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잔혹한 사실’의 역설 [이원재의 사실과 진실]
이원재 |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너무 익숙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쓰이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 개념을 쓰는 저자들에게 명확한 개념 정의를 요청하곤 했다. 이미 합의한 개념에 대해 굳이 정의해줘야 하느냐는 귀찮은 냉소 뒤로, 내 질문은 답을 얻지 못하고 흩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들을 통해 미욱하나마 스스로 정의를 내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사적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자본을 국경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동시켜 이익을 실현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사실상 ‘시장 자본주의’라는 고전적 개념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이 형식적 정의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야기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의 수탈로 인한 국가 경제의 종속과 몰락, 자본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개인들의 우울과 자살, 같은 이유로 점점 더 심해지는 경제사회적 불평등까지, 실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러나 이 개념과 이에 따른 현실 진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내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에도 이름만 달랐지 실질적으로 같은 개념과 진단이 통용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자본이 강제하는 종속과 불평등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다는 대자보를 커뮤니티 게시판보다 더 자주 읽으며 살았다. 책 속엔 더 오래된 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자유시장체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1944년의 칼 폴라니가 있다. 그보다 100년을 더 거스르면 ‘1844년 경제철학수고’를 쓰던 카를 마르크스가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개념을 이대로 받아들이면, 200년 가까이 세계와 우리 사회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해야 하는 곤란함이 생긴다. 1995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코소보 전쟁이 만들어낸 역사적으로 특수한 변화들을 이해할 수 없고 ‘자고 일어나니 선진국’이 된 우리의 현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국제 교역 체제 내에서 종속적 지위, 높은 우울증과 자살률, 심각해지는 불평등 양극화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란 말인가.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에겐 상상한 것을 ‘사회적 사실’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화와 이에 기반한 부족 사회이다. 그런데 부족 사회가 국가로 성장하면서, 신화는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좀 더 높은 이성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이성은 ‘제도적 사실’을 만들었고 국가의 근간이 됐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대’는 제3의 사실로부터 촉발됐다. 사회적 사실과 제도적 사실이 인간 사이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면, 인간의 선택과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사실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잔혹한 사실’(brute fact)이라고 불렀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잔혹한 사실이었다. 당시 종교와 국가의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사실은 천동설이었다. 잔혹한 사실이 이 두가지 사실들과 경합하여 이겨내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적 사실과 제도적 사실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를 역사적 진보라고 부른다.
21세기 한국의 잔혹한 사실들은, 관습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론과 충돌한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다. 글로벌 공급 사슬의 상층으로 이동하면서 종속적 지위를 벗어난 극히 드문 경우이고, 예방·처치 가능한 원인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며,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오히려 개선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 문제와 위기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문제보다, 권위주의적 자국중심주의의 부상으로 생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적인 사회적 사실부터 극복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잔혹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이념이라는 사회적 사실에 의지할 때, 정책이라는 제도적 사실이 대개 실패한다는 경험을 이미 절절히 하지 않았나.
우리의 세계화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로부터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경로를 따라왔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 또는 미국과 유럽 사이 어딘가에서보다 높은 수준의 접합을 달성할지, 아니면 관성만 남은 일본의 현재를 답습할지는 우리가 잔혹한 사실을 얼마만큼 직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서울대병원 ‘무기한 집단 휴진’ 번지나…의료공백 답이 없다
- 민주당 “4년 전과 다르다”…주말 원구성 불발땐 “10일 법대로”
- “동해 석유 15년 탐사했지만 미래 없어”…작년 철수한 호주 기업
- “꽃게잡이 중국 어선 안 보여…북 연평도 포격 이후 처음”
- [단독] 입대 10일차 ‘얼차려 사망’ 막을 기회 22번 있었다
- 서울대병원,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응급·중환자실 뺀 진료 ‘스톱’
- [단독] 과거 ‘도이치’ 수사팀, 김건희 소환 이견 없고 불기소 판단도 없었다
- ‘강제동원’ 사도광산, 유네스코 자문기구 심사에서 ‘보류’ 결정
- 성심당 월세 4억 내라는 코레일…“공기업이 백화점인가”
- 벤츠 이어 아파트에도 욱일기…서경덕 “선 제대로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