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뉴욕거래소 오류에 서학개미 날벼락…증권사는 ‘나 몰라라’
국내 투자자들 상황 모른 채 주문
정상가 체결로 ‘미수금 폭탄’ 맞아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직장인 김아무개(41)씨는 지난 3일 밤 10시42분께 스마트폰에 뜬 팝업 알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관심 종목에 넣어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소형모듈원자로 설계업체 뉴스케일 주가가 전거래일 종가(8.73달러) 대비 98.51% 폭락해 0.13달러가 된 것이다. 김씨는 곧장 시장가로 매수 주문을 냈다. 당시 계좌에는 예수금 1700달러(약 233만원)가 있었다. 김씨는 “미수거래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가 주문을 내려면 현재가의 130%만큼 증거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최대 물량인 1만주를 시장가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1시간 뒤 체결된 주문 결과를 보고 김씨는 깜짝 놀랐다. 예수금의 55배에 이르는 9만4000달러(약 1억2900만원)가 미수금으로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3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40여개 종목 가격이 약 1시간가량 잘못 표시되는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서 손실 위기에 놓인 국내 투자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전산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잘못 표시된 가격을 보고 시장가로 매수 주문을 냈다가 정상가에 주문이 체결되면서 ‘미수금 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이용해 이후 주가가 내려간 뉴스케일에 투자한 고객들에 피해가 집중됐다. 거래를 중개한 증권사들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정상 체결하기로 결정한 건이라 주문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일 발생한 뉴욕증권거래소의 전산 오류다. 이날 한국시각 기준 오후 10시30분께부터 40개 상장 종목 가격이 차례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버크셔해서웨이A는 전거래일 종가 대비 99.97% 폭락한 185.10달러로 주저앉았고, 뉴스케일은 98.51% 내려 불과 0.13달러가 됐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문제를 인지하고 오전 9시40분께부터 1시간가량 해당 40개 종목 거래를 일시 중단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거래 중단 사실을 모른 채 표시된 가격만 보고 매수 주문을 넣었다. 거래 체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투자자들은 시장가로 주문을 넣었다. 증권사들은 미국 주식에 대한 시장가 매수 주문을 처리할 때 보통 현재가의 130%가 현금(증거금)으로 계좌에 있어야 시장가 주문을 뉴욕증권거래소로 넘긴다. 이 절차가 자동화돼 있어, 잘못 표시된 가격(뉴스케일 기준 0.13달러)의 130%에 해당하는 증거금만 있으면 주문이 정상 처리된 것이다. 키움증권이 전산 오류 사실을 공지한 시간은 한국시각 오후 11시10분께다. 미래에셋증권은 11시40분께다. 이미 상당수 주문이 뉴욕증권거래소로 넘어간 이후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오류 표시 정정을 위해 거래가 중단된 1시간 동안 들어온 주문을 쌓아뒀다가 거래 재개 직후 일제히 정상가에 체결시켜 버렸다. 계좌에 있는 예수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래가 체결된 셈이다. 문제는 미국 주식의 시장가 주문을 처리하는 방식이 국내 증권사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상당수 증권사는 증거금 범위 안에서 거래가 불가능하면 주문이 체결되지 않도록 돼 있다. 가령, 삼성증권은 고객이 시장가로 주문을 내면, 현재가 기준 위아래로 7% 수준에서만 거래가 체결되도록 일종의 조건부 주문을 낸다. 하나증권도 전략 주문을 낼 때 현재가의 위아래 5% 범위 내에서만 주문이 체결되도록 한다. 케이비(KB)증권은 아예 시장가 주문이 안 된다. 반면, 미래에셋과 키움증권은 이 같은 조건을 따로 두지 않고 현지 시장가를 적용한다. 그 결과 주문 시점과 체결 시점 사이 주가가 급등해 추가 비용이 드는 경우 이를 미수금으로 처리한다.
국내 증권사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시장가 주문 시 미수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객들에게 미리 고지한 데다가, 단순히 거래 주문만 넘길 뿐이어서 뉴욕증권거래소에 넘길 뿐이어서 손 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뉴욕증권거래소 잘못으로 발생한 거래를 왜 취소해주지 않는지 의아해, 현지 브로커에 문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당장 5일 밤 열리는 뉴욕증권거래소 정규 시장부터 투자자 피해는 현실화한다. 뉴스케일의 경우 주가가 3일 7.63달러(종가)에서 4일 6.98달러로 내리는 등 하락세다. 예수금의 수십 배 규모로 대거 떠안게 된 주식의 미수금도 버거운데,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까지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한 투자자는 “‘빚투’ 안 하려고 미수거래는 손도 안 댔는데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황선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이날 한겨레에 “국내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만큼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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