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10 기념식에 총리 참석 예정…삭감 예산 복구 중”
“온 민족의 매일매일의 온갖 삶이 위협받고 있다. 순간순간 마시는 물과 공기로부터 평화와 안전의 보장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삶에 필수한 모든 조건이 심각한 위협 밑에 놓여 있다. (중략) 죽음의 노랫소리는 이제 매우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서마저 울린다. 민족은 과연 이 파멸적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쓴 듯한 이 글은 1985년 5월10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민주·통일 민중운동 선언문이다. 민통련은 1985년 3월부터 1986년 11월 경찰이 용접기로 사무실을 강제폐쇄하기 전까지 27개 재야단체가 참여해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의 구심이 된 단체다. 시민들이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던 1987년 6·10항쟁의 37주년을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에서 옛 민통련 자리를 기념하는 현판식이 열린다.
민통련 주역으로서 당시 동지 20여명을 초청해 이 행사를 여는 이재오(7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적지를 시민이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현판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6·10항쟁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있던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과 1989년 창립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서울 종로구 충신동 사무실은 다음 후보지다.
지난해 7월 취임 뒤 약 1년 만에 연 첫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그간 준비해온 여러 행사를 소개했다. 7일 민통련 기념 현판식에 이어 10일엔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오직 한마디, 민주주의’라는 슬로건 아래 6·10항쟁 기념식을, 18일엔 프레스센터에서 ‘민주주의 미래를 위한 대토론회’가 열린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을 보존해 신축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연말 개관이 최대 역점사업이다.
85~86년 민주화 운동 이끈 재야단체
옛 민통련 자리 기념 현판식 7일 열려
‘민주화와 통일 주춧돌 놓았다’ 새겨
6·10기념 행사는 축제처럼 열 계획
2·28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
‘공식 민주화운동’ 11개 중 7개 참여
“민주화운동 1세대라 할 문익환·계훈제·백기완 선생님은 다 돌아가셨어요. 저를 포함해 이부영·이창복·장기표 등 2세대가 다들 80대인데, 7일 민통련 기념 현판식에 다 모입니다. 동판에는 ‘우리는 이곳에서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새겼습니다.”
이 이사장은 그간 사업회 복원으로 바빴다고 했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에 후원단체로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업회가 곤경에 처한 와중에 취임한 탓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6·10항쟁 기념식엔 정부 참석자가 한 명도 없었다. 직원 10여명을 중징계하라는 감사 결과까지 받았다. 예산도 대거 삭감됐다. 이 이사장은 “징계 건은 원안보다 수위를 확 낮췄고, 예산은 열심히 원상복구 중”이라 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기념식에는 총리 등 정부 관계자가 참여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6·10항쟁 기념식은 ‘승리한 민주화운동’ 콘셉트로 진행되는데 이 이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근엄한 기념식보다는 축제처럼 진행할 예정이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대미를 장식하고 젊은 가수 박창근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른다”고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 공식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은 총 11개다. 이 이사장은 1960년 경북 영양고 1학년 때 참여한 2·28대구민주화운동부터 6·10항쟁까지 7개 사건에 관계돼 있다.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감옥에 있었다. 그렇게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관통해 살았던 당사자로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을 관장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는 서울 은평구 집에서 경기 의왕시 사업회까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처음엔 관용차를 썼는데 2시간이나 걸리자 운동 겸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철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해 곤혹스러울 때도 있어요. 방송 잘 봤다는 얘기 많이 하대요.” 이사장 취임 전 여러 공중파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까지 (방송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해 행정안전부 장관을 혹독하게 비판했는데, 사업회가 행안부 산하 기관 아닙니까? 하하하 첫 만남 때 난감했어요.”
오는 8월부터는 남영동 대공분실 옆 민주화운동기념관 신축 건물로 출근할 예정이다. 이 이사장은 민통련 민족통일위원장, 서울 민통련 의장,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등으로 재야에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해 2016년까지 15·16·17·18·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권익위원회 위원장과 특임장관을 역임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서울대병원 ‘무기한 집단 휴진’ 번지나…의료공백 답이 없다
- 민주당 “4년 전과 다르다”…주말 원구성 불발땐 “10일 법대로”
- “동해 석유 15년 탐사했지만 미래 없어”…작년 철수한 호주 기업
- “꽃게잡이 중국 어선 안 보여…북 연평도 포격 이후 처음”
- [단독] 입대 10일차 ‘얼차려 사망’ 막을 기회 22번 있었다
- 서울대병원,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응급·중환자실 뺀 진료 ‘스톱’
- [단독] 과거 ‘도이치’ 수사팀, 김건희 소환 이견 없고 불기소 판단도 없었다
- ‘강제동원’ 사도광산, 유네스코 자문기구 심사에서 ‘보류’ 결정
- 성심당 월세 4억 내라는 코레일…“공기업이 백화점인가”
- 벤츠 이어 아파트에도 욱일기…서경덕 “선 제대로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