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캐스팅’ 없이도 1위…“맷집 생겼지만, 지금이 가장 큰 위기” [K-컬처 위닝스토리]
빅5 대형제작자 중 영업이익 1위
변화하는 공연 환경·‘위기는 지금’
“타개책은 히트 신작의 개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장 성공한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 ‘미장센의 정점’에서 변치않는 사랑의 가치를 노래한 ‘아이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통렬한 시대 풍자극 ‘시카고’, 청춘들의 인생 찬가 ‘렌트’….
지난 37년간 ‘불멸의 히트작’을 숱하게 냈다. 신시컴퍼니는 1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을 세 편이나 가진 유일한 뮤지컬 제작사다. 성공작 뒤로 수많은 실패의 밑거름이 쌓였고, 나라 안팎의 사건 사고에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도 버텨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명작’을 만들어낸 것은 1세대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가 긴 시간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총괄 프로듀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지난 시간은 맷집을 튼튼하게 키워온 성장과정이었다”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를 세웠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가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제작사’인 것은 뮤지컬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면서도 시장의 경제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신과 가치를 지켜오면서도 만들어낸 제작사의 ‘실적’이다.
코로나19 이후 신시컴퍼니의 매출은 꾸준히 상승세다. 소위 빅5(신시컴퍼니, 클립서비스, 오디컴퍼니, EMK, 쇼노트) 뮤지컬 제작사 중 매출은 3위(373억원)이나 영업이익은 61억원으로 1위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57%, 258% 상승했다. 지난해 신시컴퍼니는 효자 작품인 ‘렌트’, ‘맘마미아!’, ‘시카고’ 월드투어를 비롯해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와 신작 ‘시스터즈’, 배우 손숙의 데뷔 60주년 기념 창작 연극 ‘토카타’를 무대에 올렸다.
뮤지컬이 산업화된지 20여년. 노동집약 산업인 뮤지컬 계는 하루가 다르게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다. 정소애 신시컴퍼니 본부장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공연 환경의 변화로 지금은 신시컴퍼니의 또 다른 위기”라고 말했다.
스타 캐스팅, 티켓값 상승, N차 관람의 감소, 대관 전쟁….
무대와 배우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이른바 ‘신시 정신’으로 버틴 지난 시간들은 온전히 뚝심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공연계의 보편적 흐름에서 비껴서 있다는 것은 신시에게 절체절명의 ‘위기론’으로 돌아오고 있다.
공연계에 만연한 스타 캐스팅은 티켓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관람 비용의 부담은 이른바 ‘회전문 관객’으로 불리며 같은 공연을 여러 차례 보는 N차 관람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현역 아이돌’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신시의 ‘캐스팅 철학’은 ‘버티기’ 승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달라진 흐름과 ‘타협’하지 않고, 기존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겠다는 소신 때문이다. 심지어 뮤지컬 티켓 가격은 나날이 치솟아 VIP 좌석 기준 19만원(기존 VIP석 15만원)까지 뛰었으나, 개막을 앞둔 ‘시카고’의 VIP석은 16만원이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스타 캐스팅이 많다 보니 제작비에 거품이 끼고 그 결과 제작비의 상승이 티켓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좋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들은 물론 관객들도 어려움을 겪는 때”라고 봤다.
설상가상으로 공연장에서도 ‘기동력’을 추구한다. 대관기간을 짧게 이어가는 상황에서 신시컴퍼니의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 제작기간과 무대 연습 기간이 긴 작품들은 ‘대관 전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뮤지컬 작품의 숫자는 넘쳐나고, 대형 제작사들이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극장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은 블루스퀘어, 샤롯데씨어터,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 디큐브링크아트센터,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등이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와 같은 작품은 아이들을 트레이닝하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제작 과정이 길다 보니 2~3년 전부터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극장가는 이미 2년 전 대관이 완료되다 보니 여건상 작품을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적 요인은 고스란히 ‘위기’가 되고 있지만, 공연계 전문가들은 신시컴퍼니의 방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 공연계는 15년간 이어온 스타 마케팅이 폭발적으로 커지며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은 “반드시 꺾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원 교수는 “브로드웨이를 봐도 스타 마케팅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이 시기를 벗어나면 작품의 완성도, 작곡가, 크리에이터 중심의 시장이 되리라 보기에 신시컴퍼니의 장기적 안목의 전략은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다”라고 했다.
무대의 기반을 다지는 배우의 발굴과 스타 의존도를 낮추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신시컴퍼니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 등 아역 배우들을 발굴해 트레이닝 기간에만 1~2년을 쏟아붓는 작품의 제작은 ‘미래 세대’ 뮤지컬 배우는 물론 미래 관객까지 발굴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시컴퍼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최승연 평론가는 “블루오션인 가족극은 현재 공연계에서 개발 흐름이 활발한데, 신시컴퍼니가 일찌감치 시작했다”며 “소위 ‘덕후’가 아닌 일반 관객,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 새로운 뮤지컬 관객 세대를 키워낼 수 있는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원 교수 역시 “어린 나이에 뮤지컬을 체험한 아이들은 훗날 이 장르의 충실한 소비자가 된다”며 “신시가 해온 장기적 안목의 관객 개발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우나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작품’이 든든한 뒷배가 돼준다는 것은 강점이자 약점이다. 탄탄한 라인업과 관객층을 확보해 안정성을 주는 반면, 자칫 안주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금의 신시컴퍼니에 ‘새로운 히트작’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승연 평론가는 “안정적인 레퍼토리를 운영하며 한국 시장에서 통하는 작품을 다수 보여한다는 것 자체가 제작사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기존 히트작이 10~20년 전 개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신작 히트 콘텐츠를 개발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했다.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도 “현재까지 신시의 히트작은 20년도 넘은 작품들인 만큼 이들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히트작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시컴퍼니도 타개책은 ‘신작’이라고 본다. 이들이 현재 주력하는 부분도 ‘신작 개발’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시컴퍼니는 라이선스는 물론 창작 연극, 뮤지컬 신작을 무대에 올리고 있고, 기존의 작품을 다시 올려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보여주는 시도 역시 이어가고 있다. 2022년엔 연극 ‘2시 22분’을, 2023년엔 연극 ‘토카타’와 뮤지컬 ‘시스터즈’를 올렸다.
