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1.안성 3·1운동기념관

경기일보 2024. 6. 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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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원곡면에 위치한 안성 3•1운동기념관은 1919년 3•1운동 당시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일제 식민통치기관을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이룩했던 안성4•1만세운동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윤원규기자

 

“피고들이 선동에 응하여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등에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일으키기에 이르도록 한 사실로써….”

1919년 8월1일 경성지방법원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손병희 외 47인의 판결문의 내용이다. 안성은 3·1운동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난 4월1~2일 주민 2천여명이 실력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이룩한 곳이다.

안성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역사와 관련 유물이 전시 되고 있는 상설 전시실 전경. 윤원규기자

■ 안성, ‘2일간의 해방’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전시관에 들어서면 ‘나는 전부터 조선독립을 희망하고 있었다’는 글귀를 마주하게 된다. 1919년 5월4일 안성경찰서에 구속돼 조선총독부 검사의 신문을 받던 최은식의 진술이다. ‘2일간의 해방’과 ‘안성, 실력항쟁으로 일제를 몰아내다’는 글귀가 2일간의 해방의 역사를 증언해 준다.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든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3월11일 오전 11시, 양성공립보통학교 조회 시간에 보성전문 남진우와 선린상업 고원근이 이끈 학생들의 시위 장면이다. 이 시위는 안성에서 일어난 최초의 3·1운동이다.

일제강점기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들의 범죄인명부. 윤원규기자

15장의 누런 종이는 또 무엇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범죄인명부’다. 양성명과 삼죽면의 주민 중 일제강점기에 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들을 기록한 명부인데, 1919년부터 1944년까지 양성면에 거주한 298명의 주소, 출생지, 본적, 본명, 이명, 신분, 직업, 판결일, 죄명, 형량을 기록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참여해 일제로부터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며 일제가 한국인을 얼마나 치밀하게 억압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고준성 학예사가 흥미로운 사실을 들려준다. “이 중요한 문건은 1988년 양성면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중발견한 것입니다. 삼죽면 175명의 기록은 2016년 삼죽면 서고를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것이지요.” 안성의 만세운동을 알리는 당시의 신문을 스크랩한 것도 눈여겨본다. 1920년 7월 동아일보에 실린 ‘안성사건 예심결정서, 최은식 외 127명 3월22일 고등법원에서’라는 제하의 기사가 상세하다. 일제 경찰이 그린 만세운동 현장의 피해 현황을 평면도에 기록한 전시물도 눈길을 끈다. 일제 경찰의 꼼꼼한 기록 덕분에 만세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독립운동가들의 건국훈장이 여럿 전시됐다. 이종우 (현)광복회안성시지회장의 독립유공자 이진영 선생 훈장증, 원유선 (현)광복회안성시지회 운영위원의 독립유공자 이발영 선생 훈장도 있다. “이진영 선생은 원곡·양성면 만세운동에 참여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이발영 선생은 원곡·양성면 만세운동에 참여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지요. 두 분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지 못해 미전수 독립유공자로 남아있는 분이 적지 않다. 광복 후 서둘렀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다.

안성 3·1운동기념관. 윤원규기자

■ 역사에서 안성의 저항정신을 발견하다

고려 공민왕 시절 10만의 홍건적이 침략해 개성에 있던 왕이 안동까지 쫓겨갔으나 적의 위세에 눌려 감히 맞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안성 사람들이 거짓으로 항복해 그들에게 협력하는 체하고 잔치를 열어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장수 여섯을 죽여 홍건적이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이 전공으로 현에서 군이 된다. 안성인의 기질은 몽골 침략 때도 나타난다.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의 공격을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와 지역민들이 크게 물리쳤다. 임진왜란 때 홍계남의 의병부대는 서운산성을 무대로 신출귀몰하며 왜적을 물리쳤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안성인의 저항정신은 변함없이 발휘됐다. 일본인의 점방에서 물건을 사지 않아 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칼을 찬 헌병을 앞세워 조선인에게 공포를 심어줬으나 1919년 봄,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안성 원곡면과 양성면은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과 보복을 피해 고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 면세가 크게 줄어들었을 정도였다.

