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돌려막기' 강력 제재 예고한 금감원, 한발 후퇴하나
경영진은 경징계 그치나…'고유자금으로 손실보전' 수위 조절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금융감독원이 증권업계 오랜 관행이었던 '채권 돌려막기'에 강력 제재를 예고한 가운데, 첫 징계 테이블에 오른 하나증권과 KB증권은 기관 중징계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나온다. 제재심의위위원회 과정에서 회사 고유자금으로 고객 손실을 메꾸는 행위는 중징계까지 갈 사안은 아니며 실무 운용역에 대한 신분 제재 역시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진행된 하나증권과 KB증권의 랩·신탁 불건전 운용 관련 제재심의위원회는 원안 승인을 보류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첫 제재심은 주로 증권사 측 이야기를 많이 듣는 자리였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제재심을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음 가장 빠른 제재심 일자는 13일이다.
두 증권사는 특정 '큰 손' 고객들의 랩·신탁 계좌 손실을 불법적인 방식으로 보전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해 금감원 검사를 받았다. 하나·KB증권을 시작으로 총 9개 증권사들이 검사를 받았다.
이번 제재심에서는 크게 두 가지 위반 사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손실 보전의 한가지 방법은 기업어음(CP) 등 계좌 내 채권을 다른 계좌로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돌려막기 해 수익률을 짜맞추는 방식이다.
지난해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 증권사의 경우 총 6000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에 전가했다.
채권 금리가 급등한 시기, 만기가 먼저 도래한 고객들의 수익률을 위법하게 보전해주고 그 손실을 만기가 좀 더 늦은 계좌로 돌린 것이다.
금감원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기관 중징계안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또 제재심에서 기관 중징계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도 크게 갈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관 제재는 기관주의, 기관경고, 시정명령, 영업정지, 등록·인가 취소 등 다섯단계로 나뉘며 기관경고부터 중징계로 분류된다.
다른 한가지 사안은 회사 고유 자산을 이용한 손실 보전 행위다. 일부 증권사들은 고객 계좌 간 연계·교체거래 등 방식만으로 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두번째 방식으로 고유 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유 자산으로 자사 펀드에 가입해 이 펀드로 고객 랩·신탁에 편입된 CP를 고가에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환매 대금을 마련한 것이다.
고유자금으로라도 고객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위법이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해 손실·이익을 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 중 전자를 더 중한 위반 행위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오랜 기간 계좌 간 돌려막기를 하다가 더이상 막지 못하고 고유 자금으로라도 손실을 보전한 것"이라며 "두 행위 모두 위법이나, 다른 계좌 고객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행위가 고유자금으로 손실을 막은 것보다 더 중한 위반으로 볼 수 있고 나눠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나는 고객 돈으로, 하나는 회사 자금으로 손실을 메꿔준 것으로 목적과 동기는 같지만 자본시장법상 적용하는 법 조문도 다르고 행위 자체가 구분된다"면서 "두 사안에 대한 제재 수위 원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각각 다른 사안으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두 사안에 대한 다른 시선은 경영진, 임직원에 대한 개인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데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객 계좌 간 채권 돌려막기는 실무 운용역들 간에 벌어진 일일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채권 운용역들, 특히 소수의 '선수'들이 채권을 짬짜미로 주고받으며 수익률을 관리한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은 관련 임직원들에 대한 중징계 제재안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과거에도 수조원대 불법 자전거래를 적발하고 기관경고 이상 중징계를 내렸던 만큼 이번에도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운용역 개개인들이 사익을 추구한 것도 아니고 회사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개인 신분 제재는 과도하단 것이다. 또 일부 위원들 역시 개인에 대한 중징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분은 다음 제재심에서 추가로 논의될 전망이다.
반면 회삿돈을 끌어 손실을 메우기로 의사결정한 책임자, 임원·경영진에 대한 제재는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 회사 고유자금을 이용하는 건 경영진의 판단·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위법 행위가 있었던 당시 KB증권에서 WM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현(現) 이홍구 사장 역시 이번 사건으로 제재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제재심에서 시비를 다툰 뒤, 나머지 증권사들에 대한 제재심도 빠르게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금감원 검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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