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마약 누른 ‘대마’ 주의보…청소년기 해마 망가져 학습능력 손상
서구서 대마 합법화 늘며 아시아도 영향
청소년 학습능력 떨어뜨리고 사고 유발 위험도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의 마약수사 당국은 필로폰(메스암페타민), 코카인(헤로인) 같은 천연 마약을 막는 데 주력했다. 최근에는 화학물질로 합성한 신종 마약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최근 싱가포르와 일본에서 마약으로 대마(大麻) 사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어 한국도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마초가 미국과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 합법화되면서 아시아 국가로도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보건과학청 이주야오 박사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마약류과학정보연구회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와 함께 ‘대마와 신종마약류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이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야오 박사는 이날 싱가포르의 신종 합성 마약과 대마 사용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야오 박사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대마초가 지난 2021년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마약 3위에 올랐다. 1위는 필로폰, 2위는 코카인이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캐터민과 같은 화학물질로 합성한 신종 마약이 3위였다. 야오 박사는 “서구권에서 대마초가 유입되면서 대마 사용자는 늘어나고, 반대로 마약 수사역량이 강화되면서 합성 마약 사범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일본 국립보건과학연구소(NIHS)의 루리 기쿠라 하나지리 박사는 ‘일본의 신종 마약과 대마 규제 현황’ 발표에서 “신종 합성 마약 중독 현황은 잦아들었지만 대마로 구속되는 사람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지리 박사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일본에서 신종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이 112명에 달했는데, 지난해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대마가 늘고 신종 마약이 줄었다고 반길 일은 아니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미국 토머스 제퍼슨대 매릴린 휴스티스(Marilyn Huestis) 교수는 대마 만성 중독이 가져올 피해에 대해서 경고했다. 휴스티스 교수는 대마초 중독 분야를 50년 넘게 연구한 독성학 전문가다. 휴스티스 교수가 대마 중독과 관련해 발표한 논문은 571편에 이른다.
마약인 대마초는 대마의 잎과 암꽃을 건조한 마리화나를 뜻한다. 환각과 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마리화나에 들어있는 델타9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다. 치료제나 화장품 등에 쓰이는 대마는 산업용 헴프(Hemp)이다. 대마에는 THC이라는 환각 성분이 있지만, 소아 뇌전증 치료제의 원료인 칸나비디올(CBD)도 들어 있다. 마리화나의 THC 함유량은 6~20%, 헴프는 0.3% 미만이다. 칸나비디올은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우울증 등에도 효과가 있어 신약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이날 휴스티스 교수는 델타9 THC 성분이 우리 뇌에 작용하는 부작용을 설명했다. 이 성분은 뇌 시상하부에서 식욕, 생식 호르몬 에 작용하는 특정 수용체와 결합해 이상 행동을 일으킨다.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동시에 두려움과 공황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운동 계획과 세밀한 운동 신경을 조절하는 기저핵과 소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대마를 사용한 사람은 운전이나 정밀한 기계 조작을 잘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마는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에도 영향을 미쳐서, 응급한 상황에서 느리게 대응해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뇌간에는 THC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대마로 호흡이나 심장이 멈출 일은 없다고 휴스티스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휴스티스 교수는 ‘먹는 대마’의 경우 응급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봤다. 서구에는 ‘대마쿠키’처럼 먹는 대마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폐로 들이마시는 마리화나는 2~3분 안에 환각이 나타나지만, 먹는 마리화나는 환각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2~3시간쯤 걸린다. 이 때문에 환각을 기대하는 중독자들이 대마를 먹었다가 위독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휴스티스 교수는 대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서구 문화를 우려했다. 그는 “대마를 청소년기에 사용하면 학교 학습과 인생 계획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휴스티스 교수에 따르면 대마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학습 능력도 떨어진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주의력, 집중력, 문제 해결 능력, 의사결정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기 기억력이 손상되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동기 부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휴스티스 교수는 뇌 영상 기술의 발달로, 과거 혈중 농도에만 의존하던 마약 연구가 뇌 연구까지 확장됐다고 반겼다. 그는 “중독으로 인한 뇌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치료의 효과를 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식약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검찰청, 관세청,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에서 전문가들이 참석해 대마와 신종마약류의 국내외 규제 동향에 대해 논의했다. 발표 좌장은 마약 수사의 권위자인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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