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없인 호국도 없다”… 역사 교육·콘텐츠 개발 활발 [지방기획]
항일 운동가 윤상태·우재룡·이상정…
곳곳 호국 인물·역사의 흔적 ‘오롯이’
9개 보훈단체 활동할 통합회관 ‘착착’
3·1 운동길 탐방 등 프로그램 확대
‘찾아가는 청소년 안보 교육’도 호응
기초단체 최초 보훈 발전계획 수립
UCC 공모·랜드마크 건립 등 나서
‘대구 시민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우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내에 외로이 서 있는 E J 메카우 장군 공적비에 새겨진 글귀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피란민으로 넘쳐난 대구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1년여간 근무했던 메카우 장군은 빈민구제 사업과 질서유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시민과 부대원들은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55년 3월 공덕비를 세웠다. 현재 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구 관계자는 “해마다 현충일이면 학생들과 구청 공무원들이 공덕비를 찾아 그를 기리는 참배행사를 열고 있다”고 전했다.
5일 대구 달서구에 따르면 구는 올해 40억3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보훈의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 조성과 교육·콘텐츠 발굴, 문화 확산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현재 달서구 지역에는 국가유공자가 8139명으로 고령화한 까닭에 이들의 평균 연령은 75세에 달한다.
달서구 지역에는 많은 호국의 흔적이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던 월곡 우배선 장군이 대표적이다. 구는 매년 6월1일 의병의날에 월곡역사박물관에서 향사례를 개최한다. ‘예를 품어 활을 쏜다’는 향사례의 의미를 더해 조선시대 활쏘기 시합을 재현한다.
아울러 향산 윤상태 선생을 비롯해 백산 우재룡 선생, 이상정 장군 등 23명의 보훈 인물이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윤상태 선생은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해 대구지역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덕산학교를 설립해 후학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구는 지난해 12월 그를 조명하는 연극 ‘향산:잃어버린 것’의 시사회를 열었다. 우재룡 선생은 20여 년간 옥고를 치르며 국권 회복을 위해 생애의 절반 이상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구는 선생의 큰뜻을 기려 2011년 12월 두류공원 내 인물 동산에 선생의 흉상과 공덕비를 건립해 애국애족의 민족정기를 함양하는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구지역 최초의 현대 시조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장군은 8·15 광복 때까지 중국에서 독립군을 이끌었던 장군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으로 알려진 그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학술 세미나도 열고 있다.
일상에서 보훈의 역사를 보고 느낄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구립 보훈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1997년 달서구에 건립한 보훈회관은 건물이 노후화하고 공간이 협소해 다른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통합보훈회관 건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구는 사업비 약 120억원을 들여 202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9개 보훈단체가 한 건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통합보훈회관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실시설계를 하고 있다. 성당동 307-1번지 일원에 건립할 새 통합보훈회관은 지하 1층~지상 5층 1600㎡ 규모로 다양한 복지시설을 배치한다. 보훈회관에 이주하는 단체는 광복회, 상이군경회, 무공수훈자회, 6·25참전유공자회 등 9개 단체다.
미래세대를 위한 보훈교육 활성화와 콘텐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꿈나무 나라사랑 생생탐방’은 연 10회에 걸쳐 중·고등학생 300여명을 대상으로 지역 현충 시설 등을 둘러본다. 올해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근대골목, 3·1운동길, 밀양 독립운동기념관 등 탐방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한다.
구는 ‘관 주도’의 수동적인 행사 문화를 지양하고, 생활 속에서 쉽게 체험하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끌어낼 특색있는 보훈문화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달서구재향군인회는 지난 4월 유공자 사망시 ‘달서구청장 근조기’를 전달하고 따뜻한 지역사회 조성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칠 ‘달서구 보훈선양 봉사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봉사단은 유관단체와 협력체계를 통해 민.관이 함께 보훈 존중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을 한다.
달서구의회는 지난해 12월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을 통해 보훈문화 존중과 예우를 위한 제도적 근거 마련했다. 독립유공자 보훈예우수당 월 10만원 인상을 비롯해 참전유공자 명예수당 월 13만원 인상, 생계곤란 독립유공자 (손)자녀 특별위문금 지급 등이다.
“보훈 없이 호국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이태훈(사진) 대구 달서구청장은 6월 호국보훈의달을 맞아 “보훈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보답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국가 지속성과 발전, 번영의 정신적 토대로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구청장은 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미국 공항을 방문하면 ‘군복을 입은 군인은 먼저 탑승하라’는 방송이 수시로 들린다”며 “미국은 이런 선진 보훈문화가 있기에 세계 제1의 선진국이 되고 세계 최강의 부국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인구 위기에 외국인 문호 개방 논의 등 다문화사회로의 지향과 한반도의 안보적 요소를 생각해서라도 제복 입는 직종과 보훈의 의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구청장의 지론이다.
그는 “중앙이나 지방정부는 보훈 대상자를 적극 발굴해 그들에 대한 예우와 복지는 물론 자부심까지도 챙기는 세심한 배려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달서구는 보훈의 의미를 선도적으로 새기며 2021년 기초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보훈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보훈포럼, 청소년 보훈 사적지 탐방, 나라 사랑 손수제작물(UCC) 공모전, 보훈 시설 안내 표지판 설치, 국가유공자 조사 시 경찰 선도차 운행 등이 대표적이다. 보훈 유적지와 연계한 보훈관광 랜드마크 개발 등 달서구만의 선진화한 보훈발전 마스터플랜을 담고 있다.
이 구청장은 “정부도 국가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는 등 보훈 행정을 강화하는 만큼 국가유공자의 삶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든든한 보훈 없이는 굳건한 호국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각종 수당과 의료비 지원에서부터 보훈 예산 비율을 높이는 등 보훈의 씨앗을 폭넓게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열들이 보여준 뜻과 정신을 기리며 보훈의 가치가 더 빛날 수 있는 ‘스마트한 보훈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대구=김덕용 기자 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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