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청년들은 왜 군주제 개혁을 외칠까 [아시아 민주주의의 오늘 ①]

이종태 기자 2024. 6. 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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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내에서 변혁이 불가능할 때 시민들은 행동한다. ‘80년 광주’가 그랬고, 오늘의 타이가 그렇다. 군부가 당장은 민주 정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겠지만 미래에도 그럴 수 있을까?
5월16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2024 광주민주포럼’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민주포럼 제공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학살’이나 ‘광주항쟁’으로도 불린다. ‘80년 광주’에는 운동과 학살, 항쟁 이외의 의의도 있다. 이후 4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위한 노력이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요원하고 가해자들은 거의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단적 노력이 존재했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만큼 성장했고 국가범죄의 재발도 방지할 수 있었다. 5·18기념재단은 그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5월14~18일, 광주에서 ‘자유의 위기’라는 주제로 ‘2024 광주민주포럼’이 열렸다. 관련 내용을 〈시사IN〉 제872호와 제873호에 걸쳐 싣는다.

아시아 곳곳에서는 지금도 항쟁과 학살이 진행 중이다. 국가범죄의 가해자가 정권을 유지하며 진상규명을 원천 봉쇄한 경우도 있다. 일부 지역은 주변 강대국의 간섭이나 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광주로 와서 ‘80년 광주’의 기억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인들과 경험을 공유했다.

네띠윗 초띠팟파이산 씨는 타이(태국)의 청년 운동가다. 5월에 쭐랄롱꼰 국립대학을 졸업했다. 타이에서는 재판 여러 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혐의 중 하나는 ‘군복무 거부’다. 최고 3년 형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가 입대를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불교신자로서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체에 대한 살해는 옳지 않고, 사회 전반을 통제하며 타이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군부에 부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띠팟파이산 씨가 받을 형량은 3년보다 훨씬 길 수 있다. 타이의 군주제 옹호자(왕당파)들로부터 왕실 모독, 사회질서 교란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타이의 왕실모독죄에 따르면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할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 홈페이지에서 군주제를 비판한 한 활동가가 50년 형에 처해졌다. 타이 하원의 락차녹 시녹 의원도 지난해 말 1심 재판에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타이의 청년 운동가 네띠윗 초띠팟파이산 씨가 5월17일 <시사IN>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군주제가 만든 ‘타이식 민주주의’

그는 타이에 위협적인 인물인가. 다음 발언을 감안하면, 그의 입장은 타이의 공식적 정체(政體)인 ‘입헌군주제를 제대로 시행하자’에 가깝다. “국왕도 사람이고, 사람은 때때로 실수한다. 그러나 타이에서는 왕에 대한 비판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군주는 언제나 좋은 일을 한다는 믿음을 시민에게 강요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국왕의 잘못은 물론 선정(善政)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입헌군주제(국왕을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국왕은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헌법 아래 있다. 국왕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초띠팟파이산 씨의 주장대로) ‘때때로 실수하는 사람’이므로 비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입헌군주제의 세계관이다. 국왕이 태생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합치하는 행위만 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헌법 위에 존재해도 괜찮다면, ‘전제군주제’야말로 지상 최고의 민주주의 체제일 수 있다. 이는 스탈린주의와 주체사상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입헌군주제에 대한 지향이 타이에서 이토록 모진 탄압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 왕실과 군부의 기묘한 결탁이 지배체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는 원리상 엄연한 (의회)민주주의 국가다. 시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하원)들이 다시 총리를 선출한다(다만 현행 헌법에서는 군부가 지명한 상원의원들도 총리 선출에 참여한다). 총리는 행정부를 구성한다. 그러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마오쩌둥의 ‘명제’가 타이에서 현실로 구현되어왔다. 오랜 세월 군부가 정치권력을 전횡하고 있기 때문이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2024년까지 군부가 19차례 쿠데타를 시도해 13차례 성공했다. ‘성공한 쿠데타’ 이후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기까지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군부가 임시정부를 운영하며 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만들어 이에 기반한 총선을 다시 치르는 방식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상태라면, 시민들이 선거에서 선택한 다수당이 의회를 이끌게 된다. 그 의회를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 그러나 군부의 ‘수시로 쿠데타’는 번번이 선거 결과를 뒤집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문제는 군주제다. 국왕은 쿠데타를 대부분 승인해왔다. 타이 왕실의 권위는 대단히 높다. 〈삼국지연의〉에서 동탁이나 조조가 세우는 허수아비 황제나 1979년 12월 전두환 신군부의 협박에 힘없이 무너진 대한민국 대통령실에 비할 바 아니다. 이런 국왕이 쿠데타를 번번이 정당화하고, 군부는 왕실의 권한을 강화하는 입법을 시행한다.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총장과 이미지 태국어과 조교수가 쓴 논문 ‘태국 2020: 의심받는 ‘타이식 민주주의’와 정치 과정의 변화’에 따르면, 이처럼 군부와 왕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치적 변동과 안정이 이뤄지는 체제를 ‘타이식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당시 군부독재 체제를 ‘한국식 민주주의’로 명명한 바 있다.