안성 3·1운동기념관. 윤원규기자

1919년 4월3일 원곡·양성지역에 조선주차군 제20사단 보병 제40여단 제29연대 병력 25명을 파견해 경찰과 함께 만세운동 참여자들을 검거한다. 4월19일 가족, 친지들의 설득으로 피신했던 참가자들이 원곡초등학교 뒷산에 모이자 헌병대는 몽둥이로 폭행하고 저항하거나 도망하는 사람에게 총을 쏘아 죽이며 체포해 30리 떨어진 안성경찰서로 연행한다. 6월1일에도 36명의 병력을 재차 파견해 800여명의 참가자를 체포하고 276채의 집을 불태운다. 이 과정에서 순국한 사람이 26명이나 됐다. 41명이 태형을 받고 177명 투옥돼 최고 12년의 옥고를 치렀다.

3·1운동으로 출범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한 수많은 항일단체와 비밀결사가 조직돼 격렬한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죽산면 출신 김태원은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국내로 잠입해 군자금 모집, 철혈단과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활동하다 1920년 8월 일제에 체포돼 징역 3년 형을 받고 투옥됐다. 3·1운동은 금광면 출신인 유만수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45년 5월 조문기, 강윤국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해 7월24일 부민관에서 열린 아시아민족분격대회 대회장을 폭파해 친일파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독립운동가 유만수 선생을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을 열었다.

광복사에는 안성 출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328위가 모셔져 있다. 윤원규기자

■ 시민의 가슴에 깊이 스며드는 전시관

안성시는 국가보훈부 경기동부보훈지청과 공동으로 안성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선양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매달 안성의 독립운동가 한 분을 알리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5월의 안성 독립운동가’는 서운면 출신의 이한영 선생이다. 안성시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유물 및 자료 기증 캠페인도 꾸준하게 펼치고 있다. 이 사업으로 2019년 최재석 선생의 건국훈장(애족장)외 6건, 2020년 안기봉 선생의 대통령 표창, 2021년 윤영삼 선생의 건국훈장(애족장), 2022년 이치순 선생의 대통령 표창 외 2건, 2023년 이발영 선생의 건국훈장(애족장), 이진영 선생의 건국훈장(애족장) 기증이 이뤄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별전시 ‘독립운동가 한재호’와 영상전시 ‘2일간의 해방’은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독립운동가 한재호’는 원곡과 양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안성3·1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한재호 선생의 일상을 그린 점도 신선하다. “한재호 선생은 안성읍내에서 광성당한약방을 운영해 이웃의 건강을 살피며 시조와 한학을 즐기던 평범한 분이었습니다. 선생의 손자 한병일씨의 추억과 소장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된 ‘독립운동가 한재호’ 전시는 일제강점기 격렬한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이었고, 어떻게 지역과 나라 그리고 이웃의 평안을 위해 일어서게 됐는지 그 심정을 살펴보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360도 서클비전 영상실에서 상영되는 영상전시 ‘2일간의 해방’을 통해 안성이 실력 항쟁지로 명성을 떨치게 된 2일간의 해방의 역사적 순간을 체험해 본다. 어두운 밤 소리죽여 모여든 주민들이 하나둘 횃불을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큰 불꽃이 번져나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호국보훈의 6월이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안성3·1운동기념관을 찾아보자. 독립유공자 328명의 위패가 봉안된 광복사를 참배하고 3·1독립항쟁기념탑을 둘러보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생각해 보자. 전시관을 안내하던 기념관 관계자가 필자에게 들려준 약속이 미덥다. “앞으로도 시민과 함께하는 보훈문화 행사를 다양하게 준비할 것입니다. 지역의 역사와 함께 언제든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안성3·1운동기념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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