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카충·댕댕이·띵작…‘자유분방 한글’이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 아닐까[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한글 놀이터’ 표방한 한글박물관
언문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전시
장난스러운 외계어들도 나란히
‘짧은 단어·많은 정보’ 한글 특징
‘한글 파괴’ 주장은 세종이 웃을 일
올해 ‘사투리’ 주제로 기획전시
‘표준어=순수한 국어’ 인식 잘못
과연 일상서 사투리 참을 수 있나
한글, 자부심 갖되 국뽕은 삼가야
박제 안 된 자유로운 한글을 위해
한글을 박물관에 가둔다고? 2008년 한글박물관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할 때, 그리고 2014년 한글박물관이 개관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옛것을 수집·보존·진열하는 것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공감하나 그 대상이 언어의 한 축이라는 것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글문화’를 국내외로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라는데 ‘한글’과 ‘문화’가 결합할 수 있는 것인지, 결합한다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언어학자 작품인 한글이 어떤 모습으로 전시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 또한 자못 컸다.
방언을 한글박물관에서 전시하겠다고? 이번엔 한술 더 뜬, 말도 안 되는 연락이 왔다. 소문이나 뉴스가 아닌 전화로 자문까지 요구하면서. 말은 결코 박물관이나 민속촌에 가둬서는 안 되고 자연 상태에 두어야 한다고 늘 강변하는 이에게 말이다. 의구심을 넘어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전에 한글박물관에서 주관한 기획전시가 얼마나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알기에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30년 넘게 한 방향만 바라보며 달려온 ‘꼰대’의 시각보다는 의욕적으로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의 뒤를 따라가며 도움이 될 것을 찾아보는 것이 상책이다. 게다가 기획전시의 제목이 ‘사투리는 못 참지’란다. 이러면 정말 못 참으니 가볼 수밖에.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글자는 우리의 손에서 꿈틀대며 우리의 눈과 머리를 오간다. 이렇게 매일 쓰고 보는 문자를 전시할 이유는 없으니 이런 것은 박물관의 전시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쓰이는 문자 중 유일하게 아비가 있고 생일이 있으니 그 생명체에 대한 전시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것의 역사를 담고 있는 2층의 상설전시관은 철저하게 그 아비의 뜻을 좇아 구성되었다. 훈민정음의 첫머리 구절을 따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쉽게 익혀/ 사람마다/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는 제목으로 꾸렸다. 훈민정음 서문 자체가 명문이니 그것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풍경을 그리는 이가 그리는 대상을 평가하는 것은 영역 밖의 일이다. 기획해서 준비하고 매일매일 운영하는 이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사하며 나날이 발전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주된 관람층인 이 땅의 미래 주역들이 신나게 뛰놀면서 가슴에 새길 만한 것을 얻어가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문화의 놀이터’를 표방하고 있으니 그 목표가 달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 한글에 흥미를 잃은 어른들, 한글을 처음 접하며 새로운 흥미를 느끼는 외국인 관람객까지 모두를 포함해서.
상설 전시관 벽면에 박힌 ‘천년의 문자 계획’은 곱씹어볼 만하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을 21세기인 지금에도 쓰고 있으니 600년 가까이 쓰고 있는 셈이다. ‘언문’이니 ‘암글’이니 해서 천대를 받다가 본격적으로 쓰인 기간은 더 짧다. 한자와 경쟁 또는 공존하면서 힘든 세월을 버텨왔지만 한자와 다시 경쟁할 일은 없다. 일제강점기의 말과 글에 대한 탄압을 견뎌왔으니 불행한 식민 경험을 다시 겪지 않는 한 한글이 핍박을 받을 일은 없다. 적어도 이 나라가 유지되고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한 ‘천년’의 세월은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파괴’ 운운하는 탄식은 해마다 한글날만 되면 지면을 장식하고 그 아비인 세종대왕은 강제로 ‘지하에서 통곡’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말과 글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한글의 힘을 믿지 못하는 소치다.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말인지 글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무지(無知)요, 한글의 과학성을 그리 강변하면서 한편으로는 파괴를 염려하는 것은 무신(無信)이자 무시(無視)이다. 천년을 견디고 새로운 천년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은 절대로 파괴되지 않고 그 아비는 웃으면 웃었지 통곡하지 않는다.
‘한박웃음’의 도발
‘한글 파괴’와 ‘국어 파괴’는 서로 혼동되면서 지나치거나 엉뚱한 근심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를 ‘말おŀズı 않Øŀ도’와 같이 장난스레 쓰는 ‘외계어’를 보고 국어 파괴라 수선을 피운다. 거리에 한글 간판 대신 ‘영어 간판’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한글 파괴를 염려한다. ‘버스 카드 충전’을 ‘뻐카충’이라 줄여 쓰는 것, 개를 ‘멍멍이’라고 하는 것도 모라자 ‘댕댕이’라고 쓰는 것을 한글 파괴 또는 국어 파괴라고 한다.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오해하는 것을 두고 한글은 너무 어렵다는 둥, 한문 교육이 필요하다는 둥 엉뚱한 해석과 처방을 늘어놓는다.
