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일본뿐 아니라 중국 남조와도 교류 활발했다

최상원 기자 2024. 6.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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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서기 479년 가라국 하지왕이 중국 제나라 초대 황제인 고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보국장군 본국왕이라는 작호를 받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토론회는 △가야의 남조계 문물과 보국장군 본국왕의 성격 △도성으로 본 가야와 남조 △가야권역의 동경 유입-한식경의 유입 시기와 경로에 대하여 △가야 출토 초호·초두의 용도와 의미-음료와 불로장생으로 연결된 가야와 남조 △기와로 본 가야의 교류양상 △가야고분 출토 청자완으로 본 환황해-남해안 해양 네트워크 등 6개 주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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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특화 박물관인 국립김해박물관의 상설전시실 모습. 최상원 기자

중국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서기 479년 가라국 하지왕이 중국 제나라 초대 황제인 고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보국장군 본국왕이라는 작호를 받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가라국은 현재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대가야 또는 경남 함안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아라가야일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아라가야의 왕릉인 경남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의 75호분에서 연꽃무늬가 새겨진 청자 사발(연판문 청자완)이 발굴됐다. 이 최고급 청자 도자기는 중국 양쯔강 남쪽에 있는 강서성 지역에서 5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제나라 황제로부터 작호를 받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중국 도자기가 출토됐다는 것은 당시 가야가 중국, 특히 남조와 활발히 교류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 학술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6일 국립김해박물관과 부산대 고고학과 비케이21사업팀은 “전문가토론회 ‘가야와 남조-해상왕국 가야의 새로운 도약’을 14일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연다”고 밝혔다.

중국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 200년가량 남북으로 나뉘어 여러 왕조가 명멸했다.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하는데, 420년부터 581년까지 송·제·양·진 등 4개 왕조가 이어졌던 남쪽 지역을 남조(南朝)라고 한다. 이 시기 한반도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겨루던 삼국시대였다. 또 낙동강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에는 가야가 있었다.

가야 역사는 기원전 1세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600여년에 이른다. 가야는 서기 400년을 기점으로 금관가야 등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 지역에서 번창했던 전기 가야와 대가야·아라가야 등 내륙으로 중심지가 옮겨간 후기 가야로 나뉜다. 따라서 남조와 교류했던 것은 대가야와 아라가야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토론회는 △가야의 남조계 문물과 보국장군 본국왕의 성격 △도성으로 본 가야와 남조 △가야권역의 동경 유입-한식경의 유입 시기와 경로에 대하여 △가야 출토 초호·초두의 용도와 의미-음료와 불로장생으로 연결된 가야와 남조 △기와로 본 가야의 교류양상 △가야고분 출토 청자완으로 본 환황해-남해안 해양 네트워크 등 6개 주제로 구성된다. 시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토론회를 유튜브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최은비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가야와 일본의 교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중국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살펴보기로 했다. 가야의 국제교역에 대해 폭넓게 다뤄봄으로써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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