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결혼식 축가를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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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 지난달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습니다.
4년여 전 검찰에서 퇴직한 후 딸과 아들이 결혼하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33년 전 선친께서 제 결혼 때 해주신 것처럼 축가를 불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난달 아들의 결혼식에서 짧은 인사 말씀을 드린 후 첫사랑 축가를 불렀습니다.
결혼식 후 아들은 30년쯤 후 자기 아이 결혼식 땐 자신이 축가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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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식서 축가에 도전
4년간 법공부같은 레슨과정
음악의 위로와 힘을 깨닫다
용기를 내어 지난달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습니다. 4년여 전 검찰에서 퇴직한 후 딸과 아들이 결혼하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33년 전 선친께서 제 결혼 때 해주신 것처럼 축가를 불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이탈리아 가곡 '오솔레미오, 오 나의 태양'을 불러주셨습니다. 전문 테너 못지않은 실력이셨습니다. 내 경우엔 한 번도 성악을 해본 적이 없어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막상 성악 레슨을 받아보니 배우고 익혀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와 같습니다. 골프는 골프채 잡는 법, 기본자세, 하체와 상체 쓰는 법, 공을 멀리 보내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성악은 자기 몸 전체를 악기로 사용하기에 골프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소리를 높이 내고 멀리까지 보내려면 아랫배는 단단히 받쳐주되 어깨와 목은 완전히 힘을 빼야 합니다. 척추를 바로 세우고 어깨도 반듯하게 펴야 합니다. 골프 코스와 그린을 미리 파악하듯 노래를 부르기 전 악보와 가사를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옆에서 본 프로 성악가들의 삶은 매일매일이 연습과 단련입니다. 호흡과 발성 연습은 물론 심폐운동과 전신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술과 담배도 절제해야 합니다. 최근 KPGA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운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도 술과 커피, 콜라까지 끊고 하루도 빠짐없이 스트레칭과 코어근육 운동을 합니다. 법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법률 지식을 연마하고 몸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분쟁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의뢰인의 법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냅니다.
성악을 배우고 틈틈이 성악곡을 부르니 생각지 못한 효과도 있습니다. 가사를 외우고 노래에 열중하면 집중력이 좋아집니다. 서 있는 자세가 바르게 됩니다. 스트레스도 낮춰줍니다. 차를 운전하다 길이 막힐 때도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정체 상황이 오히려 고마워집니다. 과학적으로도 밝혀졌습니다. 깊은 호흡과 음악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감소시켜 줍니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르면 그 나라 언어와 문화도 익히게 됩니다. 모임에서 노래를 열창하면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동호인들끼리 집에 모여 갈고닦은 각자의 음악을 나누는 기쁨도 느껴봅니다.
축가 노래는 미리 정해뒀습니다. 이화여대 경영학부 김효근 교수 작사·작곡의 '첫사랑'입니다. 작곡가가 아내에게 청혼하기 위해 만든 곡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로 시작해서, '내 마음 빛이 되어 그대를 비추라/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첫사랑'으로 끝납니다. 가사와 곡이 아름다웠습니다. 지인들 앞에서 몇 차례 연습 삼아 첫사랑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아들의 결혼식이 첫눈처럼 순식간에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지난달 아들의 결혼식에서 짧은 인사 말씀을 드린 후 첫사랑 축가를 불렀습니다. 다행히 가사를 잊지 않고 마쳤습니다. 많은 하객들께서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김효근 작곡가도 계셨습니다. 결혼식 후 아들은 30년쯤 후 자기 아이 결혼식 땐 자신이 축가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음악과 노래는 힘겨운 삶에 작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음악에게, An die Musik'에선 잿빛같이 힘든 때 따뜻한 사랑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어준 음악을 찬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갈등과 번민을 함께 짊어지고 가면서 지친 후배 법률가에게 성악 공부를 권하기도 합니다. 한 송이 꽃이 봄을 알리듯 한 곡의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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