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계 청소년’ 자극적 보도 그 후···“조롱 시선만 늘어” 비행 청소년 낙인만 키웠다
“요즘은 경의선에 가는 게 좀 무서워졌어요. 지뢰계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이유를 캐물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른바 ‘지뢰계 패션’을 좋아했다는 김모양(16)이 지난 1일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에서 기자와 처음 만난 적이 있는 김양은 지난 6개월간 “어른들이 ‘지뢰계’에 관심이 커진 것 같다”며 “관심이 무섭기도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 유튜버가 “‘지뢰계’ 복장을 한 가출청소년들이 조건만남을 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리자 경의선 책거리에 모이는 ‘지뢰계 청소년’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당시 경향신문 취재진은 3주간 경의선에 모인 청소년 20여 명을 만났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조건만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정·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또래와 공유하거나 ‘공주풍 옷’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려고 경의선 거리를 찾고 있었다. 지뢰계라는 말이 만들어진 일본에선 ‘밟으면 터지는 정신이 불안한 여성’이라는 부정적 의미지만 경의선 책거리를 찾아온 청소년들은 “공주풍 옷을 즐기는 문화”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뢰계 청소년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진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난달 25일부터 2주간 다시 이 거리를 찾았다. 청소년들은 “지난 6개월간 어른들의 감시가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뢰계 청소년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지며 “조롱하는 시선은 더 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이들은 여전한데 경의선은 변했다…감시·보호·통제의 대상이 된 아이들
책거리의 청소년들은 6개월 전과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흰색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 리본 장식이 달린 분홍색 치마 등 ‘공주풍 복장’을 한 여성 청소년 약 20명은 춤추며 틱톡 영상을 찍었다.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한 또래에게 “트위터 아이디 뭐야?” “옷 어디서 샀어?” 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6개월 동안 달라진 모습도 있었다. ‘틱톡’ 등 SNS를 중심으로 지뢰계 문화가 확산하며 이 문화를 즐기는 청소년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지난달 25일 기자가 경의선에서 만난 청소년 중 가장 어린 학생은 13살이었다. 황모양(15)도 “틱톡을 보고 지뢰계에 관심을 가지는 초등학생들이 많은 거 같다”며 “최근 경의선에 초등학교 4~5학년 어린 친구들도 많이 보인다”고 했다.
이들을 둘러싼 책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경찰차 2~3대가 인근에 상주하며 청소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은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이름과 부모님 연락처를 묻거나 아이들 사진을 촬영했다. 인근 기동대 관계자는 “기동대·지구대가 순찰하면서 청소년들의 가출 여부, 보호자 연락처를 파악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주요 간부들이 “경의선 책거리는 이른바 ‘지뢰계’ 패션을 한 가출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합동 순찰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자체도 언론 보도 이후 현장에서 청소년 상담 부스를 운영 중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청소년 상담센터 등이 현장에 나가고 있다”며 “상담을 통해 탈선 우려가 있는지 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 관심’보다는 청소년 문화 존중하며 다가가야
청소년 당사자들은 ‘어른들의 관심’이 “‘비행 청소년’으로 보는 듯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양은 “경의선에서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우울증이 있냐’, ‘자해한 적 있냐’, ‘가출했냐’고 물었다”며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조사당하는 느낌 들어 경찰이나 상담부스가 있으면 피해서 인근 편의점으로 간다”고 했다. 박모양(15)도 “지뢰계들은 정신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시선으로 보는 거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며 “상담을 강요하면 더 고통스러운 걸 어른들이 모르는 거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뢰계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청소년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4년차 청소년 상담사 권혜중씨는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관계의 욕구를 채우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아이들을 선도해야 한다거나 당장 상담을 받게 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 등을 통해 상담사와 유대감을 쌓는 게 우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찬 아수나로 청소년 인권행동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상담이 아닌 ‘조사’로 느끼는 이유는 단지 어른들이 도움을 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억눌림이나 우울감을 표현하는 것을 일탈행위로 보고 선도하려 하기 때문”이라며 “지뢰계 청소년이 ‘패션 정신병’ 등으로 낙인찍히는 이유는 그만큼 여성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심해진 조롱과 비아냥
지뢰계 청소년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여러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향한 조롱과 비아냥도 늘어났다. 지난 1월 한 유튜브 웹드라마에서는 지뢰계 복장 여성을 ‘함께 일하기 싫은 민폐 캐릭터’로 묘사하며 ‘패션 정신병’이라 지칭했다. 쿠팡플레이의 SNL은 지뢰계 복장의 여성을 등장시키며 ‘지뢰계=예쁘지만 성격이 괴팍한 여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청소년들도 “최근 SNS에서 지뢰계를 비하하는 영상이 많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김진아양(15·가명)은 “대부분 지뢰계는 사회성 없고 눈치 없는 정신병 캐릭터로 나온다”며 “당연히 화가 나는 건데, 화를 내면 더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고 말했다. 박양도 “재미를 위해 지뢰계들을 꼽주는 거 같아 너무 불쾌했다”고 했다.
지뢰계 청소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미디어 묘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권 상담사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나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거절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사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수 있다”며 “지뢰계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낙인은 아이들을 더 음지로 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30만 유튜버’의 좌표 설정, 냉큼 받아쓴 언론···‘가출·성매매’ 낙인 찍힌 경의선 아이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151737001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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