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작곡한 '치화평' 복원, 음악지평 넓히는 AI
전통 계승하고 현대화에 도움
기후DB로 비발디 '사계' 편곡
베토벤 미완성 교향곡도 완성
서울시향, 과거·미래 잇는 연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클래식·전통음악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이들 음악은 저작권자 사후 70년이 지나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기 쉬우면서도, 음악의 핵심 요소로 인간의 예술성·창의성과 수백 년간 쌓아온 역사를 빼놓을 수 없어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최근 이런 음악 유산과 AI가 공존할 앞날이 엿보이는 무대가 잇달아 관객과 만났다.
먼저 지난달 세종대왕 탄신 627주년을 맞아 새로운 궁중 음악이 세상에 나왔다. 세종대왕이 직접 작곡했지만 전승이 끊겨버렸던 곡들을 AI로 복원하면서다. 궁중 잔치 음악 '봉래의'를 구성하는 세 곡 중 '치화평'(평화를 이룩함)과 '취풍형'(풍요를 누림) 두 곡이다. 나머지 한 곡 '여민락'(백성과 즐김)은 600여 년 동안 끊김없이 연주돼왔지만, 치화평·취풍형은 기록만 남아 있었다.
이 작업을 1년여 동안 주도한 국립국악원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인공지능이 이어준 600년 전 우리 음악'이라는 행사를 열고 "AI를 활용해 악보로만 남은 우리 음악을 복원하면 전통예술의 역사적 기반을 다지고 국악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악보는 진화 알고리즘과 딥러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종류로 나왔다. 먼저 진화 알고리즘은 기존의 여민락 악보를 토대로 초기 단위 악보들을 무작위 생성한 뒤, 선택을 거쳐 점진적으로 개선된 악보를 냈다. 거문고 선율을 먼저 만들고 나머지 악기 선율도 완성했다. 딥러닝 방식에선 여민락뿐 아니라 현존하는 85개 국악 정간보를 학습해 피리 선율을 먼저 만들고 관현합주로 발전시켰다. 각각 AI 작곡 스타트업 크리에이티브 마인드와 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학과 정다샘 교수팀이 맡았다.
선율은 AI가 만들었지만, 이날 무대에서 시연된 각 곡에선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주 역량이 돋보였다. 실제로 AI가 살려낸 치화평·취풍형은 완성본이 아니라 기초적 수준의 '초본'에 가까웠다고 한다. 진화 알고리즘 방식의 거문고 선율을 연주한 고보석 단원은 "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 음이나 운지가 어색하고 어려웠다. 긴 세월 다듬어진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막 시작되는 음악이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때를 묻히기 위해 옥타브를 조정하거나 다양한 연주 기법을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김창곤 악장도 "결국 악보는 사람이 해석해야 한다. 음악은 거기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국악 작곡가이자 진화 알고리즘 쪽 연구를 주도한 심영섭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이사는 "전통음악을 문법적으로 잘 다듬을 수 있는 기회로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전통음악에 비해 클래식계는 이미 AI 활용이 활발한 편이다. AI가 학습할 만한 데이터가 풍부하고 오선보의 수학적 변환도 용이해서다. 세계적으로 AI가 만든 교향곡도 다양하게 나왔다. 지난달 28일과 30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과거와 미래의 교향곡: AI의 선율'을 주제로 퇴근길 콘서트를 통해 이런 곡 일부를 들려줬다. 비발디 '사계'에 기후변화 현상을 반영해 편곡된 '사계 2050',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을 AI로 되살린 '슈베르트 완성교향곡' '베토벤 10번 교향곡' 등이다.
특히 사계 2050 프로젝트는 미래 예측을 음악에 반영하는 시도로 2021년 초연 때부터 이목을 끈 곡이다. 디지털 디자인 기업 아카(AKQA)와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 등이 협업해 강우량, 해수면 상승 등의 데이터를 음악에 적용했다. 서울시향 연주에서도 원작 사계 '봄'의 산뜻하던 새의 지저귐은 온데간데없이 끊어질 듯 불안한 바이올린 소리가 곡을 지배했다. 음울한 불협화음은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듯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임가진 등 연주자들 표정도 절로 심각해졌다.
AI의 클래식 미완성 곡 복원 시도에서는 효율적 도구로서의 역할이 부각됐다. 슈베르트 완성교향곡은 2019년 작곡가 루카스 캔터가, 베토벤 10번 교향곡은 작곡가 발터 베르초바가 전문가들과 합동으로 만들었다. 공연 해설을 맡은 박주용 카이스트 교수는 "AI가 작곡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컴퓨터는 전기가 주입되면 계속 결과값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중 취사선택은 사람이 한다"며 "AI의 작품이 예술적 깊이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선 음악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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