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향교에선 공자·맹자 대신 ‘인류세’, ‘렛잇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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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 환경이 크게 변화한 시기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봅니다.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한 1800년대 산업혁명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이 논의되고 있죠."
윤완수 정산향교 전교는 "이날 '인류세' 강의처럼 향교에서 환경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팝송을 연주하고 따라 부르는 게 현대를 사는 선비의 삶의 방식"이라며 "현재의 지혜를 배워 전통을 지키고 인격을 완성하려는 선비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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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 환경이 크게 변화한 시기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봅니다.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한 1800년대 산업혁명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이 논의되고 있죠.”
옥빛 유생복을 입은 20여명과 흰옷에 검은색 띠를 두른 선비옷(학창의)의 교관이 책을 펼쳤다. 지난 4일 오후 6시 충남 청양군 정산면 정산향교 교육관, 강의 주제는 ‘행단과 인류세’였다. “공자 왈”을 기대했던 초보 유생들에겐 다소 어렵고 낯선 주제였을 법한데, 유생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교관으로 나선 문경호 공주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정산향교 오른쪽 언덕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공자는 2500여년 전 은행나무(살구나무) 아래 큰 건물이 아닌 소박한 단인 행단을 만들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며 “당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남긴 말들은 현재 인류세의 정신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을 도구로 바라보지 않고 자연과 융화하는 세계관을 지녔다는 점에서 인류세를 토론하는 지금의 우리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업을 들은 박준(12·초5)군은 “선비 정신에 따라 환경을 보호하면 지구가 덜 아플 것 같다”며 “선비들이 공부만 한 줄 알았는데 자연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생 교육은 폐목을 재활용한 공예 체험으로 이어졌다. 폐목은 산불 현장에서 거둬들인 불탄 나무를 가공해 둥근 구슬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학생들은 나무구슬을 꿰어 손잡이로도 쓰고 냄비받침으로도 쓸 수 있는 목공예품을 만들었다. 박지아(8·초1), 박가윤(14·중1)양 자매가 제일 열심이었다. 학생들은 “불에 탄 나무가 공예품이 되니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도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각자 만든 공예품을 내밀어 보였다.
해가 지고 향교의 교육관엔 촛불이 켜졌다. 마지막 수업인 ‘슬기로운 선비의 명상’ 시간이다. 최정화 백제가야금연주단 단장이 가야금으로 익숙한 민요를 연주했다. 유생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겼다.
“다들 비틀스 아시죠?”
모두가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최 단장의 가야금에서 비틀스의 ‘렛 잇 비’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명상하던 유생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오블라디 오블라다’부터 ‘헤이 주드’까지 최 단장의 가야금 연주는 고즈넉한 향교 담장을 넘어 퍼졌다. 마지막 수업이 명상에서 어깨춤사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산향교는 성균관과 같은 때인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설립됐다. 조선시대 공립 교육기관 구실을 하며 유교의 가르침을 설파한 지 600년을 훌쩍 넘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지역의 정신적 지주이자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1919년 4월5일 정산장날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당시 권흥규 전교 등 11명이 순국했다.
하지만 이제 정산향교는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시민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윤완수 정산향교 전교는 “이날 ‘인류세’ 강의처럼 향교에서 환경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팝송을 연주하고 따라 부르는 게 현대를 사는 선비의 삶의 방식”이라며 “현재의 지혜를 배워 전통을 지키고 인격을 완성하려는 선비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청아루 옆 은행나무 이야기’ 강좌는 11월까지 예약을 받아 열린다. 문의·예약은 우리문화융합진흥원(www.kccpa.or.kr).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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