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수해 1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좁은 임시주택에 남은 어르신들

황수빈 2024. 6.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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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수해 복구로 분주…"이번 달 복구율 80% 전망"
실종 2명은 끝내 찾지 못하고 '채 상병 수사'는 현재 진행형
임시주택에 사는 어르신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4일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 은풍로에 마련된 수재민 임시주택에서 박금자(80)씨가 멍하니 앉아있다. 2024.6.6 hsb@yna.co.kr

[※ 편집자 주 = 지난해 7월 예천, 봉화,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에 내린 폭우로 산사태 등이 발생하며 26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연합뉴스는 폭우 피해 1년을 한 달 앞두고 피해 복구, 이재민 생활, 문제점 등을 짚어보는 기사 2꼭지를 송고합니다.]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경북 예천군이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입은 피해를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일상을 되찾기 위해 부서진 집을 다시 짓거나 일터인 논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경북도는 수해 피해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이번 달 말이면 복구율이 80% 가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일부 마을의 토지수용 보상 절차가 더뎌지자 피해 복구가 늦어질 것을 우려해 불만을 내비치는 주민들도 있었다.

예천군 백석리 마을의 지난해 7월(왼쪽)과 현재(오른쪽) 모습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4일 오전 찾은 경북 예천군 백석리 마을이 지난해와는 다르게 복구 작업이 진행돼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4.6.6 hsb@yna.co.kr

피해 복구 속도…"이번 달 복구율 80% 전망"

지난 4일 찾은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마을.

지난해 7월 예천군은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1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피해를 봤다.

백석리 마을도 당시 5가구가 매몰되며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

폭우로 산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온 토사의 위력은 차량마저 장난감처럼 뒹굴 정도였다. 마을은 하루아침에 토사로 뒤덮여 진창으로 변했고 그 아래에 묻힌 가축의 분뇨와 시체는 악취를 풍겼다.

하지만 이날 찾은 백석리는 지난해 참혹했던 잔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을은 새롭게 정비된 돌담길을 따라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전에 없었던 전봇대들도 추가됐고 토사의 흔적이 없어 말끔했다.

마을 꼭대기에서는 향후 산사태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한 사방댐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방댐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4일 오전 경북 예천군 벌방리에는 토사를 막기 위한 사방댐이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완공된 사방댐 모습. 2024.6.6 hsb@yna.co.kr

백석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회관에서 마을까지 올라가는 도로는 진작에 복구돼서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경북도와 예천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예천군의 피해 복구율은 54.2%다. 도는 이번 달 말이면 복구율이 77%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백석리와 같이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을은 모두 80여곳에 달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시설들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작업은 거의 다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다만 하천 복구 작업과 같이 공사 금액이 100억원이 넘어가는 경우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 TV 시청하는 어르신들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4일 낮 경북 예천군 벌방리 마을회관에서 정모(93) 어르신이 TV를 시청하고 있다. 2024.6.5 hsb@yna.co.kr

임시주택 1년째 사는 어르신들…새 생명 태어나기도

벌방리에는 임시주택이 모두 11채 마련됐다. 지난해 폭우로 집을 잃어버린 주민들을 위한 임시거처다.

이곳 임시주택 거주자 중 가장 맏언니는 정모(93) 어르신이다. 하천 인근에 있던 정 어르신의 집은 작년 폭우로 피해를 봤다.

27㎡(약 8.5평) 남짓한 임시주택에는 방과 거실이 하나씩 있다. 냉장고, 에어컨, TV 등 구색은 갖춰져 있지만 고령에 좁은 집에서 1년 넘게 살기란 쉽지 않다.

거실은 쌀 포대와 살림살이를 조금만 놔뒀는데도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명절이면 자식과 손주들로 집안이 시끌벅적해야 하지만 잘 곳이 모자라 지난 설날에는 한두명만 자고 갔다고 한다.

정 어르신은 자기 온몸 곳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니 어쩔 수 있나"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부서진 집을 거의 다 지어가는 주민이 있는 반면 일부는 삽도 뜨지 못한 채 임시주택에서 기약 없이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모두 정 어르신과 같이 원래 살던 집이 위험해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다.

예천군은 이들을 위해 벌방리 마을 바로 옆에 이주단지를 조성해 이주를 도울 계획이다. 하지만 터 소유주와 토지수용 보상 절차가 더뎌지면서 이주가 늦어지고 있다.

박우락 백석리 이장은 "공무원분들이 나름으로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진행이 더뎌지니 답답하다"며 "일부 토지가 상속 문제로 동의 절차가 복잡해져 지구 조성이 늦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예천군 관계자는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으며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이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시주택서 태어난 새생명 (예천=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4일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의 임시주택에서 박금자(80)씨가 태어난지 한달도 채 안된 새끼 강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4,6.5 hsb@yna.co.kr

힘든 상황이지만 최근 임시주택 단지에는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기도 했다.

박금자(80)씨가 키우는 반려견 '청마'가 임시주택 이웃집 반려견과 눈이 맞아 새끼 '백호'를 낳은 것이다.

박 씨는 "청마가 항상 용변을 보러 집 밖으로 나가는데 그사이에 새끼를 밴 것 같다"며 웃었다.

해병대 채상병이 급류에 휩쓸렸던 보문교 [촬영 김종운]

회복되지 않는 아픔들…실종자·채상병

예천군에는 수해로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남겨진 아픔들이 있다.

지난해 폭우 벌방리에서 집과 함께 휩쓸려 실종된 60대 윤모씨와 김모씨는 끝내 찾지 못했다.

소방 당국은 이들을 찾기 위해 68일간 누적 인원 1만9천여명과 보트·헬기 등 장비 5천여대를 투입했었다.

결국 유족들은 지난해 예천군을 찾아 실종자 인정사망 처리 절차를 밟았다.

인정사망은 각종 재난으로 사망 확률이 높은 경우 시신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관공서의 보고만으로 사망을 인정하는 제도다.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상병 관련 수사도 여전히 풀리지 못한 채 진행 중이다.

채상병이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렸던 보문교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빨리 (수사가) 끝났으면 좋을 건데 아직도 시끄러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hs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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