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렛 증후군’ 인식의 날

한겨레 2024. 6.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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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질 드 라 투레트는 성공한 의학자였다.

우리가 투레트라는 이 불운한 의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까닭은 그의 연구 때문이다.

스승 샤르코는 틱 장애를 연구해보라고 제안했고, 젊은 투레트는 독특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찾아내 학계에 보고했다.

샤르코는 제자의 연구를 기려 이 질환을 '투렛 증후군'이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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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조르주 질 드 라 투레트 (1857~1904)

조르주 질 드 라 투레트는 성공한 의학자였다. 19세기 후반 유럽 의학계를 이끈 장마르탱 샤르코의 제자였고 스승과 함께 연구했다. 샤르코는 최면술과 신경증에 관심이 많은 신경의학의 대가였다.

투레트의 말년에 불행이 닥쳤다. 그가 치료하던 환자가 1893년에 “원치 않는 최면 치료를 했다”며 투레트를 쐈다. 투레트는 목에 총을 맞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충격이 컸다. 곧이어 스승 샤르코가 숨졌고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투레트는 깊은 우울에 시달렸다.

1901년에 드리우 사건이 터졌다. 경찰 에밀 드리우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음식을 먹지 않다가 숨졌다. 투레트는 유족의 동의를 얻어 시신을 부검했다. 뇌를 연구할 목적이었다. 빈 두개골 안에 신문지를 채웠다. 이 일이 문제가 됐다. 의대생이 공부하려고 무덤에서 시신을 훔친다는 소문이 돌던 시대였다. 투레트가 죽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투레트는 무너졌다. 의사 일을 더는 할 수 없었다. 1904년 로잔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우리가 투레트라는 이 불운한 의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까닭은 그의 연구 때문이다. 스승 샤르코는 틱 장애를 연구해보라고 제안했고, 젊은 투레트는 독특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찾아내 학계에 보고했다. 샤르코는 제자의 연구를 기려 이 질환을 ‘투렛 증후군’이라 이름 지었다.

투렛 증후군은 다양한 운동 틱과 음성 틱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눈을 찡그리거나 헛기침을 하고, 의도치 않게 욕설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행동이 불쾌하고 말씨가 곱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차별과 편견에 노출된다. 대체로 청소년기에 겪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 그런데 이는 투렛 증후군의 증상일 뿐, 이 사람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일부러 규범을 어기거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이런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투렛 증후군에 관심을 가질 이유다. 해마다 6월7일은 ‘투렛 증후군 인식의 날’이다. 투렛 증후군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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