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좋지만 져도 괜찮아…총수들의 ‘야구 사랑’

2024. 6. 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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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야구광’으로 소문난 재계 총수들이 프로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잇따라 찾고 있다. 지난해 LG 트윈스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에 이어 올 시즌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구단주 자격으로 야구장을 찾았다.

 

 롯데, 통 큰 한턱으로 무관 탈출 안간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5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롯데지주 등 그룹사 임직원 1120명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신 회장은 “코치진과 선수단이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자이언츠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에게 롯데호텔 식사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야구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가 9연승을 하자 코치진과 선수단, 트레이너 등 54명에게 고급 드라이어, 헤드셋 등을 선물했다. 총 3800만원 상당이다.

신 회장의 야구 사랑은 부친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1971년 일본에서 프로야구단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마린스)를 창단하면서 시작됐다.

신 명예회장은 1969년 일본프로야구팀 도쿄 오리온스를 인수해 롯데 오리온스로 이름을 바꿨고 1992년 연고지 이전을 계기로 지바 롯데마린스로 또 한번 이름을 바꿨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롯데 자이언츠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롯데 자이언츠를 창단해 2015년까지 구단주를 맡았다. 신동빈 회장은 2015년부터 한국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일본 지바 롯데마린스 구단주를 맡고 있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도 지난 2월 롯데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마린스의 한·일 양국 교류전을 직접 챙기며 야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야구계에선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 중 어느 팀이 먼저 ‘21세기 무관’에서 탈출할지가 관심사다.

1992년이 마지막 우승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1999년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던 한화 이글스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2000년대에 우승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994년 우승이 마지막이었던 LG 트윈스는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긴 암흑기에서 먼저 탈출한 상태다.

한화 이글스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3월 2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괴물 류현진’ 왔어도…25년째 우승 실패

재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야구 마니아’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86년 한국 프로야구팀 7번째 구단인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창단했다. 한화 이글스 법인이 설립된 1985년부터 39년째 구단주를 맡고 있다.

김 회장은 한화 이글스 지분 10%를 1993년부터 31년째 보유하고 있다. 10대 그룹 총수 중 야구단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건 김 회장이 유일하다. 한화 이글스의 우승은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후 25년째 우승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5년여 만인 지난 3월 29일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아 선수단을 격려하고 경기를 관람한 데 이어 5월 10일 또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이날은 한화그룹 계열사 임직원 500여 명과 함께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했다.

이날 한화 이글스는 주축 선수들의 부진 속에 꼴찌로 추락할 위기 속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끝내기 승리를 거뒀고 이에 김 회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올 시즌 한화 이글스는 김 회장이 직관할 때마다 승리해 승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한화 팬들은 “역시 회장님은 승리의 토템”이라며 “한화는 이겨야 할 때를 아는 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화 이글스가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류현진을 8년 총액 170억원이라는 역대 KBO리그 최고 대우로 복귀시킨 것은 총수의 승인 없이는 제시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평소 의리를 중시하고 지고는 못 사는 승부사 기질로 알려진 김 회장이 류현진을 영입한 것은 올해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는 류현진의 한국 복귀와 함께 시즌 초반 7연승을 달리며 선두를 질주했으나 주축 선수들의 부진으로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5월 23일 LG 트윈스전 패배로 최하위로 추락했다. 이날 최원호 감독과 박찬혁 대표는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야구계에서는 사실상 경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 감독이 지난해 5월 부임 후 1년 만에 시즌 도중 사퇴하면서 정경배 수석 코치가 당분간 감독대행을 맡다가 6월 2일 전 야구국가대표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 7년간 4명의 감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한화 이글스의 신임 대표에는 박종태 전 아쿠아플라넷 대표가 선임됐다.

한화는 “리그 상위권 도약을 위한 분위기 전환과 동시에 2025년 예정된 신구장 준공 등을 대비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대표이사와 감독 교체 배경을 밝혔다. 야구 성적이 사장단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5월 18일 잠실야구장을 찾아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두산, 위기 때도 야구단 매각 “NO”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야구 사랑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은 2009년 3월부터 두산 베어스 구단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구단주에 취임하자마자 2군 훈련장을 방문해 유망주 육성을 직접 챙겼다. 박 회장을 비롯한 두산 오너 일가는 평소 VIP석을 마다하고 일반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일가의 소탈한 성격이 경기 관람에서도 드러난다는 평가다.

두산그룹 오너일가가 모여 야구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여러 차례 포착되기도 했다. 2015년 10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한국시리즈 3차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동생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 일가와 박정원 회장, 박용만 전 회장 등 두산 일가가 잠실구장을 찾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열띤 응원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이날 경기는 두산이 삼성에 5-1로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5월 12일 박 회장은 전력분석 강화를 위해 두산 선수단 35명에 150만원 상당의 태블릿PC를 선물하고 18일에는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도 관람했다. 2020년 두산중공업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에 놓였을 때도 두산 베어스를 지켰다.

당시 채권단은 두산그룹의 상징인 두산 베어스 매각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채권단 관리 체제를 1년 11개월 만에 조기 졸업한 뒤 그룹 사옥인 분당두산타워에 역사관을 설립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역사도 함께 전시해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1896년 ‘박승직상점’에서 출발한 두산그룹은 재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인 만큼 프로야구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 회장 부친인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은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가장 먼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창단했고 틈만 나면 두산의 홈 경기를 관전했던 야구광이다.

박 명예회장은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 경기 이천 OB맥주공장 옆에 냉난방 시설을 갖춘 최신식 전용연습장을 개장하고 2군 제도를 처음 도입해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창원과 광주에도 전용 연습구장을 만들어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두산의 야구단 경영을 일컬어 ‘화수분 야구’라고 불렀다.

오너일가의 야구 사랑에 힘입어 두산 베어스는 1982년 한국시리즈 원년 우승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6번 우승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어머니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2015년 5월 21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22년 11월 8일 인천시 미추홀구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6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에서 4대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SSG 정용진 구단주가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총수 발길 끊긴 삼성·SSG·기아

삼성 라이온즈와 SSG 랜더스 팬들은 이재용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회장은 가족들과 야구장을 자주 찾았지만 2015년 이후 발길을 끊었고, 정 회장은 2021년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출범시킨 뒤 야구장에 자주 방문했지만 지난 3월 회장 승진 이후 발길이 뜸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기아 타이거즈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은 2017년 10월 30일 서울 잠실구장을 찾은 이후 7년째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정 회장은 프로축구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주를 맡고 있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 총수 중 구단주가 아닌 사람은 이재용 회장과 정 회장이 유일하다. 삼성 라이온즈는 유정근 전 제일기획 의장이 구단주 겸 대표를 맡고 있으며 기아 타이거즈는 송호성 기아 사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22년부터 구단주를 맡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 현대차가 미국에서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인 소아암 퇴치 캠페인 기념 행사 참석을 위해 워싱턴 내셔널스 야구팀의 홈구장을 찾은 바 있다.

총수들이 바쁜 경영 활동 와중에 야구장을 찾는 것은 구단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선수단에 동기를 부여하고 팬들과 소통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주려는 것이 주목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의 야구장 방문은 승패를 떠나 스포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고 범접하기 힘든 존재였던 총수와의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어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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