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극우, ‘화약고’ 동예루살렘서 “아랍인에게 죽음을”···폭력으로 얼룩진 성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예루살렘의 날’ 행진 중 폭력 사태가 발생해 10여명이 체포됐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은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간 ‘화약고’인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행진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주민과 언론인을 폭행하거나 위협했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경찰이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폭행, 위협, 무질서 등 혐의로 18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이들은 주로 이스라엘 극우 민족주의자들로, ‘예루살렘의 날’을 맞아 구시가지 북부 다마스쿠스 문에서 출발해 무슬림지구를 거쳐 알아크사 모스크 인근 ‘통곡의 벽’까지 행진했다.
‘예루살렘의 날’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탈환해 예루살렘을 완전 점령하게 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은 매년 예루살렘의 날마다 구시가지 무슬림지구를 행진한다.
행진 참가자들은 이날 “아랍인에게 죽음을” “너희 마을이 불타오르길” 등 무슬림 주민을 자극하는 구호를 외쳤다. 몇몇 유대인 청년은 무슬림지구에서 상점 주인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언론사와 타임스오브이스라엘, 하레츠 등 이스라엘 언론사 기자들도 이들에게 폭행당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기를 무슬림지구 모스크에 매달거나, 민족주의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하마스와 협력하고 있다’는 손팻말을 든 모습도 포착됐다.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장관들도 행진 전 집회에 참석해 무슬림 주민을 자극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이번 행사는 하마스에 ‘예루살렘은 우리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스라엘 극우들의 행진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민단체도 이날 구시가지를 찾았다. 시민단체 ‘스탠딩투게더’의 창립자 알론 리그린은 ‘예루살렘의 날’ 행진을 가리켜 “매년 새로운 수준의 혐오에 도달하는 선동과 인종차별의 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경찰도 이들이 팔레스타인(무슬림) 지역 중심부를 통과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그곳 주민들을 자극하는 것을 허용한 경찰의 결정은 어리석고 추악한 일이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말했다.
하마스는 성명을 내고 이번 행진에 대해 “아랍인과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라며 “우리 국민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세워질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성전산이 있는 구시가지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아르메니아교회 등 네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특히 유대인의 성지 통곡의 벽과 무슬림의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유대교-이슬람교 접경 지역에선 양측이 종종 충돌한다.
지난해 4월에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양을 희생하는 행사를 진행하려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인 약 400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을 했다.
2021년 5월에도 이스라엘 경찰이 알아크사 모스크 주변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을 무력 진압하자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10일 전쟁’이 발발했다.
‘예루살렘의 날’ 행진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가운데 양측 휴전협상도 난항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단계 협상안’을 새로 발표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제거 전까지 전쟁 종식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가 휴전협상 교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고위 관료들을 중동으로 보냈다고 이날 전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현재 카타르 수도 도하에 있으며, 브렛 맥거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이 전날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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