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혁신기업] 세포부터 UAM까지… "버추얼 트윈의 폭발력 보여주겠다"

안경애 2024. 6. 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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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가상공간서 설계·테스트… 비용 ↓ 품질 ↑
자동차·조선 설계·제조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
세포·인간까지 버추얼 트윈으로 암정복 목표
"인공지능·로봇 결합으로 강력한 시너지 기대"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다쏘시스템코리아 제공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을 도입해 공기 순환 시뮬레이션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점검하는 프랑스 파리 생루이 병원의 시스템 화면. 다쏘시스템 제공
지난 2월 11~1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다쏘시스템의 연례행사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4' 기간에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4' 광고가 표시되고 있다. 다쏘시스템코리아 제공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우주기지를 연상시키는 금속 재질의 출입문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형 모니터가 군데군데 설치된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기업들이 3D 설계·테스트 기술 체험과 시연, 소규모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3D익스피리언스 이그제큐티브 센터'다. 다쏘시스템은 2019년 6월 세계 여섯번째,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이 센터를 열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는 "최근 센터를 전면 리모델링해 고객들이 더 쾌적하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면서 "가상현실(VR) 장비와 대형 모니터로 프로젝트 결과를 시연하거나 설계도면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3D 가상공간으로 옮긴 현실세계…'제조의 ABC' 바꾸는 기업=정 대표는 작년 2월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를 맡아 산업과 도시, 사람들의 건강과 일상을 바꾸는 일을 이끌고 있다. 1992년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 대표는 한국후지쯔를 거쳐 2005년부터 20년째 다쏘시스템에 몸담고 있다.

1981년 사업을 시작한 다쏘시스템은 산업 현장의 설계와 제조, 엔지니어링 전 과정을 3D 디자인을 중심으로 바꿔왔다. 기업들은 자동차부터 전투기까지 가상 공간에서 설계하고 디지털 목업을 제작해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혹시 모를 품질 문제를 예방한다. 플랫폼 위에서 제품 설계·테스트·엔지니어링 관련 조직이 협업함으로써 업무적 단절로 인한 비효율도 피할 수 있다.

다쏘시스템이 제시하는 키워드는 '버추얼 트윈'이다. 3D 설계 기반 협업 플랫폼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 핵심이다. 정 대표는 "다쏘시스템은 40년 이상 가상 세계를 창조하고 고객이 이 세계에서 작업해 뭔가를 만들고 개선하도록 지원해 왔다"면서 "자동차·전기전자·항공기·방산 등 제조산업군에 더해 도시·플랜트·건축 등 인프라와 헬스케어까지 혁신을 돕는다"고 말했다.

◇설계·생산 과정을 버추얼 트윈 기반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버추얼 트윈은 디지털 트윈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으로, 물리세계의 특성을 반영해 분자부터 세포, 전투기, 도시 등을 가상공간에서 설계하고 테스트·시뮬레이션·생산함으로써 현실세계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문제를 풀도록 돕는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 산업이다.

정 대표는 "세계 자동차 제조사의 90% 이상이 우리 고객이다. 최근 자동차 기업들은 훨씬 진화된 형태의 인프라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단절됐던 부서들을 단순히 연계하는 게 아니라 통합하고 있다. 일단 통합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시너지를 가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르노의 경우 자동차 개발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3D 설계, 시뮬레이션, 제품수명주기(PLM) 등을 단일 플랫폼에서 하면서 이를 과감히 클라우드 환경으로 옮겼다.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을 구독서비스 형태로 쓴다. 독일 BMW, 일본 자동차 기업들도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플랫폼 상에서 공급사들과 협업·소통한다.

"전기차·자율차가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됐다. 부품이 수십만개에 달하는 내연자동차에 비해 부품 수는 훨씬 적지만 자율주행 등이 도입되면서 기술적으로는 더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이 심화되니 기업들은 과거 24개월 정도였던 제품 개발 기간을 18개월 이하로 줄이려 한다"는 정 대표는 "그러면서도 안전과 내구성, 성능을 만족시켜야 하니 설계 단계부터 과거와 다른 접근을 한다. 설계 과정에서 최대한 모든 문제를 다 검토하고 검증해 문제를 잡아내기 위한 답은 버추얼 트윈"이라고 밝혔다.

◇조선 제조도 버추얼 트윈…"실제 세상과의 간극 0이 목표"=조선 현장에도 버추얼 트윈이 고려되고 있다. 다쏘시스템은 버추얼 트윈 기반으로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의 설계·생산 일관화 통합 플랫폼 구축계획을 지원하고 있다.

설계와 생산을 단일 플랫폼에서 하는 일관 프로세스를 구현, 일정을 단축하고 비용을 줄이면서 건조 효율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고숙련자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젊은 층은 작업을 꺼리는 조선 현장에 최대한 자동화를 구현하는 게 목표다. 정 대표는 "자동화를 위해선 사람이 인지하는 정보가 아니라 기계가 인지하는 정보를 줘서 자동화해야 한다. 버추얼 트윈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버추얼 트윈은 기존의 물건을 가상공간에 모사해서 만드는 디지털 트윈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정 대표는 강조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버추얼 트윈은 기존에 없는 물건을 미리 만들어 봄으로써, 물건이 나왔을 때 발생 가능한 모든 요소를 검토해서 고치는 개념입니다. 이를 위해선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던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법을 총동원해서 가상공간에서 모든 위험요소를 잡아내야 합니다."

