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담은 지혜 가득”…할머니 SNS의 ‘잔잔한 매력’
[서울&] [정다정의 ‘소셜 미디어 살롱’] 노인정 등지서 스마트폰 활용법 교육
시니어 소셜미디어 사용자 크게 늘어
서툰 면 있지만 순수한 모습에 ‘즐거움’
‘구독자 수십만 명’ 인기 누리는 경우도
할머니 먹방 ‘영원씨TV’ 35만 명 구독
37년생 노인 ‘치매 예방 위해 그린 그림’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마음’ 전해줘
소셜, ‘시니어 소통 프로그램’ 자리 잡아
인스타그램에서 최근에 묘한 매력의 릴스로 시선을 사로잡은 계정이 있다. 바로 경상북도 영천에서 살구를 재배하는 70대 김원주씨(@g.________.j)다. 그는 무표정한 자기 사진을 웃기는 동영상에 편집해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준다. 그는 숏폼 동영상 속에서 가마솥 드론을 타고 하늘을 날고, 빛나는 태양 속에서 만세를 하며 나타난다. 약간 키치스럽지만 묘한 매력의 영상에 젊은이들이 더 열광한다. 요즘 노인정이나 치매 안심센터에서 스마트폰 활용법과 소셜미디어 사용법을 많이 교육한다고 한다. 김원주씨 역시 이렇게 영상제작을 배웠다.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시니어의 존재감이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퓨리서치센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10년 대비 65살 이상 인구의 소셜미디어 사용이 최근에는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18~29살 이용자들은 본인들이 거의 ‘항상’ 온라인에서 접속해 있다고 응답했다.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것, 인생의 교훈, 자신만의 비법 등을 기록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유형으로, 다른 크리에이터와 다르지 않다. 두 번째 유형은 조부모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손주들이 기획 제작자로 나서는 경우다.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도 손녀가 할머니의 치매를 걱정하며 만들기 시작했고 유튜브 먹방 콘텐츠를 하는 ‘영원씨TV’도 손녀가 사랑하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시작했다. 김영원 할머니는 지구 모양 젤리를 먹으며 ‘아이고 시어~” 하고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열심히 먹는다. 손녀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는 할머니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무려 35만 명의 구독자가 있을 정도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댓글도 많다.
37년생 할머니 화가 이상옥씨의 계정(@sang_ok_lee)에서 그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을 보다가, 자기소개를 보면 먹먹해진다. “6·25전쟁으로 전쟁고아가 되어 피난 가다가 정착한 곳에서 가정을 이뤘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고 자식들 교육시킨다고 고생으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83세에 치매 예방으로 달력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의 못 그린 그림을 보고 행복해합니다.” 사위가 올리는 게시물에도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시니어 패션 콘텐츠 제작사 더뉴그레이(@thenewgrey)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시니어들에게 패션, 사진, 동영상 촬영기술 등을 알려주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돕는다. 다양한 개성이 있는 시니어들에게 자기 생각, 라이프스타일 등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시니어 패션모델 에이전시를 겸하고 있어 시니어 모델 양성소로도 불린다.
광진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추정애씨(@jayonstudio) 역시 더뉴그레이에서 교육받았다. 올해 67살인 추씨는 배움에 적극적인 크리에이터다. 유튜브에서 댄스 선생님을 찾아서 셔플댄스에 도전하고 본업인 사진도 열심히 찍는다. 짧은 릴스 동영상에 덤덤하게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독백에 사람들은 응원을 보낸다. 유튜버이자 소녀 감성으로 유명한 50대 김선씨는 전복 선글라스, 깃털 눈썹 등 자연주의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고(소녀 감성으로 살기, vlog), 처음에는 악플도 받았다. 하지만 팬들이 ‘김선 소녀 감성 모르면 나가’라는 밈을 유행시킬 정도로 그의 개성을 인정해주면서 더 화제를 끌었다.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인기는 한국만이 아니다. 할머니 손맛 요리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할머니 크리에이터(@nonnarazia) 등 셀 수 없는 크리에이터가 개성을 뽐낸다. 일본 크리에이터인 ‘@conamayon’은 케이팝 안무를 따라 하는 커버댄스로 인기가 많다. 남편 마욘씨는 51살, 부인 코나씨는 59살이다. 이 둘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데, 100살까지 춤추겠다는 멋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의 열정 넘치는 안무를 보면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만의 86살 창완지 할아버지와 87살 쑤쉬에 할머니의 패션 화보 계정 ‘@wantshowasyoung’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 부부는 1959년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은 세탁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손자의 아이디어로 부부가 그 옷들을 멋 내서 입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패션 화보 못지않은 게시물이 인기를 끌어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72만 명이 되면서 영국 방송 <비비시>(BBC)나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 등에도 보도됐다. 평생 세탁소에서 성실하게 일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인생이 즐겁다며 새로운 변화를 즐겼다. 안타깝게도 2023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더는 함께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패션에 열광하고 그들을 그리워한다.
소셜미디어는 사랑하는 사람들,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찬재 할아버지의 인스타그램 계정(@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이 바로 그렇다. 이찬재씨는 브라질에 이민을 가서 살다가 자녀가 한국으로 돌아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그리운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그림에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을 준다. 전세계 사람들이 그 그림에 감동해 자국 언어로 댓글을 단다. 81살의 이 부부는 얼마 전에는 1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를 그려 공공 장소에 놔두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나비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사랑을 받고 나누는 선순환이 이 세계에서 이뤄진다.
시니어들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고 참여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시니어 크리에이터들도 다른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콘텐츠에는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준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올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잊고 살았던 사랑의 따뜻한 가치를 보여주는 시니어 크리에이터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감동을 준다. 지금 젊은 세대가 시니어가 되면 소셜미디어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그들은 어떤 경험과 사랑을 나눠주는 시니어 크리에이터가 될까 궁금해진다.
정다정 메타코리아 인스타그램 홍보총괄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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