1976년 10월6일 탐마삿 국립대학에 군인과 왕당파 폭도들이 침입해 학생들을 공격했다. ⓒAP Photo

왕실-군부 협력체에 대한 개선 요구가 타이 역사상 대중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사건이 바로 2020년 대규모 시위다. 시위대는 ‘국왕의 쿠데타 승인 금지’ ‘왕실모독죄 폐지’ ‘왕실 재산 투명화’ 등 군주제 개혁을 요구했다. 타이 청년들이 지배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금기(국왕 비판)를 넘어설 수 있었다고, 초띠팟파이산 씨는 말했다. “의회민주주의 자체는 이미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 타이에는 서로 경쟁하는 많은 정당들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군부와 결탁한 군주제다.”

이 같은 지배체제의 유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온 또 하나의 조력자가 있다. 사법부다. 군부·왕실에 비판적인 정당이 승리한 총선이 헌법재판소(헌재)에 의해 무효로 처리되어버린다. 헌재가 그런 정당을 강제해산하거나 유력 정치인들의 참정권을 정지시켜 출마를 막는 경우도 있다. 2001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재선까지 성공했던 탁신 친나왓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의료보험 강화, 농어촌 및 빈곤층 지원 등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으면서 타이의 정치 구도를 ‘탁신 대 군부’로 재정립할 정도로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부패, 인권탄압, 탈세 등으로 비판받는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다. 군부는 2006년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을 축출하면서 국왕의 승인을 받았다. 직후, 헌법재판소는 탁신의 정당을 강제해산했다.

2020년 대규모 시위도 같은 패턴의 결과였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쁘라윳 짠오차 군부는 3년 뒤인 2017년 새 헌법을 만든다. 무려 스무 번째 헌법이다. 이 ‘2017년 헌법’에 따르면, 군부가 지명하는 상원(250명)이 하원(총선에서 선출되는 500명)과 함께 총리를 선출한다. 짠오차 장군은 군부계 정당을 창당해 직접 정치에 뛰어든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과 비슷하다. ‘2017년 헌법’으로 치른 2019년 3월 총선에선 프아타이당(탁신계 정당), 군부계 정당 순으로 표를 얻었다. 그러나 상원의 ‘약속된 표’ 덕분에 총리로 선출된 사람은 짠오차였다.

이 총선에서 아나콧마이당(미래전진당)은 ‘의회민주주의 복원’ ‘군주제 개혁’ 등의 의제로 청년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제3당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20년 2월 미래전진당을 강제해산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같은 해의 대규모 시위로 터져 나온 것이다.

