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담장 옆 천국 같은 집 ‘존 오브 인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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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짙은 여름 숲의 강가에서 한 가족이 한가로이 피크닉을 즐긴다.
청량한 날씨와 정결한 옷차림, 다정한 눈빛으로 채워진 더없이 완벽한 가족의 초상으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작된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는 유대인 학살 영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칸과 아카데미를 비롯해 수많은 시상식에서 음향효과와 관련된 상을 싹쓸이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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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짙은 여름 숲의 강가에서 한 가족이 한가로이 피크닉을 즐긴다. 청량한 날씨와 정결한 옷차림, 다정한 눈빛으로 채워진 더없이 완벽한 가족의 초상으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작된다.
집 안 구석구석과 정원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건 담장 옆 건물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 아득하게 들리는 구호와 총소리다. 이따금 총소리와 비명이 크게 들리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소년은 순간 얼어붙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장난감에 빠져든다. 같은 시간 집안의 가장은 고급 찻잔에 차를 마시며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시신을 태울 수 있는 기계 고안에 관해 토론하고, 안주인은 남편이 압수해온 모피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이끈 루돌프 회스(1901~1947, 크리스티앙 프리델 연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의 사택 풍경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는 유대인 학살 영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 사택에서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순간”을 이룬 “아우슈비츠의 여왕”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와 그 가족들의 일상을 충실히 따라갈 뿐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말을 타며 자연의 위대함을 가르치고 아내는 온실과 수영장을 가꾸면서 다섯명의 아이들을 윤기 나게 키운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잔인한 죽음과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의 공존이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당시의 사료를 복제하듯이 회스의 집 주변을 복원했다. 그리고 사료에 담기지 못한 비명과 총소리,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까지 재현한다. 시각적 평화로움과 충돌하는 음울한 사운드는 이 영화를 아우슈비츠에 관한 가장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으로 끌어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칸과 아카데미를 비롯해 수많은 시상식에서 음향효과와 관련된 상을 싹쓸이한 이유다.
광고 감독 출신의 글레이저는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몰입시키는 게 아니라 계속해 스크린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화면과 음향의 불협화음뿐 아니라 헤트비히 정원의 꽃 클로즈업 다음 장면에 시뻘겋게 그래픽화된 꽃을 배치하고 영화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지닌 인물인 알렉산드라가 밤마다 유대인들이 강제노역하는 곳에 몰래 사과를 가져다 놓는 장면을 열화상 카메라로 처리해 우리의 망막에 비치는 것들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 던진다.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인이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과 아동 학살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유대인 학살에 대한 영화는 아이러니처럼 느껴질 법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유대인들이 겪은 비극을 환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 진실이 될 수 있는지 신랄하게 질문을 던지며 가장 현재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글레이저는 지난 3월 아카데미 장편국제영화상 수상소감으로 “이 영화는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보여준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대조적)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비극”이라고 말해 미국 내 유대인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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