의사협회(의협)도 파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 터라 자칫 의료계 전반이 파업 분위기에 휩쓸릴 수도 있다. 의협은 8일 자정까지 전 회원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의료계 투쟁 동력을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의협은 “교수, 봉직의, 개원의는 물론 전공의, 의대생도 함께 전 직역이 의협을 중심으로 뭉쳐 대정부 투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들이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면서 의대 증원 문제로 촉발됐던 의정 갈등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4일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등 전공의에게 부과했던 행정명령 일체를 철회하면서 소급 적용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행정명령을 취소해 의사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우려를 완전히 해소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기득권 지키기” 비판… 파급력 미미 관측도
이번 결정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가뜩이나 취약해진 의료체계를 파국으로 내몰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전공의 사직서 수리, 행정처분 중단, 전문의 취득 기회 보장 등 사실상 특혜에 가까운 구제책을 내놓았는데도,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 후 6월 3일까지 업무를 하지 않은 것은 범법행위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행정처분 완전 취소를 요구하는 건 명분이 부족하는 것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사실상 아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게 됐는데 교수들이 파업을 할 이유가 없다”며 “제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의사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은 이미 진료와 수술 건수가 평시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 최소 기능만 유지하는 상황이라 전체 휴진이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대병원 일반병실 병상 가동률은 51.4%에 그쳤다. 4월 30일부터 몇 차례 진행됐던 주 1회 휴진도 참여율이 낮아 의료현장에 혼란은 없었다.
병원장들이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전공의 사직 권한을 돌려받은 만큼 수익 손실을 초래하는 교수 휴진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사립대병원 교수들은 경영난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립대병원인 다른 빅5 병원들은 병상 가동률이 서울성모병원 63.7%, 삼성서울병원 61.7%, 세브란스병원 58.2%, 서울아산병원 54.2%로 서울대병원보다 높다. 국립대병원장들도 7일 회의를 열어 병원 재정적자 해결 방안과 전공의 사직서 수리 방안 등을 논의한다.
의협의 파업 추진을 두고는 의협 주축이 개원의들이라 파업 참여율이 얼마나 높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진은 곧 수익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에도 개원의 파업 참여율은 10%에도 못 미쳤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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