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31주년' 美 출장 떠난 이재용…'위기의 반도체' 돌파구 모색
전영현 등 DS 경영진 총출동…"아무도 못하는 사업 먼저 해내자" 신사업 독려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2주간의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최근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경쟁업체에 밀리는 등 반도체 위기 속에 직접 돌파구를 찾아나선 것으로 보인다.
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삼성 호암상 시상식을 마친 후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달 중순까지 미국에서 머물며 30여개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매일 분 단위 빡빡한 일정…메모리·파운드리 위기에 직접 나서
이 회장이 장기 미국 출장에 나선 건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3주간 미국에 머물며 빅테크와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 글로벌 제약사를 만났는데 이번 출장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이 회장은 미국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까지 훑으며 AI 및 반도체 기업과 미 의회·정부 관계자를 만날 예정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분 단위로 나눠지는 강행군을 2주간 지속한다고 한다.
이 회장의 미국 방문은 삼성 반도체의 위기감 속에서 진행됐다. 최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수십년간 세계 1위를 굳건히 지켜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AI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도권을 경쟁사에 빼앗겼다.
HBM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최대 HBM 공급사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D램 업계 3위인 마이크론도 5세대 HBM(HBM3E) 납품에 성공했지만 삼성전자 제품은 아직 엔비디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 마이크론 모두 우리에게 메모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공급이 성사되더라도 규모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또한 업계 1위인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첨단 패키징 공정 브랜드인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를 앞세운 TSMC에 주요 빅테크가 몰리면서 삼성 파운드리의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1주년(7일)이 다가온 가운데 이 회장이 출장길에 오른 건 삼성의 위기 상황을 직접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빅테크와 반도체 협력 논의할 듯
이 회장은 미국 방문 기간 아마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주요 빅테크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판로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DS 부문 사업부장들도 총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이 회장은 HBM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빅테크들이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독점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칩 생산에 나서면서 이들도 엔비디아 못지않은 고객사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인텔과 AMD는 각각 AI 가속기 제품인 가우디3과 인스팅트 MI325X를 공개했다. 해당 제품에도 HBM이 탑재된다.
이 회장이 미국에서 파운드리 수주 성과를 낼지도 주목된다.
지난 2월 방한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TSMC 의존도가 너무 높다"며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업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저커버그 CEO와 만찬을 갖기도 했는데 이번 미국 방문으로 실질적인 협력 성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이 회장이 AMD와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리사 수 AMD CEO가 최근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통한 차세대 칩 양산 계획을 공개하면서 삼성과의 협력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현재 3나노 GAA 공정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방미 일정 중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바 있는데 이번 출장에서는 아직 일정 조율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도 못하는 사업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AI 칩 힘 싣나
이 회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버라이즌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와 만난 뒤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고 당부했다.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대한 메시지이지만 반도체 부문에 빗대보면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메모리·파운드리 부문의 경쟁력은 더 강화하고, 마하-1으로 대표되는 AI 추론칩으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실리콘밸리에 머무는 동안 DS부문 미국 법인인 '삼성 DSA'를 방문해 사업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실리콘밸리에 마련한 범용인공지능(AGI) 컴퓨팅 랩의 제품 개발 상황도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신사업 중 하나로 AI 추론칩인 마하-1 개발을 발표한 바 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매개변수를 압축해 구동하는 데이터센터 특화 AI 칩으로 추정된다.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이 병목 현상을 8분의 1 정도로 줄여 HBM 대신 LP(저전력) 메모리를 사용해도 LLM 추론이 가능한 제품이다.
삼성전자 DSA는 최근 대규모 채용 공고를 내고 AI·ML(머신러닝)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온칩(SOC) 등 분야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있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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