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위험한 사적제재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의 이탕이 살인을 저지른 대상은 그에 의하면 모두 ‘죽여 마땅한 인물’이다. 연쇄살인범, 보험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한 자, 장애아를 학대한 부모 등…. 드라마 <모범택시> <비질란테> 역시 법의 바깥에서 가해자를 응징하는 과정을 다룬 복수극이다. 이 가상의 이야기들이 인기를 끈 것은 가해자들이 보복당하는 결말이 대중에게 쾌감을 안겼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선 ‘신상털기’가 대표적 사적 제재로 꼽힌다. 지난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나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피의자 신상이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다. 사적 제재는 불거질 때마다 논란이 일면서도 끊이지 않는 ‘사회현상’이다.
최근 한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잇달아 폭로했다. 2004년 경남 밀양의 고등학생 44명이 여중생을 1년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인데, 당시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다시 관심을 끈 것은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가 ‘밀양 성폭행 사건 주동자 ○○○, 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 봐?’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다. 맛집에서 일하는 남성을 시작으로, 이틀 뒤인 3일 외제차 전시장에서 근무하는 남성의 신상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식당은 ‘리뷰 테러’가 쇄도하는 바람에 휴업했고, 외제차 전시장 측은 직원을 해고 조치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적 제재는 2차 가해의 우려가 크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나락 보관소’는 피해자 측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한다.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잘못 지목된 한 네일숍 사장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적 제재의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무분별한 ‘사이버 자경단’의 확산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적 제재는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결과다. 법이 약자를 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개인이 ‘심판자’로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법·제도에서 벗어난 사적 응징은 사회 질서를 위협한다. 고대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리에 의존하는 삶이 행복할 리 없다. 다만,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도 받지 않고 발 뻗고 살아가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사적 제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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