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5기 푸틴, 서방언론 등 초청해 3시간여 회견…한국에 "감사"
취임식 한달만, 연합뉴스 등 세계 뉴스통신사들과 만나 각종 현안 언급
'우크라 작전' 이후 서방 등 비우호국 언론들과 첫 인터뷰…5기 자신감?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한러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 주요 언론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에서 한국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푸틴 집권 5기가 시작된지 한달만이다.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경제포럼(SPIEF) 행사의 일환으로 연합뉴스를 비롯해 미국 AP, 영국 로이터 등 세계 16개 주요 뉴스통신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푸틴 대통령은 연합뉴스의 한러 관계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러시아혐오적'인 부분이 없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 및 대러 제재에 참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우리의 협력의 여러 분야에서 특정 문제들을 만들었다", "애석하다" 등의 불만 표시도 있었지만 양국 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희망하며 미래 관계를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쪽에서는 채널이 열려 있고 협력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는 한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지만 이는 우리가 아닌 한국 지도부의 선택"이라고 한국 정부에 '공'을 넘겼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2022년 10월 발다이클럽 연설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우리 관계를 파괴할 것"이라며 '한러관계 파탄'을 경고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는 한미일 대 북중러 간 신냉전 구도 등과 맞물려 북한의 대러 무기 공급, 한국인 선교사 구금 등으로 인해 한러 관계가 긴장국면에 있는 가운데서도 양국이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둬온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상당수 국가들이 보이콧한 가운데서도 숙고 끝에 이도훈 주러 대사가 지난달 7일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이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 "양국 협력이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파트너십 궤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렸으며 러시아는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 양국 파트너십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면서 한국을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일본에 대한 언급과도 차별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일본이 개입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일본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을 바꿔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 주요7개국(G7) 일원으로 러시아 동결자산의 우크라이나 지원 논의 등에 참여하는 등 러시아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북한, 중국에 대한 '엄호'에 나서며 반서방 북중러 연대의 밀착을 거듭 과시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든 말든 우리의 이웃인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위협 또한 그들이 받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자위권인 것처럼 포장해 주면서 "위협이 없었다면 핵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두둔했다.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중국을 찾으며 중러 결속을 과시했던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중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통합돼야 한다"며 서방을 비난하며 중국을 감쌌다.
이란에 대해서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사후 협력 지속 방침을 강조하며 새 대통령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약 3시간 20분간 이어진 이날 자리에서 러시아가 구매력평가(PPP) 기준 세계 4대 경제 강국에 진입하는 목표를 달성했으며, 올해 1분기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5.4% 성장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집권 5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서방 언론들과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벌인 이후 SPIEF에서 미국, 유럽 등 서방 언론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이 행사에 서방 기자들을 아예 초청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월 대선에서 5선에 성공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의 발판을 다진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국, 이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우호국은 물론 한국과 미국 AP, 영국 로이터, 프랑스 AFP, 독일 DPA 등 대러 제재를 가하는 비우호국의 통신사들과 직접 대면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 문제, 미국과 유럽연합(EU) 선거에 러시아가 간섭한다는 의혹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질문에 일일이 러시아의 입장을 담아 답변했다.
이날 일정은 당초 오후 2시 시작으로 공지됐다가 오후 4시로 조정됐으며, 푸틴 대통령은 오후 7시가 돼서야 면담장에 들어섰다. 푸틴 대통령은 세계 정상들과의 회담 등에서도 지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사이 푸틴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통화하고, 가스프롬 사옥으로 쓰이는 초고층건물 '라흐타 센터'를 둘러보는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고 크렘린궁이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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