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 변요한 "연기를 하는 동안은 계속 '미생'이지 않을까요"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내가 세상을 타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타는 것인지. 그런 것에 대한 궁금증을 항상 갖고 있어요.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많고 부러운 것도 많고. 그렇지만 그냥 현재의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변요한은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희)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가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변요한은 극 중 의뢰인이 맡긴 열쇠로 그 집을 몰래 훔쳐보는 취미를 가진 공인중개사 구정태 역을 맡았다. “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라고 말하면서도, 누군가의 집에서 가장 없어도 될 물건의 사진을 찍어 비밀스러운 공간에 걸어놓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은밀하고 독특한 캐릭터다.
이날 변요한은 "감독님이 글을 워낙 잘 써주셔서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본질적인 걸 놓치지 않고 표현이 됐구나 싶어 다행"이라며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게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것인가, 내가 세상을 타는 것인가'였다. 왜냐하면 이 주제가 내가 봤을 때는 그랬다. 그런 '퀘스천'을 관객분들에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본다"라고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나리오요? 회사로 왔습니다. 하하하. '자산어보'를 같이 했던 김성철 대표님이 '네가 되게 흥미를 느낄 캐릭터'라고 하셨어요. 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연기하는 동안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요. 조금은 마이너 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런 마음을 대표님이 알고 계셨고요. 역시나 정상적이고 비정상적이 고를 떠나서 책에 나오는 메시지 자체가 제가 하고 싶었던, 한 번쯤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비정상적'인 구정태는 '관음증'을 가진 인물이다. 독특한 캐릭터임과 분명하지만 비호감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직 연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비호감이나 비정상으로 느껴질 거란 두려움은 없었다. 되려 '나쁜 짓은 전혀 안 해요. 보기만 합니다. 저는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구정태이기에 연기해 볼 만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도전이라기보다는 몸을 한 번 던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정태의 첫 인상이 '비정상'이었다는 변요한은 "되게 재밌는 게 대본을 다 보고 당연히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엔 평범해 보이기도 했다. '왜 이렇게 서브텍스트가 많지?', '내레이션이 많지' 싶기도 했고"라며 "편집된 부분인데 구정태는 옆집 강아지도 봐준다. 동네의 '홍반장'이다.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감독님이 이걸 어떻게 정리하려고 그러시지', '내레이션은 언제 끊으시는 거지' 영화적으로 이런 궁금증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비정상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구정태지만 '그녀가 죽었다'에서 외적으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보이지 않는다. 되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옷차림을 하고 어디선가 들은 듯한 말투로 말한다. 이는 변요한이 의도한 지점이었다. 책에 나오는 구정태의 어떤 겉모습, 굉장히 평범한 일상들 그리고 속으로는 다른 어떤 속마음. 이 두 가지가 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힘을 빼고 연기했다. 겉으로 모든 것들이 표현되는 게 아니라 속이 있기 때문에, 서브 텍스트의 공간을 조금 더 주게 됐다.
변요한은 "어느 쪽으로 너무 몰려버리면 이중적인 게 절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똑똑하게 연기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도 상의를 많이 했다"며 "어느 순간 옆에 작두 탄다고 하지 않나. '필'이 온다. 내가 준비한 게 너무 많고 자신감이 생겨서 '좀 더 가고 싶다' 했을 때 상대 배우를 보면 밸런스 때문에 '그러면 안 되겠다' 싶을 때도 있다. 감독님이 그걸 잘 정리해 주셨다"라고 자신의 연기 포인트와 감독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혀 (구정태를) 미화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다만 영화적인 어떤 흐름을 위해 기승전결을 잘 만들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책에 모든 것들은 다 쓰여있었고 감독님의 그림이 있으셨다. 나는 그냥 책을 받은 입장으로서 잘,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구정태와의 싱크로율을 묻자 변요한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건 연기지 않나. 구정태라는 인물을 변태, 비정상, 비호감이라고 보는 건 관객들의 몫"이라며 "뭐라고 할까 이 '월등하고 싶다'는 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하고 맞닿으면서 오는 취향, 범죄, 잘못된 선택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걸 연기하고 싶었다. 나랑 닮았다기보다는, 나는 완전히 다른 쪽"이라고 미소 지었다.
"구정태는 결국 사람들의 시선으로 벌을 받죠.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살았던 사람이 결국 시선으로 벌을 받는 게 굉장히 세련됐다고 느껴졌어요. 자기가 잘못했을 때는 시선을 느껴도 바로 알지 못하잖아요. 그 시선이 시작이고 그 시선으로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사실 그 뒤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인데 끝까지 죽지 않고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괴롭게 아주 끝까지."
'그녀가 죽었다'의 개봉과 같은 날 변요한이 주연이 맡은 디즈니+ '삼식이 삼촌'이 공개됐다. 주연을 맡은 작품이 동시에 베일을 벗는 데다 전작 '한산: 용의 출현'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변요한은 스스로 전성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변요한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들통나는, 진짜 시작은 마흔이었다. 1986년 생, 마흔이 가깝지만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기에 눈길을 끄는 말이었다.
변요한은 "그냥 나는 지금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배워야 되고 더 많이 알아야 된다. 아직 39년 밖에 못 살아봐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40대부터는 좀 더 내 에너지도, 많은 생각도 좀 정리 정돈할 줄 알고 결단력도 좀 빨라질 것 같고 조금 차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옳고 그름을 더 명확하게 알고. 그래야 작품 할 때 그걸 깨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고 캐릭터도 다시 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되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라고 자신의 40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진짜 솔직하게요, 저는 제가 연기하는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살려고요. 그걸 놓쳐버리면 가고 싶은 길을 못 갈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재밌는 걸 하고 싶어요. 그러다 사라지겠죠. 하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부모님이 주신 DNA에서 오는 힘도 있을 거고, 내 주변 사람들, 나를 응원해 주시는 사람들. 저는 그런 것들이 제가 갖고 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이와 함께 변요한은 '미생'과 '완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2021년 촬영을 마쳐 올해 '그녀가 죽었다'가 공개된 소감을 물은 터였다. 변요한은 "후련함은 아니다. 후련함이라는 용어를 써본 적은 없다. 그냥 '드디어 관객들을 만났구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역시 어렵다', '완생이 힘들구나', '10년 동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정확하게 뭘 배웠지' 이런 생각만 든다"며 "연기를 하는 동안은 계속 '미생'이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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