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성공’ 전여옥, 애잔한 심경 “2024년, 제 인생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권준영 2024. 6. 6. 11: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장암 4기’ 전여옥 前 의원, 유튜브 통해 암 수술 이후 그간 있었던 심경 상세히 밝혀
“아주 솔직히 얘기하면 ‘너도 살고 싶어 했구나’라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사랑하는 분들, 제 아들 위해 제 모든 걸 아낌없이 드릴 것”
“모든 것에 감사할 것…저는 이렇게 생환했고, 더 좋은 사람이 됐다”
“‘여대카’(여옥대첩카페) 여러분들께 감사…여러분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덕분”
전여옥 전 국회의원. <디지털타임스 DB>
전여옥 전 국회의원. <유튜브 '전여옥 TV' 방송화면>

대장암 4기 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전여옥 전 국회의원이 "2024년에 제 인생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근데 지금 2024년 6월 4일. 여러분들께 '생환 보고'를 드린다"고 담담한 심경을 전했다.

6일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4기암 전여옥, 수술했습니다'라는 제하의 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방송에서 전 전 의원은 "암은 1기, 2기, 3기, 4기 이렇게 있다. 말기 암하고 4기암은 다르다"며 "말기 암은 모든 치료를 했지만 더 이상은 듣지 않는 걸 말기 암이라고 한다. 말기 암은 정리를 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저는 대장암 4기였다. 4기암은 이미 발견됐을 때 간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며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전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서 별로 걱정 안 하고 '뭐든지 잘 될 거야' 밝고 좋은 면만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 암 검사를 할 때도 '그냥 용종이 있어서 검사 도중에 뗄 수 있을 거야'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던 사람"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어 "그런데 4기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서 입원을 해서 온갖 검사를 다했다. 암 검사는 기본적으로 금식이다.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며 "소화기 내과 교수님이 오시더니 '식사를 하는데…'라며 괴로운 표정이 되시더니 '암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 이미 간에 전이가 돼서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만 하더라도 항암이라고 하니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웠었다. 제가 암이라고 진단받았을 때 제 인생도 파란만장 했어서 '아 이제 쉬어도 되겠구나'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서 "'뭘 살겠다고 하나. 그냥 치료하지 않고 조용히 살면서 우리 아들하고만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전 전 의원은 "이후 종양내과에 저의 주치의 선생님이 다시 찾아오셨더라. 병실까지 찾아오셔서 설득을 하시더라"며 "당시에 제가 항암치료 너무 무섭다고 하면서 '제가 살아온 인생이 험난하고 힘들고 고생해서 생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 그 주치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거다'라고 말씀 하시더라"고 주치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주치의 선생님이) '아드님하고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아드님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시간을 버는 거다' 이러면서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그러셨다"며 "주치의께서 격무에 시달려서 그런지 그분이 암환자인지 제가 암환자인지 모를 정도로 힘이 없어 보이셨다. 그런데도 환자를 생각하는 훌륭한 의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현타'(현자타임·현실 자각 타임)가 온 것이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아들, 저 어린 것 어떻게 하나. 이 험난한 세상에 물방울 하나 똑 떨어트리고 가는 것은 너무 기가 막힌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때부터 아이를 생각하면서 1년 반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죽고 나면 지금 이 좁은 집이지만 얘가 내 방을 어떤 기분으로 들여다볼까. 아무도 없는데 밥은 어떻게 먹을까. 제가 맨날 밥을 해준 건 아니었지만. 같이 저녁을 먹고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라고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특히 전 전 의원은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을 벌기 위해 꿋꿋하게 항암치료를 받았다"며 "제가 항암치료를 하면서 유리했던 점은 체력이 좋았던 것이다. 살집도 있고 힘이 있었다. 지금은 운동을 못해서 볼품없어 보이지만 옛날에는 날아다니는 돼지였다. 제가 오랫동안 운동을 했었고 에어로빅, 줌바, 근력운동 등을 했었다. 근데 제가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을 많이 했던 게 암 환자인 저에게는 기초체력이 됐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치의 선생님께 '저 언제쯤이면 갈까요?' 물어보니 (주치의 선생님이) '항암을 안 하면 6개월 정도지만, 항암을 하면 2년 정도 어렵게. 그런데 이건 요즘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한부 몇 년, 몇 개월 이런 얘기 잘 안 한다' 이런 얘길 하셨다"며 "지난해 12월 15일이 제가 4기암 판정받고 딱 2년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라고 감격했다.

이어 "이후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새로운 암세포가 생긴 걸 발견했다. 그런데 주치의께서 다른 암세포가 보이지 않으니까 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수술을 받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완치는 아니고 생명 연장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전엔 어떻게 죽느냐, 인생 마무리를 하느냐는 생각만 했다가 생명 연장이라고 하니 '이제 좀 살아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 보는 외과 의사 선생님한테 '저희 애가 어려서 저는 살아야 겠다. 수술 잘 해주세요'라고 처음으로 말이 나오더라. 제 수술을 담당해준 의사 선생님도 정말 환자에 대한 헌신이 있는 분이셨다"고 주치의에 대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전 전 의원은 "아주 솔직히 얘기하면 '너도 살고 싶어 했구나'라는 걸 느꼈다. 더 겸손하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과 제 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는 이렇게 생환했고,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 벅찬 심경을 드러냈다.

끝으로 그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겠다. 또 열심히 더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겠다. '여대카'(여옥대첩카페)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 덕분"이라면서 "여대카 친구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뜨거운 응원 덕분이다. 안 그랬으면 벌써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