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전기차 캐즘·중국 성장에 막힌 ‘엔솔 효과’ [K기업 고난의 행군⑨]

2024. 6. 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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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K기업 고난의 행군⑨]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5월 29일 두 장의 카드를 동시에 받았다. 하나는 52주 신저가, 또 다른 한 장은 글로벌 신용평가사(S&P)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엔솔 효과’란 별명을 등에 업었던 LG엔솔은 어쩌다 위기를 맞게 되었나.

 K-2차전지 대장주

2022~2023년 증시에서는 ‘엔솔 효과’란 말이 있었다. LG엔솔이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면서 국내 증시 시총 1, 2위 자리를 다툴 정도로 상승한데 힘입어 LG그룹주의 시총 상승률이 코스피 전체 시총 증가율의 2배에 육박할 때였다. 증권가에선 LG엔솔을 놓고 “막을 수 없는 지배력”(2023. 5. 26), “글로벌 2차전지 대장주”(2023. 5. 23), “이제 시작일 뿐”(2023. 4. 27)이란 평가가 나왔다. 막을 수 없는 성장 ‘LG엔솔 효과’였다.

엔솔 효과가 자취를 감춘 건 2023년 하반기, 전기차 수요 둔화와 맞물려 2차전지 업황에 대한 기대감이 주춤한 시점부터다. LG엔솔의 주가는 올 들어 연초 후 5월 29일까지 20.37% 빠졌다. 특히 이날 LG엔솔은 34만2000원으로 마감하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2022년 11월 62만9000원으로 신고가를 기록한 LG엔솔의 ‘엔솔 효과’가 1년 6개월 만에 모두 빠진 셈이다.

LG엔솔의 하락세는 전기차 시장의 축소가 가장 큰 결정타였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잘나가던 전기차 산업은 ‘캐즘’의 위기에 빠졌다. 중국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는 최근 소형 전기차 값을 1280만원(9700달러)까지 낮추며 출혈경쟁을 불사하고 있다. 1만 달러 미만의 전기차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급량도 무자비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주요 항구는 중국산 전기차 재고가 쌓이며 ‘주차장’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일각에선 전기차 업체가 공멸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미국의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테슬라가 계속해서 가격 인하 정책을 쓸 경우 전기차 업체는 공멸할 것”이라며 “결국 전기차 업체가 피바다가 될 것”이란 경고를 던졌다. 테슬라도 올 한 해 전망에 대해 “2024년 자동차 판매 성장률은 2023년에 달성한 성장률보다 눈에 띄게 낮아질 수 있다”고 예고했다. 1분기 테슬라 실적은 ‘예고’대로였다.

테슬라가 고꾸라지자 전기차 업체와 성장의 운명을 함께한 2차전지주 역시 위기가 찾아왔다. ‘글로벌 2차전지 대장주’ LG엔솔의 실적도 위기였다. LG엔솔의 1분기 연결 매출과 영업이익은 6조1287억원, 1573억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29.9%, 75.2%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마저 5월 29일 LG엔솔과 모기업 LG화학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S&P가 꼽은 문제는 막대한 투자비였다.

미국에 진출한 공장 생산이 다른 지역 둔화를 상쇄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데다가 미국 정부 정책과 석유화학 공급 과잉 등이 변수라는 지적이었다. LG엔솔은 지난해 10조9000억원을 투자자금으로 썼다. S&P는 “전기차 2차전지 수요가 둔화하는 가운데 LG화학과 LG엔솔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투자 부담 확대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막대한 비용을 쏟는데, 경쟁기업도 출혈을 불사하는 중국의 CATL이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엔솔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을 뺀 세계 각국에서 작년 1분기에는 LG엔솔이 1위(점유율 28.1%)를, CATL이 2위(26.4%)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순위가 뒤바뀌었다. CATL이 27.5%, LG엔솔이 25.7%다.


 엔솔의 승부수

전기차 산업의 캐즘, 중국 기업의 가파른 성장 등 대외적 변수가 만만치 않지만 증권가에선 LG엔솔의 중장기 성장을 기대한다.

S&P가 뽑은 막대한 투자비는 바꿔 말하면 미래 준비다. LG엔솔 측은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 기업으로 영속하기 위해 집중적인 R&D 투자를 통해 철저히 미래를 준비하고 제품 안전성 강화 및 품질 향상으로 고객별·포트폴리오별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자금도 최근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4월 25일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콘퍼런스 콜에서 “중장기 수요 대응이나 북미 선제적 생산능력(캐파)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신증설 투자는 선택과 집중으로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투자 우선순위를 철저히 따지고 능동적인 투자 규모 및 집행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설투자(CAPEX) 집행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 제조, 판매 외에도 이 회사가 거는 신성장 사업은 에너지저장장치(ESS)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ESS는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다시금 LG엔솔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1분기 1781㎿h였던 미국 ESS 설치량은 4분기 1만2351㎿h로 여덟 배 가까이 뛰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수요 둔화 흐름 속 LG엔솔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은 ESS 사업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캐즘의 시기를 지나면 다시 전기차의 시기가 온다는 점도 LG엔솔엔 믿을 구석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G엔솔의 실적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상승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LG엔솔의 공격적 투자가 과도했던 것인지, 미래를 위한 준비였던 것인지는 전기차 시장 회복의 속도에 달렸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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