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에 '지역 혐오'까지?…분노 이용한 관심끌기

이창환 기자 2024. 6. 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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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발생…최근 온라인상에서 재주목
'가해자 신상공개' 영상도, 밀양 SNS에는 '악플'
"집단에 책임 규정·비난키도…바람직하지 않아"
"인터넷 문화의 특징적 현상, 진정성은 없을 것"
[서울=뉴시스]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는 지난 1일 이른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영상을 올렸다. (사진=나락 보관소 채널) 2024.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창환 기자 = "여기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나요", "여기가 그 유명한 성폭행의 도시인가요", "이 지역 86~88년생 출신은 조심해야 합니다".

6일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따르면 경남 밀양시가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SNS에는 최근 게시물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 같은 비방과 조롱 섞인 반응들이 잇따라 나오는 모습이다.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이른바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온라인상에서 재주목받는 가운데, 당시 수십명의 가해자들이 전과 기록이 남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데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이같이 분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86~1988년생 44명의 고등학생들이 여자 중학생 1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당시 가해자들로 언급된 이들 모두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피해자에게 탓을 돌리는 듯한 가해자 측, 수사관, 지역 주민의 발언 및 관련 설문조사 등 내용도 함께 확산하면서 대중들의 분노는 더욱 들끓었다.

이달 1일 유튜버 '나락 보관소'는 해당 사건의 '주동자'라면서 한 남성의 이름과 나이, 직장 등 일부 신상을 공개했다.

전날 오후 기준 영상 게재 나흘 만에 246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은 이 유튜버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피해자에게 허락을 구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맞다"면서 나머지 가해자들의 신상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근무했던 곳으로 가게가 휴업하거나, 회사에서 해고 조처됐다는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들의 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두고, '정의 구현이냐 사적 제재냐' 식의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현행 제도 내에서도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등 기준에 따라 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다만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거나, 처벌 수위와 국민 법 감정 사이 괴리와 같은 이유로 신상 털기 식의 사적 제재 행위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정보를 손쉽고 신속히 곳곳으로 공유할 수 있는 SNS의 대중화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적 제재 관련해선 공권력 약화나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사실처럼 무분별하게 전파되면서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나, 상업적인 사익 추구에 공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등장한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특정 지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거세질 경우 자칫 지역 혐오로 문제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집단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 없는 '낙인찍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그럴(지역 혐오로 번질) 수도 있다"며 "개인들의 우발적인 사건을 집단 구성원 전체에 책임으로 규정을 하고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들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정 집단이나 계층, 인종, 종교 또는 국가 간에도 그런 일들은 발생한다"면서도 "특정 집단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낙인을 찍어 비난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표했다.

인터넷 문화 특징 중 하나로, 쉽게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역 명이 떠오르면 그 사건 자체를 들여다보기 보다, 사건과 연결돼 있는 지역을 혐오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직접적 접근을 회피하고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인데, 인터넷 문화가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 같다"고 봤다.

또 노 교수는 " 선정성을 끌고 가기 위해 지역 혐오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지역 혐오가 굉장히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온다"며 "진정성 있는 표현 형태는 아니다. 정말 혐오한다고 하기 보다, 그냥 시선을 끌려고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밀양시에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룬 당시 설문조사와 관련해 2007년 6월께 "'밀양인의 64%가 이 사건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오보"라며 "여중생이 대거 포함돼 있는 집단에서 설문조사가 이뤄져 성인들의 인식도는 알 수 없다는 결과가 분석됐으며, 보도된 사항과 달리 대부분의 밀양 사람들은 사건의 책임은 당연히 가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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