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QWER 성공기

최용환 프리랜서 기자 2024. 6.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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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걸 밴드가 국내 주요 차트 톱 5에 머무르며 공중파 음악방송 1위 후보에도 올랐다. 이들은 유튜버, 틱토커 등 인터넷 방송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시대의 걸 그룹이다. 

몇 년 전까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첫 미니앨범 'MANITO’의 타이틀곡 '고민중독’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걸 밴드 QWER의 이야기다. QWER의 멤버는 쵸단(드럼·서브보컬), 마젠타(베이스), 히나(기타·키보드), 시연(보컬· 기타). QWER의 등장과 성공은 새로운 세대의 미디어 환경 변화와 서브컬처 소비 확산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일으킨 만화 같은 사건이다.

애니메이션, 제이팝, 컴퓨터 게임, 인터넷 방송 등 QWER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은 한때 서브컬처를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 콘텐츠들이 보다 폭넓게 소비되고 있으며, 일부 젊은 세대에게는 레거시 미디어가 만든 콘텐츠들보다 더 친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화 보고 만든 밴드?!

인사하는김계란과QWER
QWER은 시작부터 일반적인 연예 기획사의 가수들과 궤를 달리한다. QWER을 기획한 김계란은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채널의 운동 콘텐츠로 잘 알려진 인터넷 방송인이자 '가짜사나이’ '우마게임’ 등을 기획한 콘텐츠 제작자다. 다양한 기획을 성공시켜온 크리에이터지만 음악 제작과 관련한 경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인프라를 활용해 기획사 '타마고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수개월 만에 QWER을 데뷔시켰다.

전문 기획사가 수년을 공들여 준비하더라도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가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계란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대인 관계에 서투른 주인공이 밴드 활동하면서 음악을 통해 성장해나간다는 내용의 '봇치 더 록!’,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최애의 아이’가 대표적이다. 두 작품 모두 최근 몇 년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최애의 아이’는 요아소비(YOASOBI)가 부른 오프닝곡 'アイドル(아이돌)’이 국내에서도 챌린지 열풍을 일으키며 알려지게 됐다.

QWER의 탄생기를 다룬 프로젝트 제목을 '최애의 아이들’로 지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김계란은 영감의 출처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또 QWER은 밴드 콘셉트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청량감 있는 일본 걸 밴드의 요소를 적극 차용했다. 애니메이션 주제가와 숏폼 콘텐츠의 유행가를 중심으로 요아소비를 비롯해 킹 누(King Gnu), 이마세(imase), 후지이 카제(藤井風) 등이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만큼 제이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QWER의 노래는 누군가에게는 친숙한,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좋은 음악’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온라인 세계에 사람 있…, 아니 많아요!

QWER은 제작자뿐 아니라 멤버 대부분이 인터넷 방송인으로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김계란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리더 쵸단은 구독자 69만 명의 유튜버이자 인기 스트리머다. 마젠타 또한 구독자 51만 명의 유튜버이자 스트리머, 히나(냥뇽녕냥)는 팔로어 410만 명을 지닌 틱토커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보컬 시연의 경우 인터넷 방송인은 아니지만 한국인으로서 흔치 않게 일본 아이돌 그룹 NMB48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기존 팬들이 한국 복귀 후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김계란과 각 멤버의 팬들은 자연스럽게 '최애의 아이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QWER의 팬으로 유입됐다. 대형 기획사의 대대적인 프로모션이나 방송 노출을 통한 인지도 상승과는 전혀 다른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TV에 출연하던 예능인들이 뉴 미디어에서 종횡무진하고 유튜버가 TV에 등장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만큼 레거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영역 경계가 없어진 시대지만, 스트리머가 음악 분야에서 이처럼 높은 파급력을 보여준 경우는 흔치 않다.

개개인의 역량이나 인지도도 작용했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는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도 큰 역할을 했다. 유튜브로 공개된 '최애의 아이들’은 멤버들의 합류 계기를 소개하고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성장형 걸 밴드의 콘셉트를 분명히 했다. 대형 기획사의 트레이닝과 레거시 미디어 활용이 불가한 상황에서 꿈을 꾸는 제작자와 새로운 도전에 뛰어드는 멤버들의 만남이라는 서사를 강화했고, 단기간에 2000만이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QWER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게임이다. 게임이 유튜버의 주된 콘텐츠 중 하나이기도 한 점을 감안하면 QWER과 게임의 높은 관련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밴드의 이름 'QWER’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쿼티 키보드의 배열인 'Q’ 'W’ 'E’ 'R’은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를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킬 발동 단축키다. 실제로 4명의 멤버는 각자 스킬 성격에 맞춰 포지션 Q(쵸단), W(마젠타), E(히나), R(시연)을 담당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역주행 돌풍을 일으킨 데뷔 싱글앨범 타이틀곡 'Discord’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메신저 '디스코드’의 이름을 '불협화음’이라는 테마에 맞춰 재해석한 곡이다. 공식 팬덤명 '바위게’ 또한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게임과의 연관성으로 QWER은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최대 e스포츠 이벤트인 '2023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 전야제 사전 공연에 출연했다. 아울러 국내 최대 애니 & 게임 축제 'AGF 2023’과 함께 열리는 '원더리벳 스테이지’에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리며 독자적 영역에서 활동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전 세계 4억 명이 관람하는 초대형 대회를 지닌 '리그 오브 레전드’를 두고 '서브컬처’로 부르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게임 유저들만 공유하는 콘텐츠를 그룹 콘셉트 전반에 활용하는 것은 결코 대중 지향적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기성세대에게는 서브컬처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게임이 QWER이 타깃으로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주류 문화라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최애의 아이들의 지구 정복까지

여러 서브컬처 요소가 중첩된 QWER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는 멤버들의 매력과 청량하고 경쾌한 음악 그 자체의 힘이 컸다. QWER은 이제 그 기세를 몰아 팬 사인회는 물론 대학 축제, 군대 위문공연, 팝업스토어 그리고 록 페스티벌까지 활동 범위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김계란이 QWER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말한 "멜론 차트와 빌보드 차트 1위"라는 원대한 포부 중 일부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성장형 밴드’에게 태생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숙제도 있다. 가수 활동을 했던 시연의 보컬, 대학에서 전공했던 쵸단의 드럼 정도를 제외하면 짧은 연습 기간을 거친 만큼 퍼포먼스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활동 초기에는 앞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로 응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발전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팬들이 실망하거나 활동 영역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실제로 새 앨범에서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출연이 발표되자 연주력 논란이 불거지며 일부 음악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좌절하긴 이르다. QWER은 근본이 만화와 게임인 팀이다. 이들의 모티프가 된 '최애의 아이’ '봇치 더 록!’ 같은 작품을 비롯해 만화에서 아픔을 이겨내는 성장 서사는 필수 요소다. 게임에서도 시종일관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위기 뒤의 짜릿한 승리가 더욱 팬들을 열광하게 한다. 스스로 말하듯 QWER은 시작부터 기대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뒤따라오는 시련도 없지 않겠지만 이를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전개야말로 그룹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닐까. 앞으로 이들이 목표로 밝힌 '지구 정복’까지 가는 여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자.

#QWER #최애의아이들 #걸밴드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제공 타마고프로덕션

최용환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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