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빨대·뚜껑' 없는 편의점 커피…"불량품 아닙니다"
27년만에 빨대와 뚜껑 없애, 30살 소나무 1650그루가 '탄소' 빨아들이는 효과
마셔도 흘리지 않도록 포장 바꿔, 소비자들도 "쓰레기 줄어서 오히려 좋아"
"친환경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이해해주면, 할 수 있는 것 더 많아질 겁니다"
'커피'와 '30살 소나무'. 둘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요. 그런데 연결고리가 생겼습니다. 설명하려 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흔히 보이는 '컵커피'를 아시지요. 냉장 매대에 놓인 다양한 커피. 적당한 가격에, 손쉽게 마실 수 있는 그 커피 말입니다.
이 컵커피엔 '두 개의 플라스틱'이 늘 짝꿍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 다들 그게 편했고 당연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그리 생산해왔지요.
2019년쯤. ㅁ(미음) 기업은 그런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겠지요. 모든 바뀜은 질문에서 시작되니까요.
"그, 컵커피 말입니다. 거기 플라스틱 빨대나 뚜껑이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익숙한 27년에 균열을 내는 질문이었습니다. ㅁ기업의 컵커피 제품이 처음 나온 건 1997년이었거든요. 1997년은 IMF 사태가 터지던 때입니다. 오래된 시간인 게 느껴지지요.
컵커피를 사면 빨대를 떼고, 뚜껑 사이의 동그란 구멍에 꽂고, 홀짝홀짝 마시고. 오래 누려온 당연함에 도전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이유는 선명했습니다. 플라스틱이 망가트리고 집어삼키는 '환경' 때문에요. 플라스틱을 만들 때 나오는 온실가스. 온실가스는 기후 위기 주범이고요. 게다가 플라스틱은 재활용률이 10%도 안 되었습니다. 이를 높일 방법도 필요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컵커피에 으레 붙는 플라스틱 빨대와 뚜껑이라도 떼보자. 그런 거였어요. 컵커피 판매량을 고려하면 적잖은 효과가 될 테니까요.
30년간 잘 키운 소나무 한 그루는 연간 6.6kgCO₂의 탄소를 흡수한답니다. 그런 소나무가 1650그루가 있다면요. 상상하면 얼마나 울창한 숲일까요.
30년생 소나무 1650그루가 만든, 그 울창하고 짙푸른 숲이 흡수하는 탄소량이, 단지 컵커피에서 빨대와 뚜껑을 없앴을 때 탄소를 줄이는 양과 비슷하단 겁니다. 놀랍지요.
거기서 일하던 류우상 포장연구팀 차장의 고민은 이런 거였고요.
"소비자들이 커피에 빨대를 꽂고 마시잖아요. 그 상태로 버리면 재활용에 어려움이 있고요. 그럼 이 빨대를 빼기 위해 뭘 해야할까, 많은 검토를 했었었지요."
고민은 거듭할수록 나아갔습니다. '빨대를 어떻게 빼게 할까'에서 '빨대 없이도 마시기 편하게 하면 어떨까'로 나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게 뭐였는지 물었습니다. 류 차장이 답했지요.
"국내에 참고할 제품이 아예 없단 게 가장 난감했어요. 아이디어를 상용화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지요."
그 당시엔 컵커피에 죄다 빨대와 뚜껑이 있었기 때문에요. 그러니 가장 큰 장애물 역시, 빨대를 뺐을 때 소비자들이 느낄 불편함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어요. 흘리는 걸 방지하는 '이중 리드'라고 하는데요. 쉽게 말해 컵커피 뚜껑을 열면, 커피가 흘러나오기 적당한 작은 구멍 하나만 뚫는 거지요. 그러면 기울여 마셔도 커피를 흘릴 염려가 없게 됩니다.
그럼 플라스틱 뚜껑도, 빨대로 필요없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컵커피 하나당 플라스틱 3.2g을 줄일 수 있고요. 플라스틱 재활용률도 높일 수 있게 된 겁니다. 뚜껑만 떼면 나머진 다 같은 재질이라 그냥 버리면 되었거든요.
다음 문제는 뭐였을까요. ㅁ기업 유음료상품운영CM 김은경 프로의 고민은 이랬습니다.
"이전에 요구르트 제품에서도, 친환경 차원에서 잘 붙어 있던 플라스틱 빨대를 뗀 적이 있거든요. 경쟁사에서는 빨대를 못 뺀다고 했었고요. 왜냐하면 편리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요."
실제 초반엔 소비자들 불편이 있었답니다. 그러니 친환경이 취지가 좋아도 하나를 할 때마다, 이 때문에 판매량이 줄진 않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거지요. 김 프로가 말했습니다.
