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활엽수 모두 많은 백두산은 ‘인류 산림자산’

서울앤 2024. 6. 6. 13: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지석의 숲길 걷기 ② 백두산의 나무

[서울&] 습지 많은 백두산 지역의 버드나무들

우리 민족의 생명력·진취성 드러내고

자작나무 흰색 수피 ‘백두산 흰빛’ 상징

용정 옆 비술나무, 역사 증인인 듯 ‘우뚝

물의 신 딸이 천신의 아들과 눈이 맞아 아기를 갖는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출산하는데, 닷 되 크기의 알을 낳는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커서 나라를 세운다. 고구려 건국 신화다. 물의 신은 하백, 천신의 아들은 해모수, 아이는 주몽이다. 주인공인 하백의 딸은 유화부인이다.

유화는 버드나무 꽃이라는 뜻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한다. 백두산은 압록강과 송화강, 두만강의 발원지이고, 백두산과 이 세 큰 강 주위에는 습지가 많다. 유화부인은 물과 이웃하고 버드나무를 벗 삼아 살아온 우리 선조의 끈질긴 생명력과 진취적 정신을 상징한다.

사시나무

백두산 지역은 지구촌에서 버드나무 종류가 가장 풍부한 곳으로 꼽힌다. 버드나무과 나무는 잎이 좁고 긴 버드나무속과 잎이 둥근 사시나무속(포플러)이 비슷하게 많은데, 백두산 지역에는 사시나무속이 훨씬 흔하다. 무엇보다 ‘사시나무 떨듯이’ 가벼운 바람에도 잎이 찰랑찰랑 흔들리는 사시나무가 쉽게 눈에 띈다. 황철나무, 개키버들, 능수버들 종류도 곳곳에서 손을 흔든다.

종비나무

우리 산에는 참나무 6형제와 소나무가 가장 많다. 반면 백두산 숲에는 자작나무, 느릅나무, 버드나무 종류에다 국내 고산지역에 가야 만나는 침엽수인 종비·가문비·잎갈·분비나무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찌른다. 참나무 중에는 추위에 강한 신갈나무만 눈에 들어온다. 연변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2~6도로 국내 고산지대와 비슷하다. 백두산의 나무는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과 한라산까지 이어져 있다.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

자작나무는 하얀 수피만으로도 존재감이 강력하다. 국내에서는 마을나무(당산목)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흔하고 은행나무가 가끔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 역할은 자작나무로 넘어간다. 백두산의 ‘백’은 자작나무의 흰 수피와 통한다. 고도가 높아지면 자작나무는 같은 집안인 거제수나무와 사스래나무에 자리를 내준다. 거제수나무는 수피가 종잇장처럼 벗겨지고 붉은빛이 돈다. 백두산 위쪽에서 단일 군락을 이뤄 장관을 연출하는 사스래나무는 반짝이는 은빛 수피를 자랑한다. 기후 탓에 굽은 나무가 많지만 그런 강인함이 감동을 준다.

용정(용우물)과 비술나무

가로수로는 버드나무 종류 외에 비술나무와 느릅나무가 많다. 같은 느릅나무과지만, 비술나무는 잎이 더 작고 수피에 흰 수액의 흔적이 보인다. 느릅나무과 가운데 꽃이 가장 빨리 피고 열매가 크다. 이 나무는 이곳 중요한 자리에 꼭 있다.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 용정시의 용정(용우물) 바로 옆에도 비술나무 고목이 역사의 증인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국내 가로수로 흔한 벚나무는 보기가 쉽지 않다. 몸체와 꽃이 멋있는 나무가 많은데, 기후변화와 병충해에 취약한 벚나무를 많이 심을 이유가 없을 법하다.