올초 막을 올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15년 만에 다시 올린 작품이다. 신작은 아니었지만, 신작 못지 않게 싹 바꾼 영리한 연출과 감각이 돋보였다. 2003년 신시컴퍼니 연출팀에 공채로 입사해 ‘아이다’,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 등 대작들의 ‘협력 연출’로 무대를 이끈 이지영 연출가의 첫 단독 연출작이었다. 이 작품은 뻔한 러브스토리를 탁월한 연출 감각으로 재구성, 작품 곳곳에 ‘이스터에그’(Easter egg·숨겨진 메시지)를 심어놔 젊은 세대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물론 뼈아픈 실패작도 나왔다. K-팝 걸그룹 시초의 역사를 다룬 신작 뮤지컬 ‘시스터즈’다. 배우들의 엄청난 기량이 돋보인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의 대상을 가져갔으나, 흥행 면에선 아쉬운 점이 많았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여러 어려움을 뚫고 나가기 위해선 새로운 작품의 개발밖에 없다고 본다”며 “현재도 창작 뮤지컬 두세 편을 준비 중이다. 관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완성도 높고 수준 높은 창작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력하는 분야 중 하나는 한국적 소재의 뮤지컬 개발이다. 앞서 제작사에선 2007년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 조정래 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한 동명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시도였으나, 두 작품 모두 흥행엔 참패했다.
박 프로듀서는 그러나 “그간의 실패로 맷집이 생겨 이제 다시 도전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며 “한국인의 소리와 몸짓, 언어 등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뮤지컬을 만들어 기존의 트렌드를 바꾸고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 신시의 사명감이자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시컴퍼니의 실험은 꾸준히 ‘진행형’이다. 원종원 교수는 “한국적 소재의 콘텐츠는 신시컴퍼니가 오랜 세월 하고 싶었던 분야이나 그간 족적을 남길 만한 성과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라며 “다만 이 분야에 대한 도전은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니라 본다. 현재진행형으로 풀고 싶을 것”이라고 봤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도전엔 언제나 ‘파격’이 요구된다. 박 프로듀서는 “세계적 수준의 공연 흐름에 합류하기 위해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역발상을 추구하며 지치지 않고 더 큰 새로움을 찾아 나서야 할 때”라며 신시컴퍼니의 현재를 진단했다. “새로운 창작물엔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신시컴퍼니가 세운 방향성이다. 혁신적으로 변화한 무대를 만드는 것은 ‘신시컴퍼니의 숙제’다. “기존의 형식과 틀을 완전히 뒤바꿔 파격적인 스타일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작사의 판단이다.
박 프로듀서는 ‘신시의 미래 세대’가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업계 관게자들은 “10~20년 넘게 일해온 터줏대감들이 많다는 것은 신시컴퍼니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극단에서 출발해 ‘무대 정신’의 지키고자 한 신시컴퍼니의 정체성을 이어오면서도 세대의 변화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박 프로듀서는 뮤지컬 산업화를 일군 1세대 제작자이자 신시컴퍼니의 현재를 이끈 상징적 존재이나 정작 그가 대표 자리에 앉아있던 기간은 12년(1999~2011년 1월) 정도다. “신시는 개인 회사도 가족 회사도 아니”라는 생각에 빠른 ‘세대교체’를 이뤘다.
박 프로듀서는 “트렌드에 기민하고 경영능력도 탁월한 후진에게 자리를 내주고 젊은 사람들의 감각을 후원하고 지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며 “신시의 현재이자 미래인 후배들이 신시를 구닥다리 극단이 아닌 살아 숨쉬는 영원히 젊은 신시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시가 “버티기의 위기 속에서 굳히기를 하기 위해선 장르 확장과 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의 뮤지컬 트렌드는 화려한 무대와 연출, 오락성 위주의 스토리다. 반면 신시컴퍼니의 작품은 연극과 뮤지컬을 아울러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많다. 아이들이 미래를 바꿔나가는 즐거운 작품처럼 보이는 ‘마틸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따르면서도 이 안엔 블랙 유머와 풍자가 꽉꽉 채워져 있다.
원 교수는 “극단에서 출발해 깊이 있는 예술성과 철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작품이 많은 것이 신시의 특징이나 이와 더불어 색다른 시도가 필요하다”라며“지금의 공연은 단지 공연 콘텐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의 외연이 확장되는 만큼 웹툰, 드라마, 영화 콘텐츠와의 결합과 충돌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등 보다 진일보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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