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팀장 검거’ 지휘한 최장기간 인터폴 계장 “잡아들인 범인만 2000여명”

배시은 기자 2024. 6. 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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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수사’ 전재홍 서초서 경무과장
해외 도피 사범 추적 다룬 책 출간
“후배에 검거 노하우 공유하고 싶어”
전재홍 서초경찰서 경무과장이 6일 서울 서초경찰서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재홍 서초경찰서 경무과장(53)은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 2000여명을 한국으로 송환한 ‘해외공조수사’ 전문가다. 전 과장은 경찰 역사상 최장기간인 8년간 경찰청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계장을 맡으며 국외도피사범 검거를 기획하고 지휘했다.

전 과장은 2003년 경찰간부후보생 외사 계열로 입직해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프랑스어를 전공한 전 과장은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스레 외국인 관련 범죄를 다루는 외사 경찰에 지원하게 됐다. 이후 인터폴 계장을 맡은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 과장은 인터폴 계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며 쓴 책 <지구 끝까지 쫓는다>를 지난 달 출간했다. 인터폴 적색수배 발부부터 첩보 수집, 검거와 국내 송환까지 해외 도피 범죄자 수사 과정을 실제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장기 인터폴 계장의 국제공조 수사 일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쌓은 국외 도피범 검거 노하우를 정리해 후배에게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전 과장은 “(국제 공조 수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고 6일 말했다.

범죄를 저지른 후 필리핀으로 도피했다가 현지에서 검거돼 송환된 40여명의 피의자들이 2017년 12월 호송경찰들과 함께 인천공항 입국장을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여러 사건이 전 과장을 거쳤다. 최근 흥행한 영화 <범죄도시4>의 모티브가 된 ‘파타야 살인사건’의 주범, 남태평양 피지로 건너가 신도들을 감금하고 폭행한 이단 종교 ‘은혜로교회’의 교주, 보이스피싱의 원조 격인 ‘김미영 팀장’ 등이 전 과장의 지휘로 검거·송환됐다.

전 과장이 가장 신경 썼던 사건 중 하나는 이른바 ‘한국판 콘에어’ 작전이었다. 2017년 필리핀에서 해외 도피 범죄자 47명을 한꺼번에 국내로 이송한 작전을 말한다. 그는 호송 시나리오를 수백 번 그려보고 모든 리스크에 대비했다고 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자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검거된 범죄자들이 먹을 기내식으로 수저를 써야 하는 음식 대신 샌드위치로 준비하도록 했고, 교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송환 작전이 지장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휘팀을 둘로 나눠 이동했다. 전 과장은 “무조건 잡겠다는 의지와 추진력이 있으면 검거는 따라오더라”고 말했다.

여권과 항공권만 있으면 언제라도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범죄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이버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마약 밀반입 등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내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해외로 도피했거나 해외에 근거를 둔 범죄자를 잡기 위한 첫 걸음은 그들의 이동을 차단하는 것이다. 경찰은 우선 해당 범죄자에 대한 ‘여권 무효화’를 외교부에 요청한다. 범죄자들의 여권 사용을 차단해 국가 간 이동을 막기 위해서다. 중대한 범죄자의 경우 인터폴의 수배 유형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적색수배’를 요청한다. 이후 범죄자의 소재 등에 대한 첩보를 수집한 뒤 범죄자 위치가 어느 정도 좁혀지면 현지 경찰에 검거를 요청하거나 국내에서 수사팀을 꾸려 현지로 파견한다.

전 과장은 인터폴 계장으로 부임한 후 ‘적색수배’ 기준을 낮추는 작업을 했다. 기존 인터폴 적색수배 기준이 높아 국민적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50억 이상 경제사범’이었던 기존 기준을 ‘5억 이상 경제사범’으로 낮췄다. 피해액의 기준을 낮추면서 쫓을 수 있는 범죄자의 범위가 넓어졌다.

최근 범죄 동향은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비대면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다. 전 과장은 “도박장도 사이트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도박’ 형태로 진화하고 있고, 보이스피싱도 해외에 본거지를 두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에서 이뤄지는 지능형 범죄가 늘어나는 양상을 봤을 때 수사기관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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