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엔 이 사케를”...日 양조장 12대손이 12종 사케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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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초년병 시절은 매일 저녁이 야근이었다. 어쩌다 한번 부장님께서 “오늘 저녁 쐬주 한잔 어때”라고 하면 두말없이 모였다. 그날만큼은 밤늦게까지 일을 안 해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술시’에 모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술시? 술 마시는 시간인가? 그게 몇 시지?
조금 지나고 나니 오후 8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낮 12시는 정오, 밤 12시는 자정이라 하듯, 하루 24시간은 12간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에 맞춰 동물 이름이 붙어 있다. 오후 8시는 개를 의미하는 ‘술(戌)’시 인데, 마시면 취하는 술과 동음이의어여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2021년 일본에 ‘특정한 시간대에 마시는 사케’가 등장했다. ‘히네모스(hinemos)’란 사케 브랜드인데, 오후 6시에 마시는 사케부터 오전 5시에 마시는 사케까지 총 12종의 사케를 론칭했다. 물론 반드시 그 시간에 맞춰 마실 필요는 없다. 브랜드 콘셉트를 그렇게 잡았을 뿐이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모리야마주조(森山酒造)의 12대손인 유아사 순사쿠다. 1988년생인 그는 일본에 150명 정도 있다는 사케 평가사 중 한 명이다. 실력으로도 인정받는 그가, 이처럼 흥미로운 발상을 한 것이다.
보통 사케는 ‘쌀을 깎는 정도’를 기준으로 종류를 나눈다. 쌀을 40% 이상 깎으면 긴조, 50% 이상 깎으면 다이긴조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급일수록 가격도 많이 비싸다. 그런데 히네모스의 다양성은 시간대에 근거한다. 가격 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
12종의 사케는 각각 다른 색상에, 각각의 시각을 표시하는 숫자가 세련된 모습으로 디자인돼 있다. 맛 또한 전혀 다르다. 정통 사케 고유의 맛을 내는 것은 물론, 스파클링이 첨가된 것도, 파인애플 같은 과일 향이 나는 것도 있다. 디저트 와인처럼 꽃꿀을 연상시키는 진한 맛의 사케도 신기하다. 대부분 사케의 알코올 농도는 15도지만, 히네모스는 2~16도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말해, 사케의 개념을 바꾸는 사케부터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맛의 사케까지 제품의 폭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병의 크기를 보자. 보통 사케는 720ml지만 히네모스는 500ml다. 일반 사케보다 병 모양이 날씬하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그들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한 사케’로 제품의 개념을 명확히 했음을 알 수 있다.
푸드 비즈니스의 기본은 ‘맛’이다. 아무리 콘셉트가 좋아도 ‘맛’이 없으면 실패한다. 하지만 술은 좀 다르다. 고객마다 취향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싼 술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손길이 가지 않는다. ‘맛’보다는 ‘취향’이 중요한 시장이란 뜻이다. 더욱이 히네모스는 ‘양조장 12대손’ ‘150명밖에 없는 사케 평가사 중 1인’이 후광 효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고객은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입맛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히네모스는 고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작전을 쓴 것이다.
사실 기업에선 오래전부터 시간을 전략 수립에 활용했다. ‘먼저’ ‘빨리’ ‘제때’ ‘자주’가 키워드였다. ‘먼저’는 기회 선점을 의미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기회 선점은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빨리’는 프로세스 단축, 신속한 의사 결정을 말한다. ‘제때’는 타이밍이다. CJ는 햇반을 출시하기 한참 전에 제조기술을 축적했고, 당시 ‘알파미(米)’란 이름으로 시장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치를 집에서 담가 먹던 시절이라, 시장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자주’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한꺼번에 많이 팔리는 것보다, 조금씩 자주 팔리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시간을 기업 전략에 활용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다양성’이란 키워드를 추가한 히네모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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