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던진 의제, '지구당'이란?…"정치개혁" vs "부패·차별"

한예섭 기자 2024. 6. 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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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앞두고 벌어진 '정치 진입장벽' 논쟁…"원외 표심 노린 얄팍한 상술" 지적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언급으로 '지구당 부활'이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치권, 특히 여권 내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30일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지구당 설치를 위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는가 하면, 나경원(유보)·안철수(찬성) 의원, 유승민(반대) 전 의원 등 다른 당권주자들도 발빠르게 논쟁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 차기 대권주자들도 개인 SNS를 통해 입장 표명에 나섰다.

지구당 부활의 쟁점은 큰 틀에서 두 가지다. 내용적으론 정치 진입장벽 해소 등 정치개혁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가 걸려 있고, 정무적으론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설과 맞물린 '지역 원외위원장들의 전대 표심'이 걸려 있다. 지구당 부활 여부에 원외위원장들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만큼 두 가지 쟁점이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전 위원장이 밝힌 지구당 부활의 핵심 명분도 원내외 간 정치활동의 "격차해소"였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질문은 역시 "지구당이 뭐길래"이다. 지구당은 과연 정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가?

"정치개혁" vs "부패의 온상" vs "새로운 차별"

지구당은 구 정당법상의 조직으로 선거구 단위로 설치되는 중앙당의 하위조직이다. 지금의 시·도당이 선거구 단위로 설치돼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지구당이 폐지된 후로 각 선거구에는 지구당이 아닌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가 들어서 있다.

이들 당협 조직은 시·도당과 달리 사무실 설치나 유급직원 고용, 후원회를 통한 후원금 모금이 불가능하다. 현직 국회의원들의 경우 지역구에서 그 같은 활동이 가능하지만, 의원직을 얻지 못한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다음 선거를 노리면서도 지역구 정치활동에 애로사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구당이 부활할 경우 이들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합법적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당연히 지역구 정치활동에 있어 원내 의원들과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지역구 조직력 강화에도 유리하다. 즉 원외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진입장벽의 완화다. 한 전 위원장이 지구당 부활을 "정치개혁"이자 "격차해소"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5월 페이스북에서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이라고 지구당 부활의 명분을 들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디시인사이드

다만 지구당 부활 의제가 한 전 위원장이 새롭게 꺼내든 카드는 아니다. 정치관계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지구당 부활을 입법화하려 한 의원들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만도 민주당 이원욱(현 개혁신당)·우원식·김영배·박재호 의원, 국민의힘 노용호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등 6명이나 있었다.

지난해 11월엔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당원협의회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현 원외당협위들이 겪고 있는 정치활동에의 난관을 지적한 바 있다. 당권주자로 꼽히는 윤상현 의원은 지난달 30일 소위 '지구당 부활법'을 직접 대표발의하며 의제를 선점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지구당의 부작용이다. 지구당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차떼기' 논란 끝에 자당 오세훈 의원(현 서울시장)의 '오세훈법'(정당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폐지됐다. 지역정치인에게 정치자금 모금의 활로를 열어주는 지구당은, 그만큼 지역 내 유력 사업가 등 토호세력과 당선을 노리는 지역구 정치인 간의 유착관계 형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페이스북 글에서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고 역설했지만, 지구당 폐지의 중심 축이었던 오 시장은 지난달 31일 본인 페이스북에서 "'돈먹는 하마'라고 불렸던 당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선거와 공천권을 매개로 지역 토호-지구당 위원장-당 대표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권의 검은 먹이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오세훈법 개혁의 요체였다"고 한 전 위원장을 직격했다. 정치 원로 격인 홍준표 시장 또한 같은 날 지구당을 "정치부패의 온상"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한 전 위원장의 지구당 언급 직후엔 찬성입장을 밝혔던 나경원 의원도 지난 4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음성화돼 있는 지구당을 양성화하자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것을 과거와 같은 '돈 먹는 하마' 구조의 지구당으로 부활하는 것에는 굉장히 우리가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하며 유보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의 당권 라이벌로 꼽히고 있는 나 의원은 "지금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지구당 부활보다는 선거제 개편 같은 것"이라고 의제 자체를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역시 당권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전 의원도 "지구당 부활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논쟁은 정말 필요한 정치개혁을 못 보고 있다"며 반대 입장에서 새로운 논점을 제기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 글에서 "우리 정치의 불공정은 '현직 대 비현직' 사이의 문제다. 단순히 현역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혹은 지역위원장) 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원외 위원장에게만 지구당과 후원금 모금을 허용하면 위원장이 아닌 정치지망생들에게 불공정한 진입장벽이 또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 전 위원장이 말한 '원내와 원외 사이 장벽'을 넘어 '정치영역과 정치영역 바깥 사이 장벽'을 더 큰 문제로 제시한 것이다. 유 전 의원은 "정치의 불공정을 해소하는 방법은 비현직의 진입장벽을 없애 현직과 비현직 모두에게 평평한 운동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며 "지구당 부활 수준이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의 모든 진입장벽을 없애는 정치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대안을 꼽았다.

지구당 부활에 대한 이 같은 '이견'들 또한 지구당 부활 의제만큼이나 과거부터 반복적으로 논의돼온 것들이다. 지난 제21대 국회 정개특위에선 △지구당의 사당화 △불법자금 문제 등을 방지하면서도 지역 당협 활동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당협 사무실 설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 바 있다.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지구당 논의를 지역정당 허용, 중대선거구제 실시, 비례대표 의석 확대 등 비례성 강화 의제 전반과 함께 다루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외국인주민 정책 마스터플랜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우수인재 유치와 포용적 다문화사회 조성을 위해 5년 동안 약 2천500억원을 투입해 외국인 인재 및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외국인주민 정책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원외 표심 노린 얄팍한 상술" … 당권 이슈된 지구당 부활

한편 지구당 부활은 그 내용적 당위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여야의 전당대회 향방을 통해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애초 지구당 부활 논쟁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 전당대회 등판 여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전 위원장이기 때문에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이후 당무에 대한 첫 언급으로 지구당을 선택, 원외를 시작으로 보폭을 넓힌다는 평가를 들었다. 비슷한 시기 이재명 민주당 대표 또한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연임에 시동을 건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 시장은 앞선 본인의 페이스북 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 개혁일 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인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며 "민주당은 개딸정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고, 우리당은 전당대회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노린 얄팎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한 전 위원장과 이 대표를 동시에 직격했다. 오 시장 또한 지구당 부활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당 대표 선거에서 이기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있다"고 한 전 위원장을 겨냥했다.

한 전 위원장 취임 직전 대표직을 역임했고, 당시 친(親) 윤석열계의 핵심으로 꼽혔던 김기현 전 대표도 "그동안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 정치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단순히 득표만을 위해 선심성으로 남발해서 풀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민의 관심과 동떨어진 채 정치인 개인의 정치적 득실을 따져 나오는 문법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라고 말해 지구당 의제가 전당대회를 앞둔 '정무적 이슈'임을 지적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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