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기차 밸류체인 구조조정…SK 이어 도레이도 분리막 '철수'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정승환 전문기자(fanny@mk.co.kr), 강두순 기자(dskang@mk.co.kr) 2024. 6. 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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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막사업 매각 배경
고금리에 경기부진 겹쳐
전기차 일시적 수요정체
분리막 공장 가동률 저하로
선제적 사업 재편 나선듯
분리막 필요없는 배터리
2027년 상용화도 악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충북 증평공장에서 직원이 분리막을 살펴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일본 도레이가 글로벌 분리막 시장에서 발을 빼려는 것은 그만큼 향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지속되면서 분리막을 비롯한 배터리 소재사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분리막 시장은 지난해 기준 219억달러(약 28조원) 규모다. 6일 교보증권 분석에 따르면 업체별 시장점유율(2022년 생산능력 기준)은 중국 상해은첩이 24.4%로 가장 높고, 중국 시노마·시니어가 각각 10.7%, 7%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한국의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6.6%)와 더블유씨피(3.5%)가 각각 4·6위, 일본 업체인 아사히(6.6%)와 도레이(3.4%)가 각각 5·7위다.

시장에서는 매물로 나온 글로벌 4위 분리막 제조사인 SKIET에 이어 7위인 도레이까지 매각을 추진 중인 것을 놓고 글로벌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이 정체되면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핵심 소재인 분리막 사업 악화를 우려한 도레이 측이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방산업인 전기차 시장 부진은 분리막 소재 공급 과잉과 공장 가동률 저하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SKIET의 분리막 재고는 약 4개월치로 적정 재고(1개월치) 대비 많다. 생산시설 가동률은 한국이 30%대, 폴란드가 60%대, 중국은 30%대로 추정된다.

관련 업체 실적도 부진하다. SK 계열 분리막 회사 SKIET는 1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461억원에 영업손실 67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작년 1분기보다 1000억원 가까이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더블유씨피는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새 160억원에서 6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더블유씨피 관계자는 "2023년부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 구간에 진입해 수요 둔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PwC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중국과 유럽 10개국의 순수전기차(BEV) 판매량은 168만5000여 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 성장하는 데 그쳤다.

분리막을 공급받는 배터리 회사 실적도 악화 추세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다 실물경기까지 부진에 빠지면서 전기차 수요가 줄고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1889억원을 제외하면 1분기에 사실상 316억원 규모 영업손실을 냈다. SK온은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SDI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28.8% 감소했다. 김경훈 SK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분기 미국 판매가 예상보다 적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이르면 2027년(삼성SDI 계획 기준) 상용화될 것이란 전망도 분리막 소재사에는 악재일 수 있다. 현재 대세로 자리 잡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를 이동하는 화학적 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닿으면 단락(쇼트)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데, 분리막은 이를 차단하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을 이동할 수 있게 돕는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대체해 분리막이 필요 없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 가격은 2026년 1kWh당 400~600달러로 리튬이온 배터리(1kWh당 156달러)보다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돼도 하이엔드 전기차를 비롯한 고급 제품에만 쓰이고, 대다수 제품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는 글로벌 2차전지 분리막 시장 규모가 금액 기준으로 2022년 75억달러(약 9조8500억원)에서 2030년 219억달러(약 28조78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IB업계와 산업계에서는 매물로 나온 분리막 업체 2곳 모두 당장 희망하는 가격을 받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SKIET와 도레이가 미국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향후 인수·합병(M&A) 진행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분리막은 전해질과 함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적용 대상이다. 두 품목은 IRA에서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됐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생산 또는 조립한 배터리 부품 비율이 2024년 기준으로 60%를 넘어야 한다. 이 비율은 2026년 70%로 상향되고 매년 10%씩 늘어나 2029년에 100%까지 높아진다. 이같이 미국 정부가 규제하는 이유는 미국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앞으로 중국산 대신 북미산을 사용하라는 의미다.

이는 SKIET와 도레이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 현재 2차전지 분리막 시장에서 68%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업체 점유율을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빼앗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도레이 측은 분리막 사업 매각 추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나현준 기자 / 정승환 기자 / 강두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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