‘문자’와 ‘언어’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세종대왕은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을 뿐 언어인 한국어를 만든 것이 아니다. 카페의 메뉴에 ‘미숫가루’를 ‘M.S.G.R’로 써 놓은 것은 영어로 써 놓은 것이 아니라 로마자로 써 놓은 것이다. ‘사흘’을 ‘4일’로 오해하는 것은 한글을 못 읽어서가 아니라 과거에 흔히 쓰던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은 어려운 ‘한문’ 교육이 아니라 한국어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자’ 교육이다. 문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한글날이 한국어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변하는 날로 둔갑하는 것도 역시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한글의 힘과 특성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말おŀズı 않Øŀ도’라고 쓰더라도 결국은 한글을 흉내 내는, 그래 봤자 얼마 되지도 않으니 그냥 놔두면 스스로 스러질 장난일 뿐이다. ‘Bus Card Charging’을 줄이면 ‘BCC’가 되어 본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뻐카충’은 글자 하나가 가진 정보량이 많아 줄어들기 이전의 말을 추측하기 쉽다. 이는 글자를 모아쓰도록 고안한 세종의 의도를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멍멍이’를 ‘댕댕이’라 하고 ‘명작’을 ‘띵작’이라 하는 것도 한글의 자형과 창제원리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재미있는 단어 몇 개를 늘리고 웃으면서 쓸 수 있으면 그만이다.
불만과 근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한글박물관의 소식지 ‘한박웃음’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글박물관’을 ‘한박’으로 줄여 쓴 것은 ‘뻐카충’과 다를 바 없고 ‘한박’이라 써 놓고 ‘함박’이라 읽도록 유도한 것은 ‘댕댕이’보다 더한 도발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글로 써 놓았으니 한글이 파괴될 일도 없고 ‘한박’에서 ‘한글’과 ‘박물관’을 복원해낼 수 있으니 국어가 파괴될 일도 없다. 글자는 ‘한박’이되 소리를 내어보면 ‘함박’이 되니 이 이름을 지어낸 이의 재치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으면 된다. 이러한 모든 도발도 결국 세종의 손바닥, 즉 한글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너른 마음으로 포용하면 된다.
사투리는 못 참지
국어에 대한 편협한 시각으로 보면 한글박물관의 2024년 기획전시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국어는 순수해야 하고, 순수한 국어는 표준어이니 사투리는 걸러내야 할 대상이다. 이를 위해 앞장서야 할 한글박물관이 ‘순수하지 못한’, 또는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말인 사투리를 주제로 잡았다. 게다가 전시회의 제목 또한 ‘철없는 젊은 애들’이나 쓰는 말인 ‘~는 못 참지’를 넣어 지었다. 전시관의 소주제는 ‘이 땅의 모든 말, 풍경을 담은 말, 캐어 모으는 말’인데 걸러내야 할 이 땅의 말의 풍경을 새삼 캐어내어 전시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사투리를 쓴다. 대대로 서울에서 살아온 이들의 말은 서울 사투리일 뿐 표준어가 아니다. 말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도, 말로 먹고사는 아나운서도 나고 자라면서 배운 말을 자연스럽게 쓰면 그 모든 것이 사투리다. 사투리를 애써 참고 사전과 규범에 있는 말을 억지로 쓰려고 할 때 비로소 나오는 말이 표준어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든 말이 사투리이니 숨을 참지 못하듯 사투리는 참지 못한다. 그것이 지역에 따라, 성별·연령·직업 등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다른 것을 모두 모아야 한국어가 되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사투리를 쓰며 그 사투리는 참지 못한다.
“우터 이래 반갑소 방구워요.” “잘도 오랜만이우다예. 어떵헹 지냄수과?” 강원도 사람과 제주도 사람이 만나서 이렇게 인사를 나누더라도 한글로 적을 수 있으니 고맙다.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부터 각 지역의 방언은 물론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적을 수 있다고 밝혀놓았으니 이 모든 말들을 한글로 기록해 모아놓으면 한국어의 자산이 축적되고 보존된다. 팔도의 말을 지면과 영상으로 소개하고 그동안의 방언 조사 과정과 결과들을 충실하게 전시해놓은 것이 고맙다. 말은 하고 나면 사라지는 것, 이렇게 모아놓고 담아놓으면 후대에도 얼마든지 다시 열어서 보고 들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박물관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고, 발로 뛰어 자료를 모으고, 알차게 전시해낸 모든 이들이 고맙다.
한글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은 유별나다. 유례가 없는 과학적인 문자를 가졌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런데 때로는 도를 넘어 ‘한글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전 세계에 한글을 보급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를 제외한 누구도 이러지 않는다. 부르짖는다고 한글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보급하고자 한다고 넙죽 받아서 쓸 이들도 없다. 한글에 비하면 턱없이 비과학적이고 부족하기만 한 로마자가 이미 지구촌의 문자가 되었고 다들 나름의 문자를 가지고 아쉬움 없이 읽고 쓰고 있다. 문자가 없는 이들조차 ‘명품 한글’보다는 ‘흔한 로마자’를 택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그러니 한글에 대한 자부심, 나아가 넘치는 ‘국뽕’은 참을 필요가 있다. 전시한다고, 홍보한다고 한글이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의 힘에 한글이 함께 실려가는 것이다. 모든 이가 날로 씀에 편안함을 느껴 자유롭게 쓰고 말하여 그것이 새로운 창작물이 되어 우리는 물론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면 그것을 기록한 한글이 세계로 간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민속촌에 박제될 때가 아닌,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자유롭게 쓸 때 더 빛을 발한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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