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가르치면 끝?…구장 물색·기사 역할에 예산도 따내야 [한국축구, 뒤집어야 산다]

김창금 기자 2024. 6. 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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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유소년 지도자들의 고충
안성 비룡초 전교생에 축구 열어 놔
시설, 재정, 심판 운영까지 모델
우상범 감독 “가용 자원 모두 활용”
안성 비룡초 축구부 아이들이 휴식하고 있다. 우상범 감독 제공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이다.’ 이 역설이 통하는 현장이 유소년 축구다. 지도자들의 처우는 열악하지만,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에서 미래가 결정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 가장 큰 하중을 받는 것도 유소년 지도자다. 3일 경기도 안성 비룡초등학교에서 만난 우상범 비룡초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에 문제가 생기면 항상 유소년 축구를 지목하는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이날 비룡초 경기장 한쪽 골대 앞에서는 해가 떨어져서도 한 여학생 선수가 코치와 함께 골키퍼 훈련을 하고 있었다. 우 감독은 “앞으로 여자축구 최고의 골키퍼로 키워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만약 그가 좋은 골키퍼로 성장한다면, 과실은 누가 딸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공을 던져주고, 발로 차주던 코치는 아닐 것이다. 그를 기억할 사람은 없고, 그게 유소년 지도자의 운명이다.

학교는 울타리 있어 낫지만, 클럽은 엄혹해

비룡초 축구부 감독, 코치, 선수들은 그래도 ‘울타리’가 있어 행복한 편이다. 학교 안에서 모든 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학교 밖에 있는 유소년 클럽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엄혹하다.

김포 파파풋볼 클럽의 아이들이 경기하고 있다. 이성길 감독 제공

경기도 김포에서 파파풋볼 클럽을 운영하는 이성길 감독은 요즘 골치가 아프다. 학원팀과 달리 클럽은 애초부터 학교 운동장이라는 게 없다. 이 감독은 “실내, 실외 풋살장 등 자체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아서, 훈련하고 대회 참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 클럽의 선수반은 동호회 자격으로 등록해, 축구 i-리그에 참여할 수 있지만 본 무대인 초등학교 주말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가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을 갖추지 못한” 클럽의 선수에게 등록 자격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 인조잔디를 갖춘 학교가 있지만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운동 기회를 제공해줘야 하지만, 최근 10년새 학교는 축구부를 지속적으로 해체해 왔다. 2011년 초등학교 축구팀은 201개(5천154명), 클럽팀은 102개(2479명)였지만, 전문 선수 중심의 이 수치는 2024년 현재 초등학교팀 63개(1409명), 클럽팀 332개(7982명)로 바뀌었다.

클럽은 선진화, 학교는 후진적은 이분법

그렇다고 학교 운동부의 외부 클럽화가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클럽’ 하면 선진화된 형태를 떠올리지만, 한국적 현실은 이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학교 당국은 축구부 등 운동부 해체로 각종 사건·사고 등 잠재적 위험을 회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학원팀을 외주화한 형태인 사설 클럽은 운동장을 구해야 하고, 당연히 비용 부담도 늘 수밖에 없다. 절충 형태로 학교 축구팀에 FC를 붙인 클럽들이 나왔는데, 선수들의 학사관리를 학교가 맡고 공간만 학교 밖으로 옮긴 축구팀 운영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옳은지는 따져볼 일이다.

양현정 K3리그 양평FC 감독은 “이전에 고교 축구클럽을 지도했을 때 학교가 맨땅이어서 다른 운동장을 빌려서 썼다. 비용도 많이 들고, 학부모 부담도 커진다. 엘리트 스포츠가 꼭 학교 밖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유소년 지도자들은 각개 약진할 수밖에 없다.

안성 비룡초의 우상범 감독.

특히 안성 비룡초의 대응 방식이 눈에 띈다. 비룡초는 전체 1200명의 재학생 모두에게 축구를 개방했다. 전문 선수인 축구부(60명)에도 고학년 중심이 아니라 1~3학년을 포함시켰고, 주말 취미반(60명)을 둬 1~6학년 아이들에게 축구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우 감독은 “엘리트 축구가 싫증 나면 취미반으로 가면 되고, 취미반에서 더 열심히 하고 싶으면 전문반으로 옮겨가도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무료 축구교실을 열고 기업의 후원과 결합하거나, 유소년 경기에서 이뤄지는 1심제를 보완하기 위해 학부모나 코치 가운데 심판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 교육을 받도록 한 뒤, 보조 심판으로 투입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은 지자체나 도 교육청, 도 체육회, 학교, 기업 등의 지원을 유인해 재정을 충당할 수 있다.

지도자 창의적 발상에 학생들 축구로 행복

이성길 파파풋볼 감독은 그야말로 맨발로 뛰어야 한다.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경기장을 확보한 다른 유소년 팀을 찾아내고, 그들의 연습 상대가 되기 위해 외곽으로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주변 부지를 가진 땅 소유주를 찾아가 활용 방안을 논의해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없었다.

코칭에 더해 아이들을 차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기사 역할까지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아빠의 마음으로 축구 좋아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데, 여건이 만만치 않다. 학교에서 운동하면 좋겠지만, 인조잔디 운동장이 비어있어도 들어가는 것을 학교 당국이 싫어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i-리그에서 골도 넣고,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힘을 낸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22년 완성한 기술발전 전략에서 7~8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연령별 훈련 도입, 지도자의 암묵적 지식의 명료화, 도전적 플레이 전환 등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현장에서 이뤄지는 지도자들이 노력과 모색을 찾아내 포상하거나, 이들이 발굴한 새로운 방법과 모델을 채택해 전파하는 일도 필요해 보인다. 유소년 지도자들의 ‘열정 페이’ 현장에서 더 절실한 과제와 그에 따른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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