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다 '슈퍼 비료' 개발해 버렸네요"
원료 연구하다 미생물 발견
프로바이오틱스 특허 출원
토양 오염 없는 친환경 비료
식물 키우니 약효성분 40% 쑥
"딱 한 번 뿌렸을 뿐인데 잎이 2배 가까이 커졌어요."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위치한 한 농터. 농약살포기를 메고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갓 심은 모종에 액체를 살포하고 있다. 주인공은 조형우 코스맥스BTI 책임연구원으로, 그가 있는 곳은 코스맥스 약용식물 재배단지가 위치한 농업법인 '향약원'이다. 조 연구원이 멘 농약살포기에는 농약·액체비료가 아닌 토양 프로바이오틱스 '향약-01' 균주가 담겨 있다. 그는 "향약원 내에서 화장품 원료 연구를 목적으로 작물을 키우던 중 같은 흙이라도 구역에 따라 성장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에 토양 미생물이 식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토양 내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을 비롯한 연구팀은 200여 종의 마이크로바이옴을 분리·배양하는 과정을 통해 식물 생장을 돕는 우수한 미생물 1종을 선별했고, 여기에 향약-0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향약-01이 담긴 원액 냄새를 맡아 보니 발효액 특유의 쿰쿰한 향이 코를 찔렀다. 하지만 화학적인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향약-01을 뿌려서 키운 병풀은 같은 환경에서 미생물 처리를 하지 않은 채 키운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잎 크기 등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확연했다. 수확량이 20% 이상 많아졌을 뿐 아니라 병풀의 핵심 성분인 '마데카소사이드'도 40% 이상 늘어났다. 미생물 처리만으로 '슈퍼 병풀'을 키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토양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특정 식물의 생장을 돕는 이른바 '친환경 슈퍼 비료'가 탄생한 셈이다.
코스맥스BTI는 바실러스 메가테리움 'Hyangyak(향약)-01' 균주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해 놓은 상태다. 이동걸 코스맥스BTI 마이크로바이옴 랩장은 "병풀뿐만 아니라 당귀와 도라지 등에도 효능 효과가 있다"며 "일반 화학비료는 토양에 계속 남아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향약-01은 겨울에 수확을 마친 뒤 토양에서 모두 사멸해 사라지기 때문에 토양 생태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향약-01이 생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식물을 추가로 발굴하고, 향약-01에 이어 식물 생장·재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균주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조 연구원은 "올해 어성초와 티트리 같은 식물에 또 다른 균주인 향약-07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스맥스BTI는 자체 개발한 슈퍼 비료를 활용해 약용식물을 재배하고, 이를 코스맥스만의 특화약초로 제품화할 예정이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향약-01 슈퍼 비료 자체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랩장은 "비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실제 생장에 도움이 되는 식물을 추가로 확인해야 하고,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기 위한 많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맥스BTI가 '한눈을 팔아' 성공적인 연구 결과를 보인 것은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한눈을 팔지 않고 한길만 판 결과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시작해 2019년 세계 최초로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에는 화학 유화제를 대체하는 천연 미생물 유화 시스템을, 올해에는 아토피 피부염을 개선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솔루션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3000종이 넘는 균주를 확보하면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영역을 화장품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강승현 코스맥스BTI 연구혁신(R&I)센터 부원장은 "화장품 소재와 관련된 연구에 집중돼 있지만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성과 비즈니스 확장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주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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