제도 내에서 변혁이 불가능할 때 시민들의 축적된 분노는 ‘행동’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몇 차례 봉기가 발생했다. 타이 군부는 잔혹한 진압으로 맞섰다. 1973년 타이 시민과 학생들은 대규모 시위로 군부를 몰아낸 경험이 있다. 군부의 총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거나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군부는 왕실에 접근하며 호시탐탐 정치권력으로의 복귀를 노렸다. 그런 와중인 1976년 10월6일, 군인과 왕당파 폭도들이 탐마삿 국립대학으로 침입해 기관총과 수류탄, 박격포 등으로 학생들을 공격했다. 수많은 학생이 총살과 박살, 성폭행, 불태움을 당하고 나무에 내걸렸다. 당일 오후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의 승인을 받아냈다. 그 대가는 왕실모독법의 강화였다. 군부는 1992년과 2010년에 봉기한 시민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2020년 10월14ㅁ일 방콕 민주주의 기념탑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집회를 벌였다. 독재에 저항하는 의미의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EPA

타이가 ‘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이유

타이에서 자행된 이런 국가범죄는 사건의 진상은 물론 사상자 규모마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나 진상규명 시도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2010년 학살의 가해자들이 지금도 보수 지배층과 군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1976년과 2010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더 많이 알고 있다. 광주학살 등 해외에서 국가범죄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도 배워나가고 있다.”

타이의 ‘그날’은 올 것인가. 2023년 5월 총선에서 최다 득표 정당은 까우끌라이당(행동전진당, 피타 림짜른랏 대표)이었다. 해산된 미래전진당의 후신이다. 탁신계 정당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군부계 정당의 득표율은 10%대에 그쳤다. 그러나 피타 림짜른랏 행동전진당 대표는 총리가 되지 못했다. 2017년 헌법에 따라, 상원(250명)이 총리 선출 표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탁신계 정당이 군부계 정당들과 함께 지금의 타이 정부를 구성했다. 헌재는 지난 1월 행동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안(최고 15년형을 1년형으로 축소 등)’에 대해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5월 말 현재, 헌재는 이 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를 심리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띠팟파이산 씨는 낙관적이다. 헌재가 행동전진당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해서가 아니다. “타이 사람들은 행동전진당이 곧 해산될 것이라고 본다. 기대도 실망도 없다. 행동전진당 사람들도 이미 다른 당을 준비하고 있다. 군부와 왕실, 보수파들이 민주 정당의 집권을 지금 당장 막을 수는 있겠지만 미래에도 그럴까.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려면 수련하고 인내심을 기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수련 중이다. 수련하면 이길 수 있다.”

이 같은 낙관주의 뒤엔 ‘국제 민주주의 세력’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2020년 타이 젊은이들은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동시에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타이의 인기 모델 위라야 수카람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우한 연구소 유출설’을 SNS에 공유했다가 중국 누리꾼들의 집중적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한 타이 누리꾼들의 반격에 홍콩과 타이완 누리꾼들이 가세하면서 중국 정부의 정책(홍콩 보안법, 타이완에 대한 무력침공 위협 등)을 비판하는 3국 젊은이들의 연대가 ‘밀크티 동맹’으로 발전했다. 초띠팟파이산 씨는 세 나라 젊은이들이 ‘중국이 더욱 강력해지면서 우리의 인권을 위협한다’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신장, 홍콩, 중국 내 소수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타이 젊은이들은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이 홍콩, 타이완 젊은이들과의 ‘연대’로 나타났다.”

네띠윗 초띠팟파이산 씨의 국제연대 대상엔 한국, 특히 ‘80년 광주’가 포함되어 있다. “광주의 풍경 자체가 항쟁 당시 희생된 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 조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은 결국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지금의 타이와 ‘80년 광주’에는 모두, 군부와 엘리트들에 맞서 나라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젊은이와 노동자가 있다. 타이 시민들이 갈망하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고 더 좋은 경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독재에 맞선 ‘80년 광주’를 기억할 것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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