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못했지만" 밀양 성폭력 가해자 향한 사적 제재…열광의 이면

김예원 기자 2024. 6.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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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통해 가해자 신상정보 공유…해고 등 조치에 환호하기도
"국민 의식 못 따라가는 제도, 개인적 응징 지속될 것"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최근 20년 전에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들이 죄의식 없이 일상을 즐기는 모습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일종의 '사적 제재'여서 또 다른 문제로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정보 확산, 피해자 등 2차 가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 응징이 호응을 얻는 것은 처벌이 국민 법 감정에 못 미치기 때문인 만큼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지난 1일부터 밀양 여자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경우 피의자 신상 공개법 제정(2010년) 전에 발생해 사법처리가 종결됐고 당시 가해자가 모두 미성년자라 현행법상 공개 범위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얼굴 등 정보 공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해당 사건은 2004년 1월 경남 밀양에서 40여 명의 남자 고등학생이 1년 가까이 여자 중학생 1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가해자 중 단 1명도 이 건으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점, 수사 당시 경찰관이 가해자를 옹호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점 등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신상 정보가 공개되며 가해자 일부는 운영 중인 식당을 휴업하거나 근무 중인 수입차 판매업체에서 해고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해자 옹호 글을 올리고 현재 경찰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가해자가 속한 경찰서 홈페이지에도 비판글이 수천 건 올라오며 후폭풍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런 사적 제재는 여론의 분노를 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피의자 사진 및 이름 등 신상 공개가 이뤄지는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강원도 인제에서 군기 훈련을 받다 사망한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는 중대장, 강남역 교제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의대생의 신상도 해당 범죄가 알려진 후 '디지털 교도소' 등 채널과 유튜브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했다.

ⓒ News1 DB

이런 행위들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 위법 소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여론의 호응을 얻는 현상엔 사법적 판단에 대한 불신과 개인의 정보 습득 욕구를 충족시키는 온라인 환경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 당장이라도 신상을 확보하면 SNS 온라인 유포가 가능한 상황에서 개인의 정보습득 욕구를 우선시한 결과"라며 "이런 욕구가 '나라도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공정에 대한 감수성과 겹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적 제재보다 앞서 시행되고 환호를 받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 및 범위, 처벌 수위가 국민 법 감정과 여전히 괴리가 있는 점도 사법 제재가 활성화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당장 이번에 논란이 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형법이 아닌 소년법을 적용해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형사 처벌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사적 제재의 주 근거로 작용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적 제재는 잘못된 정보 유포, 피해자 신상 등 2차 가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올해 5월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강남역 의대생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피의자 SNS 등을 통해 피해자 얼굴 등 신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돼 유가족이 자제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법이 처벌 수위 측면에서 국민 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면 사법 불신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며 "통신 매체 수단의 발달로 사적 제재의 영향력이 그 어떤 형사적 엄벌보다 커진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강력 범죄 및 새롭게 대두되는 여성 범죄 등에 대해서 국가가 국민 법 감정에 맞게 양형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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