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고 바랜 흑백사진, 생생한 컬러로”…나라 지킨 영웅 700명 되살아났다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6. 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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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애국지사 사진 복원한 정다혜·이강준씨
인공지능 석박사과정 학생들
6·25 참전영웅 700명 사진
컬러 복원해 유가족에 제공
찢기고 바랜 사진 수십번 작업
AI기술, 사회공헌에 접목하며
숨은 역사와 선열 희생 배워
정다혜 씨(왼쪽)와 이강준 씨가 각각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컬러 복원 사진을 들고 있다. 뒤쪽은 컬러로 복원된 더글라스 맥아더 UN군 총사령관의 사진. [사진 = 한주형 기자]
지난해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컬러로 되살아났다. 유관순 열사,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속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 애국지사 등 독립영웅 15인의 사진이 복원됐다. 이들의 사진은 약 한 달간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대형 전광판에 송출됐다. 이어 하반기에는 6·25 참전영웅 700여 명의 사진이 컬러로 복원돼 본인 혹은 유가족의 품에 안겼다.

국가보훈부와 함께 복원 작업을 진행한 건 성균관대에서 인공지능 석박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두 명의 대학원생이다. 인공지능융합학과 정다혜 씨와 소프트웨어학과 이강준 씨가 재능기부 형태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제69회 현충일을 앞두고 매일경제와 만난 이들은 “인공지능이 딥러닝(Deep learning) 하는 동안 호국정신을 배웠다”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이어받아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AI 기술을 연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복원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인공지능을 학습시켜야 한다. 고화질 원본 사진을 저화질 흑백사진으로 변환한 뒤 생성형 AI에게 복원작업을 시켜보는 것. 인공지능이 복원한 사진과 원본을 비교하는 작업을 반복할수록 복원의 품질이 높아진다. 이 씨는 “오픈소스의 AI 복원 모델 기반에 선배가 만들어놓은 코드를 함께 사용했다”며 “AI 기술을 활용하면 사람이 포토샵 등을 이용해 직접 복원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조국에 헌신했지만 지금껏 조명받지 못했던 영웅들의 생생한 모습을 AI 기술을 통해 복원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모든 복원작업이 손쉽게 끝난 것은 아니다. 정 씨는 “이름이 알려지고 참고할 사진이 많은 분들은 비교적 간단하게 복원할 수 있었지만, 작업 후반부로 갈수록 복원 난도가 높아졌다”며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사진 한 장마저 찢기고 바랜 경우엔 수십번을 반복 작업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솔직히 수험생 시절엔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이들은 프로젝트를 계기로 호국정신의 의미를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당대 생활상을 반영해 복원하려 노력했다”며 “복원 과정에서 관련 서적이나 논문을 찾으며 호국 영웅들의 일대기와 활동을 자연스레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씨는 “AI를 연구하는 학생으로서 딥러닝 기술로 잊혀가는 영웅들을 되살리는 일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가족여행을 가서도 혼자 노트북을 붙잡고 밤샘 작업을 했던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 씨와 이 씨가 선뜻 재능기부에 나선 것은 인공지능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정 씨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퍼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프로젝트 제의를 받아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6·25 전쟁에서 활약한 육군 1사단 출신이라 그런지 선배님들의 사진을 볼 땐 자부심을 느꼈다”며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에 대한 예우와 감사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이어받아 AI 기술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복원 프로젝트에서 익힌 기술을 새로운 연구에 접목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씨는 텍스트와 음성, 영상, 이미지 등의 데이터를 융합 분석하는 멀티모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대중의 인식을 추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분석해 우울증 위험군을 조기 발견하는 등의 분야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복원작업에 사용된 기술은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을 탐지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며 “최근 관련 논문을 썼다, AI 기술의 역기능을 방지하는 것 역시 연구자의 윤리적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영 기자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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