미인송

소나무는 산에는 많지 않으나 공원에는 웬만큼 있다. 다른 침엽수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의외로 조선족자치주의 주수(주의 나무)는 미인송이다. 국내 금강송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소나무로, 백두산 북파 부근 이도백하에 자생지가 있다. 멋진 나무임은 분명하나 주수로 지정된 데는 이유가 있음 직하다. 1980년대에 중국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이 이곳을 방문해 이 나무를 칭찬하고 미인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현지인이 힌트를 준다.

산진달래

주화(주의 꽃)는 진달래다. 도시 주변은 물론이고 고산지대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떨기나무(관목)다. 진달래과 식물은 백두산과 한반도를 하나로 묶는 ‘민족의 나무’라고 할 만하다. 식물학적으로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국내에서 보기 쉽지 않은 산진달래다. 진달래보다 꽃이 작고 상록인 점이 다르다.

진퍼리꽃나무

진달래과 가운데 이도백하 습지에서만 자라는 귀한 존재가 있다. 진퍼리꽃나무다. 진퍼리는 진펄현호색의 진펄과 마찬가지로 진 땅을 뜻한다. 개화 시기도 날씨에 민감해, 꽃을 본 것 자체가 행운이다. 가지 끝에 아래로 달린 꽃이 마치 작은 종의 행렬 같다. 꽃 모양이 비슷한 진달래과 식물로 월귤, 홍월귤, 들쭉나무 등이 있다. 시기가 맞지 않아 꽃과 만나지 못하고, 들쭉술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댕댕이나무

꽃이 두 개씩 모여 피는 떨기나무인 괴불나무 종류는 국내보다 다양하고 화려하다. 괴불나무와 올괴불나무는 물론이고, 잎끝이 길게 나오고 털이 많은 각시괴불나무, 비슷하지만 털이 거의 없는 물앵도나무, 붉은 꽃이 달리는 홍괴불나무, 꽃이 아래로 달리는 댕댕이나무까지 ‘괴불천국’이다. 모두 꽃과 열매의 모양이 노리개인 괴불을 닮았다.

숲 가장자리와 길가에서 희고 풍성한 꽃을 과시하는 나무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귀룽나무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여 있다. 산사나무도 그 옆에서 장단을 맞춘다. 국내에서 고산지대로 가야 나타나는 야광나무는 마을 주변에서도 만발한 꽃을 보여준다. 이름대로 꽃으로 밤을 밝힌다고 할 만큼 빛이 난다. 꽃 모양이 귀룽나무와 비슷한 개벚지나무도 꽃잔치에 동참한다.

국내에 많은 단풍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같은 과인 만주고로쇠나무와 고로쇠나무가 흔하다.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산겨릅나무, 시닥나무, 청시닥나무, 당단풍 등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중국 땅답게 중국단풍도 곳곳에 있다. 가시가 많은 생열귀나무와 인가목, 흰인가목 등도 국내에선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다.

풀꽃들이 그렇듯이 우리나라에 흔한 나무도 적지 않다. 어디에나 있는 물푸레나무는 이곳에서도 당당하다. 딱총나무는 뒤늦게 꽃봉오리를 달고 있고, 거리에 많은 흰말채나무와 노랑말채나무도 꽃을 피우려 한다. 살구나무는 이미 국내와 비슷한 크기의 열매를 달고 있다. 이곳에는 사과와 배를 교잡해 두 과일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과배가 있다. 주도인 연길 외곽에 17㎞의 과수원 지대를 이룰 정도로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지하삼림의 쓰러진 나무들

백두산의 생태 조건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화산지형이 뚜렷하다. 제주도의 곶자왈을 연상시킨다. 토층이 얕고 바위가 많아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좀 불면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태풍이 백두산까지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백두산 숲길걷기는 깊은 맛과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한다. 이곳 숲에는 침엽수만큼이나 활엽수가 많다. 추운 지역의 대규모 혼합림은 지구촌에서 많지 않다. 백두산 숲은 인류의 공동자산이다. 중국이 얼마나 잘 지켜나갈지 모르겠다.

글·사진 김지석 나무의사·언론인 jisuktree@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