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휴 콤비' 아시나요… 세계로 가는 K뮤지컬, 그 뒤에 스타 창작자 파트너십 있다
한정석·이선영의 '레드북' 영국 공연 추진 중
두터워진 창작층, 뮤지컬 질적 성장 이끌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이다',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는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가 팀 라이스가 콤비를 이뤄 만든 명작이다. K뮤지컬에서도 창작 뮤지컬의 영토 확장을 이끄는 끈끈한 파트너십이 눈에 띈다. 10월 라이선스 형식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정식 개막하는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은 박천휴(41) 작가와 윌 애런슨(43) 작곡가가 짝을 이뤄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한정석(41) 작가와 이선영(41) 작곡가의 '레드북'은 영국 진출을 목표로 지난해 말 런던에서 리딩 공연이 이뤄졌다. 뮤지컬계의 오랜 숙원인 영미권 진출의 결실 뒤에 스타 창작 콤비가 있다는 이야기다.
'윌휴콤비' "극적 모험보다 솔직한 인물에 초점"
2008년 뉴욕대 재학 중 친구가 된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는 '번지점프를 하다'(2012), '어쩌면 해피엔딩'(2016), '일 테노레'(2023)까지 호평 속에 합작하며 '윌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팬덤이 탄탄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18일부터 9월 8일까지 예스24 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벌써 다섯 번째 프로덕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을 느끼면서 겪는 이야기다. 가을엔 미국 버전이 뉴욕 브로드웨이 1,000석 규모 대극장 벨라스코 시어터에서 선보인다. 토니상 수상 경력의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와 연출가 마이클 아덴이 참여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위대한 개츠비'가 4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지만 한국에서 창작돼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작품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윌휴표' 뮤지컬의 장점으로 솔직한 캐릭터와 감성을 꼽았다. 애런슨은 "경찰 추격전 같은 극적 모험을 담기보다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고 했고, 박천휴는 "'인생은 비극이지만 그만큼 아름답다'는 '일 테노레'의 대사가 우리가 이야기와 음악을 만드는 정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유니크한 세상을 구현하자"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된 작품 철학. '어쩌면 해피엔딩'의 2060년 서울, '일 테노레'의 1930년대 경성에 이어 12월에 선보일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이다. 애런슨은 "관객이 낯선 여정을 겪고 극장을 떠날 때 현실의 삶을 돌아보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천휴는 "공연을 보는 행위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행위"라며 "경성이든 미래든 함께 떠났다가 이 역시 결국 내 이야기구나,를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영감을 주는 파트너인 한" 계속 작업을 함께할 생각이다.
"일기장에나 썼을 법한 혼자만의 공상이 대본이 되고, 전업 작가가 된 건 윌 덕분이에요. 뉴욕에 체류하는 한국인인 제 정서와 한국 작품에 참여하는 윌의 정서가 만난 이중문화적 성격도 우리 작품의 특징이겠죠."(박천휴)
"2008년 '마이 스케어리 걸'로 한국 뮤지컬 프로덕션에 참여하고 바로 교재를 사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폭발하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일하는 저는 운이 좋아요."(애런슨)
한정석·이선영 "가감 없는 피드백 가능한 사이"
극작가 한정석과 작곡가 이선영의 파트너십도 한국 뮤지컬계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2013)와 '레드북'(2017),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2022)를 합작했다. 함께 작업한 박소영(43) 연출가와 함께 '한이박 트리오'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곡가를 "구체적으로 계획이 서 있지 않아도 이야깃거리가 떠올랐을 때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로 묘사하는 한 작가의 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
'레드북’은 보수적이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숙녀보다 '나'로 살고 싶은 여자 '안나'와 '신사'로 사는 법밖에 모르는 남자 '브라운'이 서로를 통해 이해와 존중의 가치를 배우는 과정을 담았다. 다수의 영국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온 제작사 아이엠컬처가 '레드북' 창작진과 계약하고 영어 프로덕션을 개발 중이다. 정인석 아이엠컬처 대표는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 신작에 선정됐을 때부터 높은 완성도를 눈여겨봤다"며 "창작자 두 사람의 긴밀한 소통 덕에 디테일까지 공들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 ‘불과 얼음'에서 만난 한 작가와 이 작곡가는 작업 초기에는 많이 다퉜다. 두 사람은 "그 덕분에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도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이들의 연이은 흥행 성공 비결이다. 내년 3월 공연 예정인 '라이카 in B612'도 10년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 한 작가는 "공연 제작사들이 선호하는 주류 스타일이 아니어서 우리가 하는 작업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며 "공연화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믿음대로 창작 방향을 잡아 왔다"고 돌아봤다.
정인석 대표는 뮤지컬계의 창작 파트너십 바람에 대해 "해외 라이선스 공연을 통해 기술적 진전을 이뤄 온 한국 뮤지컬계가 좋은 대본과 음악으로 질적 성장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 가고 있는 셈"이라고 풀이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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