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장기화 대비···“전문의 중심 개편 서두르고, 상급병원 병상수도 조절해야”

최서은 기자 2024. 6. 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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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의 병원 이탈 100일째인 5월2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이번 의·정 갈등을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전문의 중심 개편, 중증환자 중심의 진료 시스템 마련이라는 과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학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수도권에 병상 수를 늘리고 있는 것이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쏠림을 심화시켜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병원 병상 수를 적절히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6일 의료계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사직서 수리와 행정처분 철회 등을 발표한 뒤에도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거의 없는 상태다. 현실적으로 정부와 병원측은 전공의 대량 공백을 상수로 깔고 의료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상급종합병원 내 전공의 비율이 10% 수준인 것과 달리 국내의 전공의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고용을 늘리고 전공의 업무는 줄이는 등 전문의중심병원으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전공의 비율을 일정 비율 이하로 낮추도록 규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경증·외래 환자 진료 비율을 낮추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의 진료를 하도록 전환할 필요가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본래 난도 높은 의료 행위를 하도록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의료기관이지만, 그간 경증 환자들도 대형병원으로 다수 몰렸다. 이에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현행 의료전달체계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장기적으로 상급병원 병상 수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 인력에 비해 병상 수가 과도하게 많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들의 업무가 과중되고, 의료진들이 환자 한명 한명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병상이 다수 몰리면서 환자는 물론 지방의 의료 인력까지 빨아들인다는 문제가 뒤따른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65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4.3개)보다 2.9배 가량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공개한 ‘최근 5년 시도별 허가병상 수 현황’을 보면 2022년 기준 상급종합병원 병상 수는 총 4만8057병상으로 2018년 대비 7.2% 늘었고, 종합병원도 같은 기간 3.5% 증가해 11만1005병상이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의 절반이 넘는 2만6000개 이상 병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상급종합병원들은 현재도 경쟁적으로 병상 수를 늘리는 추세다. 대학병원들이 앞다퉈 수도권 지역에 분원을 설립하고 있어 2028년 수도권에는 최소 6600개 이상의 병상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준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국내 의사 수는 부족하지만 대형병원들의 병상 수는 많으니, 의사 한명 당 봐야 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다”면서 “그러다보니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고, 진료 역량을 높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간호계에서 요구하는 진료지원(PA)간호사를 제도화해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사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의료 인력의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도 간호사 역할이 크다. 간호법은 의·정 갈등 국면에서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21대 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의료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의료개혁에 따른 병원의 수입 감소와 비용 증가에는 정부의 재정 투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또 단기간 급격한 병원 비용 상승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악화에 대한 논의와 준비도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의료개혁에 따라) 증가된 병원 비용을 경영자가 감당하냐, 보험자가 감당하냐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서 “장기적으로 재정에 부담이 생길 것이고, 정부가 보전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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