정 대표는 "플랫폼이란 개념이 낯설었던 2012년부터 다쏘시스템은 시대적으로 앞서서 플랫폼을 얘기했다. 바로 3D 경험 기반의 플랫폼"이라면서 "이후 버추얼 트윈의 정확도를 높이고 최적화해 실제 세상과의 간극을 좁혀 왔다. 궁극적 목표는 실제 세상과 버추얼 세상의 간극을 0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후장대한 제조현장이 아니더라도 버추얼 트윈의 효용성은 확실하다. 유럽 최대 스킨케어 브랜드 클라랑스는 제조 운영관리와 업무에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플랫폼을 도입, 종이 없는 업무 환경으로 전환하고 생산능력과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아레나는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웍스를 활용, 버추얼 트윈에서 실시간 정보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협업해 제작, 테스트,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경 시제품 제작 주기가 70% 줄었다.

3D 구강 스캐너 기업 메디트는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기반 PLM시스템을 구축했다. 제품 설계, 테스트, 생산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도입해 경쟁력을 높였다. 동서식품은 포장 규격 데이터에 대한 이력 확인·관리를 체계화했다.

인프라 영역에서는 강원 영월군과 '버추얼 트윈 기반 도시 플랫폼 조성'에 협력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와 도시재생을 위해 건설, 관광, 스마트시티를 연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영월군 봉래산 정상부에 위치한 별마로 천문대 주변과 동강 등을 연계한 '봉래산 명소화 프로젝트'에 버추얼 트윈을 적용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2년간 영월군 스마트시티화도 추진한다. 기업들이 급변하는 기술을 산업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도 강화하고 있다. PwC컨설팅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솔루션·컨설팅·시스템 구축을 연계하는 협업에 나섰다.

◇분자·사람·장기도 '버추얼 트윈'=기계부터 시작한 버추얼 트윈은 분자를 포함한 나노 영역까지 넓혔다. 바이오로도 확장했다. 정 대표는 "분자 단위로 가고 휴먼 버추얼 트윈도 구현하고 있다. 가상 심장을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돼 '버추얼 트윈+AI'의 폭발적인 시너지가 기대된다. AI가 물리적 세상과 만나 로봇 산업에서 꽃을 피우고, 제조현장과 일상에서 사람과 로봇, AI가 어우러지려면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 세상 간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실제로 국내외 제조기업과 AI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조현장에 투입해 사람과 협업하는 모델을 그리고 있다.

정 대표는 버추얼 트윈과 로봇이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로봇 제조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로봇이 제조현장에 투입되려면 안전과 정확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똑같이 가상 환경을 꾸며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위험요소는 없는지를 미리 확인하고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쏘시스템의 '델미아'가 로보틱스 분야에 주로 적용된다. 3D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공간에서 생산라인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사람과 여러 대의 로봇이 안전하게 협업하도록 뒷받침한다.

◇"블랙박스 같은 AI는 No…ILM으로 고품질 답 주겠다"=정 대표는 특히 생성형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버추얼 트윈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상세계의 정확도가 빠르게 높아질 것을 내다봤다. 다만 다쏘시스템은 데이터의 신뢰성과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블랙박스' 같은 AI가 아니라 고객이 축적한 데이터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최근 생성형 AI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의 지향점은 분명하다"면서 "기업 내에 축적된 데이터를 학습해서, 과거의 문제와 경험,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제품을 만들도록 가이드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모순되거나 윤리적 문제가 없는, 품질이 확보된 정보를 주는 것"이라면서 "다쏘는 대형언어모델(LLM)이 아니라 산업언어모델(ILM)이란 용어를 쓰는데,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고품질의 답을 주는 AI"이라고 밝혔다.

3D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통합한 최적 값 산출, 형상 최적화를 통한 무게 최소화 등에도 AI가 쓰인다. 최적의 3D 형상을 추천하고 유사한 형상을 찾아주는 기능도 갖췄다.

임상연구 데이터 솔루션 기업 메디데이터를 인수한 데 이어 의학·바이오 영역에 버추얼 트윈과 AI를 확산하는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AI를 활용한 인체 버추얼 트윈을 선보였다. 가상세계에 심장, 뇌, 폐, 장, 눈 등을 구현하고, 개인화된 버추얼 트윈이 음식 섭취와 운동 방법을 제안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자동차든, 기계든 결국 소비자인 사람이 어떻게 재미나고 안전하게 경험하게 하느냐를 고려해야 한다. 다쏘시스템이 바이오 기술을 다루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정 대표는 "다쏘시스템이 세운 바이오 분야 단기 목표는 암 정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심장, 뇌, 혈관, 신경계를 시작으로 버추얼 휴먼을 구현하고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것이 그 맥락이다.

◇K-제조산업과 함께 성장…"제조혁신·인재양성 기여 계속할 것"=다쏘시스템은 국내에 2만2000여개 고객을 두고 그 중 약 2만개가 중견·중소기업이다. 우리나라 제조산업과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 기업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도 글로벌에서 쌓은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제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3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것도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다. "회사의 공간도 중요한 만큼 사무실 인테리어도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새로 했다"며 "직원들이 긴장감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인하대, 창원대, 고려대 등과 협력해 인재양성을 돕고 있다는 정 대표는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할 부분을 찾겠다"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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