"친환경으로 한 발짝씩 갈 때마다 영업 파트에서 물어요. '괜찮겠니?'(웃음) 왜냐하면 저희도 매출과 직결되는 게 가장 우려되기 때문에요. 그런데 막상 변경하고 나면,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기간이 있을지언정 제품 운영이 안 된다거나 그렇진 않았습니다. 과도기는 분명 존재하지만요."
무언가를 바꾸기 전엔 '다수론'은 늘 그랬답니다. 그게 정말 필요한 건지, 이리 해도 매출에 영향이 없는 건지, 누구나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김 프로의 설득은 이랬습니다. 일종의 '시범 운영' 같은 거지요.
"15~20% 비중 정도만 바꿔보는 거예요. 온라인 판매부터 테스트를 해보고, 이랬을 때 파손은 몇 개 났는지 체크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보고요. 특히 대리점, 편의점 사장님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예컨대 그냥 날이 더워 덜 팔렸을 수도 있는데, 빨대와 뚜껑 떼서 덜 팔렸어,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잖아요."
편의점에서 한 번 사봤습니다. 수고가 줄어서 편합니다. 1. 빨대를 뜯고 2. 빨대 비닐을 뜯고 3. 비닐에서 빨대를 꺼내고 4. 빨대 꽂을 구멍을 찾고 5. 빨대를 구멍에 꽂고 6. 빨대를 구부리고 이게 기존의 과정이었다면요.
바뀐 건 이런 거지요. 1. 뚜껑을 뜯고 2. 커피를 마신다. 얼마나 간편한지요. 컵커피를 기울여도 음료가 새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30살 소나무를 생각했습니다. 소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만큼, 플라스틱을 줄인 거니까요. 제가 이걸 선택해 마신 것만으로 말이지요.
소비자 반응도 좋았습니다. SNS인 X(옛날 트위터)에 ㅁ기업이 올린 글은, 무려 1만건이 다른 사용자들 계정에 재게시되며 화제가 됐습니다. 좋아요는 6800개, 조회수는 344만 건에 달했습니다. 잘한다고, 이 제품만 먹겠다고, 그런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온라인 스토어 반응도 살펴봤습니다. 실제 구매한 소비자 리뷰는 어땠을까요. 최근 6개월 평점은 5점 만점에 4.95점. '빨대 없이 마시기 좋아요', '플라스틱 쓰레기가 덜 나오니 좋아요', '바뀐 제품이 너무 좋아요', '환경에도 좋고 버리기도 좋습니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지금은 육아휴직에 들어간, ㅁ기업의 유음료상품운영CM 담당자가 아끼는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 쓰기 위해 편지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사진만 찍었는데요. 내용이 이랬습니다.
'커피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저희는 요즘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데 착한 포장의 커피도 있고, 나쁜 포장의 커피도 있습니다. 저희는 비록 어린이라서 커피는 잘 못 마시지만, 그래도 컵커피에 플라스틱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뚜껑을 없애고 커피 내용물이 흘러지지 않게 하면 어떨까요? 만약에 바꿀 수 있으시면 바꾸어주세요! 이걸 실천하면 공기도 좋아지고 날씨도 좋아질 겁니다.'
'바다에 많은 플라스틱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어렸기에 '그렇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 너무 심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생각했습니다. 지구 멸망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요. 컵커피를 보며 대부분이 비닐이고 플라스틱이어서 아쉬웠습니다. 플라스틱 하나가 사라지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 아시나요? 5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종이 빨대로 바꿔주시면 저희 가족은 더 많이 먹을 것 같습니다.'
'혹시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꾸고 위에 플라스틱 뚜껑을 없애주실 수 있으실까요? 만약 바꿔주신다면 플라스틱 1톤은 가뿐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동물, 식물 친구들도 바닷속, 흙 속에서 파티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큰 기업이 바꾸면 다른 기업도 따라 바꿀 수 있을 거고, ㅁ기업은 유명해져서 더 큰 기업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만약 바꿔주신다면 매일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에필로그(epilogue).
오프라인 편의점에, 빨대와 뚜껑이 없는 컵커피를 두는 게 어려운 이유.
그게 왜 그런지 김은경 프로에게 물었다. 다른 컵커피와 함께 진열돼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빨대와 뚜껑이 있는, 거의 전부에 가까운 컵커피들과. 김 프로가 말했다.
"모두가 컵뚜껑과 빨대가 있는데 얘만 없네, 소비자 입장에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얘가 선도적인 제품인지 불량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고요. 저희가 아무리 좋은 취지로 해도 말이지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라 했다. 친환경으로, 좋은 취지로, 라벨이 없는 제품으로, 더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끝으로 남긴 김 프로의 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해답이 있었다.
"(그런 친환경 제품을) 불량품으로 봐주시지 않기만 해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더 커질 거예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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