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다시 보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사비는 오르는데 품질은 더 떨어져
발 뻗고 쉴 수 있어야…근본 대책 필요
'이제 보니 실화네!'
개봉한 지 1년 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최근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답니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이 영화는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을 그리는데요.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사투를 보여줍니다.
단 하나의 건축물만 살아남았다는 게 매우 비현실적이죠. 심지어 황궁 아파트는 신축도 아닌 오래된 아파트고요. 하지만 작금의 건설업계 모습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대형 건설사가 유명 브랜드를 달고 짓는 새 아파트에서도 각종 부실시공 논란이 빚어지고 있거든요.
물론 부실시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과거엔 건설 현장에서 철근 등 자재를 빼돌려 이익을 챙기면서 발생하는 사고가 부지기수였다죠. 최근엔 부실 감리, 안전 관리 미흡, 전관예우 등 다양한 이유에서 시작된 하자로 인한 대형 사고들도 있었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선보인 때는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직후였습니다. 이 아파트는 주차장 상부에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습니다. ▷관련기사:원희룡 "사고 낸 GS건설, 1등 기업이라도 최강의 조치할 것"(2023년5월16일)
더군다나 2022년 1월 광주 서구에서 신축 중이던 화정 아이파크가 붕괴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죠.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6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사고였습니다. ▷관련기사:'광주 악몽' HDC현대산업개발, 7개월만에 또 사고…휘청(2022년1월12일)
이런 사달을 겪고 나면 건설 현장도 확 바뀔 법한데요. 글쎄요. 최근까지도 줄줄이 나타나는 부실시공 사례들을 보면 바뀐 게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이럴까' 신기할 지경입니다.
대구 달서구 '두산위브더제니스'는 준공 직전 부실시공을 감추기 위해 계단을 무리하게 깎아내는 공사를 진행해 논란이 됐고요. 전남 무안군의 '힐스테이트 오룡'은 외벽과 바닥이 기울고 콘크리트 골조가 휘어지는 등의 대량 하자가 발견됐습니다.
힐스테이트 오룡의 경우 시공사가 시공능력평가순위 4위인 현대엔지니어링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을 안겼죠. 주택 브랜드 경쟁력이 높은 건설사인데도 하자가 수두룩하니 신축 아파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요.
그래도 현대엔지니어링은 홍현성 대표이사가 공식 사과문을 내고 예비입주자들을 만나 하자 보수와 보상 협의를 진행했는데요. 시공사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떠넘기기에 급급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예비 입주자들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죠.
정부도 나서긴 했습니다. 최근 이렇게 여러 단지에서 부실시공 정황이 포착되자 지난달 22일부터 30일까지 지자체 등과 합동으로 전국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중 준공이 임박한 단지 20여 곳을 불시에 특별점검했어요.
하지만 대상이 되는 171개 대상을 모두 점검한 것도 아니고요. 단 9일간 진행한 점검인 데다 추가 점검 계획은 정확히 밝히지도 않았죠. 연속성도, 진정성도 부족해 보입니다. 지난해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태 때도 무량판 적용 단지만 점검하는 등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조사를 진행해 아쉬움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는 부실 시공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나는 등의 대형 사고는 잠잠하긴 한데요. 다량 발생하고 있는 누수, 균, 벽체 휨 등의 하자가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습니다.
물론 깊이 들여다보면 건설 현장의 고충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재비, 인건비 등은 줄인상 되는데 공사비 증액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 2월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국내 건설업의 총 인력 수요 155만1000명 가운데 내국인 근로자 수는 138만2000명으로 나머지는 외국인 인력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공기를 급하게 맞추려다가 작업자들의 실수가 많아지기도 했고요. 부동산 경기 활황이었던 2~3년 전 분양이 이뤄진 곳들은 과하게 사업을 수주하면서 현장 관리에 소홀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주택 수요자 입장에선 다 핑계일 뿐입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이런 비용들을 감안해 분양대금을 모아 냈는데 건설사가 약속을 깬 거니까요. '억' 소리 나는 분양가를 감당하며 겨우 마련한 집에서 발 뻗고 쉴 수 없다니 배신감만 커질 뿐이죠.
온라인 세상에서 '순살자이(자이)', '휜스테이트(힐스테이트)', '흐르지오(푸르지오)', '통뼈캐슬(롯데캐슬)' 등 주택 브랜드에 대한 조롱이 심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손가락질에서 벗어나려면 건설업계의 자구 자정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제언도 들을 만합니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차질 없는 주택 공급, 주거 안정 등을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감시·감독, 비용 검증 등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정 과정에서 더욱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고 빠르고 확실한 비용 검증을 거쳐야 한다"며 "공사비 검증의 경우 한국부동산원 외에도 공신력 있는 검증 기구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제도적 지원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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