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나라의 ‘마담 프레지던트’ [코즈모폴리턴]

홍석재 기자 2024. 6. 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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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1872~1913)이 말발굽에 채어 숨진 게 지금으로부터 꼭 111년 전, 6월8일이다.

데이비슨 시대의 영국 여성 참정권 투쟁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2016)에서 남성들은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가 무너질 겁니다. 그들의 투표권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 남편을 통해 잘 행사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숨지고 5년 뒤에야 영국에선 30살 이상 여성이 투표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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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재 | 국제뉴스팀 기자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1872~1913)이 말발굽에 채어 숨진 게 지금으로부터 꼭 111년 전, 6월8일이다.

그는 영국의 권위 있는 경마대회 ‘엡섬 더비’에서 영국 조지 5세 국왕의 말 ‘앤머’에 밟힌 지 나흘 만에 사망했다. 미국 시엔엔(CNN)은 기록 사진을 근거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 여성이 홀로 경주 트랙으로 뛰어들어 시속 55㎞로 질주하던 말과 부딪쳤고, 말발굽에 짓밟혔다.”

데이비슨은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적힌 깃발을 국왕의 말에 붙이려 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인 ‘서프러제트’ 가운데서도 더 급진적인 무력 투쟁이 필요하다는 편에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슨 시대의 영국 여성 참정권 투쟁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2016)에서 남성들은 “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가 무너질 겁니다. 그들의 투표권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 남편을 통해 잘 행사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한쪽에선, 한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데이비슨에겐 딸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투석, 방화, 폭행 등 혐의로 아홉 차례나 체포됐다. 옥중에선 단식 투쟁을 벌였다. 교정 당국이 그의 단식을 멈추기 위해 49차례나 강제로 밥을 먹였다고 한다. 그가 숨지고 5년 뒤에야 영국에선 30살 이상 여성이 투표권을 얻었다. 다시 10년 뒤, 1928년 남성과 같은 참정권을 보장받았다.

유럽 여성이 ‘뽑을 권리’를 넘어 직접선거로 첫 대통령에 ‘뽑힌’ 게 이때부터 반세기쯤 뒤의 일이다. 유럽에서 민주적 직선제로 처음 최고 권력에 오른 여성은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로, 1980년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됐다. 세계에서 성평등 지수가 높기로 이름난 아이슬란드지만, 여성 정치인 할라 토마스도티르가 핀보가도티르 퇴임(1996년) 이후 28년 만에 역대 두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게 지난 2일이다.

아이슬란드 대선 하루 뒤인 지난 3일에는 멕시코에서도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소속 여성 정치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차기 대통령 당선을 확정했다. 이 나라 200년 헌정사에서 여성 대통령은 처음이다. 9년 전까지는 여성 주지사도 없었다. ‘마초 문화’(남성 우월주의)로 악명 높은 멕시코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배출되자, 외신들도 배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복잡다단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멕시코는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정당에 여성 국회의원 후보 할당을 법으로 강제했다. 처음 30%, 이어 40%, 다시 50%까지 확대됐다. 2019년엔 모든 선출직 공직과 행정·사법부 고위직에 반드시 여성을 포함하도록 ‘모든 면에서 평등’을 규정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실질적 정치 참여가 보장되도록 감시했다. 제니퍼 피스코포 런던 로열홀러웨이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3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멕시코의 극적인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별 할당제, 성평등 개헌 같은 제도가 여성의 정치 참여 ‘정상화’에 맥락을 형성합니다. 아울러 더욱 중요한 건 (또다른 제도를 통해) 이를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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