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전투서 쓰러진 미군…아흔이 된 학도병은 그들을 기억했다
나흘간 미군 415명·북한군 2000여명 사상
학도병 20여명 참전…국군 기록 없어 외면
[영동=뉴시스] 서주영 기자 = "이곳에 올 때마다 생사를 함께 했던 미군들이 생각나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타국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5일 충북 영동군 양강면 빙옥정을 찾은 6·25 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 영동군지회 남규흔(90) 지회장은 70년 전 그날의 전투를 또렷이 기억했다.
18세기 중반 영산김씨 종중에서 세운 이 정자 일대를 둘러싸고 1950년 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펼쳐졌다. 당시 미 1기병사단은 7월22일~25일 나흘간 영동에서 북한군 3사단의 남침을 지연하며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 전투에서 영동지역 학도병 20여명도 카빈 소총을 들고 북한군에 맞섰다.
"지형이 70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호를 파고 농로를 따라 침투해오는 북한군과 교전을 했지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려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늦춰야 했거든요."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 지회장이 다니던 영동농민중학교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휴교했다. 영동군 부용리의 한 하숙집에 머물던 그는 미군 부대가 자신의 학교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학교로 내달렸다.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부대에 합류시켜 달라 졸랐다.
그의 나이 16살, 고작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미군은 까까머리 소년에게 카빈 소총 한 자루와 수류탄을 쥐어줬다. 영동 곳곳에서 모여든 학도병 20여명도 미군 부대에서 보급품을 옮기는 일을 도왔다.
"아마도 미 1기병사단 예하 8기병연대에 소속됐던 것 같아요. 양강면 쌍암리와 두평리에 배치돼 구강리에서 금강을 건너오는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지요. 장마로 강물이 잔뜩 불어나 있었는데, 북한군은 마을 사람들을 강에 집어넣어 새끼줄을 잇도록 한 뒤 그 새끼줄을 잡고 강을 건너려 했죠."
미군은 강 건너로 포탄을 쏟아부으며 북한군의 진격을 몇 차례 저지했으나 익숙지 않은 지형과 북한군의 머릿수에 밀려 점차 화력을 잃었다.
포병 전력과 제공권의 열세를 안은 북한군은 낮에는 몸을 숨기고, 새벽 기습작전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미군을 몰아붙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저기에서 총소리, 박격포 소리와 함께 비명, 고함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조준사격이 어딨어요. 소리나는 곳으로 사정없이 쏘아댔죠."
나흘간의 전투로 미군은 415명의 사상자를 냈다. 북한군에서는 2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김천 방어선으로 후퇴하던 미군은 공중 포격과 포병 사격으로 북한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남 지회장은 자신의 고향인 영동군 상촌면에서 미군과 헤어졌다. 그해 10월부터는 이 지역 경찰과 민병대를 꾸려 종전 때까지 마을을 지켰다. 낙동강 전선에서 퇴각하는 북한군과 교전해 수십명의 포로도 잡았다.
그 덕에 국가유공자증을 받게 됐으나 미군과 함께 피를 흘린 영동전투는 끝내 인정되지 않았다. 미군 부대 주둔 학도병은 국군 소속이 아닌 데다 국군이 참전한 전투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국군에 입대해 싸운 것이 아니니 관련 기록이 없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이름 없는 많은 학도병들이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그는 휴전 후 성인이 되자 육군보병학교에 입학, 갑종장교 129기로 임관해 7년간 군생활을 했다.
올해 아흔이 된 남옹은 정부와 후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세월이 흐르면서 6·25 전쟁이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수많은 군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일궈낸 나라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영동전투에서 산화한 미군에 대한 고마움도 잊으면 안 되고요.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정작 우리는 그들을 위한 추모비 하나 세우지 못했으니 미안할 따름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uyeo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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