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강제하는 국제기구 필요하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오늘 ①]
월든 벨로 뉴욕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지구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통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필리핀 출신 지식인이다. 한국에도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탈세계화〉 등 그의 저서 중 일부가 번역되어 있다. ‘2024 광주민주포럼’에서는 ‘광주와 가자지구’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현재 지구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전쟁의 불씨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전개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어떻게 전망하나.
(이란이 개입할 경우)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산될 위험이 크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질러온 학살, 그리고 지난 4월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에 대한 폭격은 주변 국가들에 매우 도발적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저돌적 행태는 두 가지 환상 때문으로 보인다. 하나는 ‘6개월 정도면 하마스를 궤멸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한 지난해 10월7일 이후 반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헤즈볼라(레바논의 무슬림 무장단체이자 정당)를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쉽지 않을 듯하다.
미국도 이스라엘을 통제할 수 없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매우 특수하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생존은 미국의 군사 지원 덕분에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미국 없이 그 지역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전쟁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미국 정부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다. 평소 내 표현을 다시 인용하자면, ‘개의 꼬리(이스라엘)’가 ‘개의 몸통(미국)’을 흔드는 격이다. 그래서 중동 전세는 더욱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하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이외에 전쟁 위험성이 특히 높은 곳이 있다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목표는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다. 일단 무역과 첨단 기술의 흐름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군사 부문에서도 두 나라가 충돌할 여지가 크다. 남중국해가 일촉즉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함들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양측이 서로 부딪치기 직전까지 접근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비켜 간다. 약간의 착오 때문에 실제로 충돌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 해역엔 규범(rule)이 없다.
남중국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뿐 아니라 일본, 필리핀 등이 모두 미·중 충돌의 최전선으로 내던져질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대중(對中) 군사기지 네트워크가 세 나라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는 북한보다 중국의 미사일을 감시하고 격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더 넓게 보면 서태평양과 서유럽의 미국 기지도 이 네트워크에 포괄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경우, 그 전쟁은 해당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가자지구 및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종류의 위험이 한반도 주변에 실재한다는 이야기인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경우,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보단 ‘지원’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에서는 미국이 직접 중국과 맞서고 있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세계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쟁 위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전쟁 위험이 크거나 실제로 발발하는 경우, ‘(침략국에) 평화적 해결을 강제할 다국적 국제기구(multilateral coercive authority)’가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유엔이 그런 시도였다. 유엔이 ‘평화적 해결을 강제하는 기구’로 가장 유효하게 작용했던 사례는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이다.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이 침략했으며, 모든 회원국은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결의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지난 3월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이스라엘에는 즉각적 휴전, 하마스에는 인질 석방을 요구.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이 결의안에 찬성했으나, 미국은 기권)를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도 존중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측은 이 결의에 “구속력이 없다(Non-binding)”라고 주장했다. 평화를 강제할 국제규범이 사라진 것이다. 남은 것은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다. 국가들은 각자 다른 나라의 군사력을 능가할 만한 군사적 능력을 갖추려고 발버둥 친다. 20세기 초반 유럽 나라들은 ‘힘의 균형’ 논리에 휩쓸렸는데, 결국 세계대전이 터졌다.
‘평화적 해결을 강제하는 기구’의 역할은 분쟁국을 중재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때로는 다국적 군대를 구성해 평화 협상을 강제할 수도 있다. 이런 방법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평화의 강제력으로 기능하는 다자적 제도 장치 자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제네바 협정이나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제네바 협정은 포로나 비(非)교전 시민, 전쟁 수행 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규범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종이 협정(paper agreement)’일 뿐이다. 베트남전에서 미국,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은 제네바 협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차라리 ICJ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상황을 즉각 바꾸지 못하지만, 각종 결정으로 침략국의 윤리적 정당성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경우, 글로벌 여론 공간에선 가자지구 학살을 정당화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ICJ는 지난 1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현재는 이스라엘의 관련 혐의를 심리 중이다). 미국 대학생들이 최근 가자지구의 집단학살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글로벌 시민사회의 여론은 장기적으로 불법 점령과 집단학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만 전멸시키면 자국의 안보가 굳건해진다고 믿는 듯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향에서 추방했다. 그때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과 후손들이 가자지구라는 이름의 ‘천장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왔다. 그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현재 이스라엘 영토 혹은 서안지구에 있었던 자기 집 열쇠를 보관하고 있다. 76년이 흐른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마스가 (10월7일 이스라엘 공격 같은 행동을 벌이고도) 팔레스타인의 지지를 잃지 않는 이유가 뭐겠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당신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꿈을 분쇄할 수 없다. 현세대가 모두 죽더라도 후세대들이 꿈과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양측 사이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큰 불안감 속에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평화는 정의와 함께 가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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